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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관련 연구

[스크랩] [[기도관련]] 찬양기도

작성자그리여 *_*|작성시간14.05.12|조회수585 목록 댓글 0

 

 

정의

찬양 기도(praise prayer)는 찬양으로 기도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간구하는 것 그 이상의 것입니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찬양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찬양 기도는 우리 기도의 차원을 업그레이드해 줍니다.

방법론 및 사례

찬양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찬양의 중요성에 대해 절감해야 합니다. 찬양은 영성의 척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감사와 감격과 은혜를 표현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의 삶을 사는 것은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표시입니다. 시편은 찬양 기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클라우스 웨스터만(Claus Westermann, 1965: 24)는 “시편을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그것은 바로 기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의 최종적 결론은 마지막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이것은 경배와 찬양이 모든 인간의 의무임을 보여줍니다. 경배(worship)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과 감탄과 헌신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Brandt and Bicket, 1993: 30).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찬미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으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누가는 그 기도가 바로 찬미의 기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눅 24:51-53):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를 드렸을 때 그 기도의 성격은 바로 찬미의 기도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구원의 역사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보면 그들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받기 원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도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물

필자는 대학교 2학년 때 길레스비라는 미국 평신도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알콜 중독자였다가 예수님을 만난 분인데 한국에 와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선교하는 분이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말씀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독특한가”(how precious, beautiful, and unique I am) 하는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이 사실에 너무 감격하여 집으로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주님, 저를 이렇게 놀랍게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고 계속해서 찬양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철저한 죄성과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모두 보여주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둘째로, 하나님도 사랑을 받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인간의 사랑과 찬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먼저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우리의 찬양에 기뻐하시고 감동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눈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1995: 120).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존재하시며 그저 무감각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에 감동하시는 분이십니다. 필자는 중학교 때 집에서 존(John)이라는 개를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존이 꼬리를 흔들며 필자를 반갑게 맞아 주곤 했습니다. 내가 존을 좋아했던 이유는 나를 그저 따르고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존과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존이 죽었을 때 한달 이상 슬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가 인간을 따라도 마음이 기쁜데, 하물며 우리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인정하고 경배할 때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작은 고백이라도 그저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때 주님은 정말 기뻐하십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삶의 목적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하나님의 위대하심 선포: 시편 9:14; 71:15; 73:28; 107:22; 119:13)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찬양 기도는 삶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찬양 기도의 양날: 감사와 찬미

찬양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진 게츠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빼놓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1994: 55-56). 리차드 포스터는 찬양에는 감사와 찬미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리차드 포스터, 1995: 118).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대해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찬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찬미는 하나님의 인격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찬양 기도는 반드시 감사가 포함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 23).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 감사할 제목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과거에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들을 하나 하나 기억하며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현재의 모습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찬송가 489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준으로 인생을 해석하는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Cook, 1986: 96). 루이스 플라우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첫 단계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끊는 것이고 그 다음 하나님의 인격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감사의 기도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자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살전 5:16-18). 시편에는 감사에 대한 단어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시 30:12). 감사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활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표시입니다(토마스 콘스태블, 2001: 45). 우리가 감사의 제목을 찾아서 감사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될 것입니다.

찬양 기도에는 항상 찬미가 포함됩니다. 찬미에 예수님이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15).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19-20). 예수님은 우리의 찬미의 대상이십니다. 그분의 구원의 사역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버림받은 형벌의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를 창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만이 저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제가 찬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으로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알기는 찬양의 깊이를 좌우한다

찬양 기도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하나님 자신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찬양이 우러나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감탄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찬양하게 되는 것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항상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 묵상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시 107: 8),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시 59: 16-17),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 (시 68:19),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해 (히 13:8),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시 71:22),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성에 대해 (계 4:8)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찬양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성품에 대한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에 대해 묵상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26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만물을 너무나 오묘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예는 헤아릴 수도 없지만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도 생물이 살 수 없고 태양과 멀어도 얼어 죽기 때문에 살 수가 없지만, 적당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가 비스듬하게 돌아 가도 바닷물이 쏟아지지 않고 사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다 우연이 아닙니다.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는 천문학자들의 말을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1977년에 미국에서 토성 탐색기 보이저 1호를 띄었는데 하루에 120만 킬러 미터의 속도로 날라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 2개월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탄다면 약 200년 동안 날라가야 토성에 도착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토성의 거리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 비행기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왕성을 지구로부터 한 번 씩만 가보려고 해도 쉬지 않고 날아야 수천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넓은 태양계가 어마어마해 보여도 우주에서 점 밖에 되지 않습니다. 태양계에도 태양과 같은 별이 1천억개 이상이 존재하고 인간의 연구의 한계 내에서 이런 태양계 같은 것이 수 조가 된다고 합니다. 도무지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우주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 15절에 하나님께는 열방이, 즉 전 세계가 통의 한방울의 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이렇게 말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또 찬양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9편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무소부재하심에 대해 감탄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위대하실 뿐 세밀하시고 섬세하셔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 온 것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또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일거수 일투족을 다 세밀하게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생각을 멀리서도 통촉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 우리의 생각이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생각이 어떻게 들어가며 어떻게 감추어져 있으며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밤에 자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을 못해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어떤 길을 다니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하루 종일 보고 계시며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잠을 자도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 이 구절에서 ‘감찰한다’는 말은 ‘체질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담아 키질을 할 때 알곡은 알곡대로 모이고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체질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행위를 알곡과 돌을 가리듯이 세밀하게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이든, 생각하여 한 말이든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게 듣고 계십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남자는 하루 동안 2만 5천마디의 말을 하고 여자는 3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인생의 1/5은 말을 하고 지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마 12:3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부모나 배우자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너무나 세밀하고 정확하고 놀라와서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밖에 없어 6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지식이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또 나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다 알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머리를 깜아 머리 카락이 빠져 나가고 생기고 하는 데도 그 숫자가 몇 개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50억이 넘는 모든 인간의 머리카락 숫자를 순식간에 다 세실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정밀하고 세밀하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깨닫게 된다면 어찌 그분의 능력을 찬송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또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즉 어느 곳에나 다 계시다는 말입니다.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십니다.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새벽 여명에 아침 햇살이 어두운 하늘을 가로지르며 저 바다 끝까지 날라가니 얼마나 빠르겠습니까? 그런데 그 빠른 광속으로 바다 끝까지 도망가도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캄캄한 흑암 속에 숨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흑암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태양 빛은 낮 동안에 우리가 어디를 가나 비추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시공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즉 밤이 되거나, 우리가 캄캄한 땅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비추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으로 그분이 영이요 빛이시기 때문에 이 우주 가운데 충만하십니다. 그래서 수십억의 인간이 어디를 가나 다 보고 계시고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하게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고, 그분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고, 그분의 능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3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또 히브리서 4장 12절에도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감추인 것이 없고 하나님의 눈길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도할 때 바로 옆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안에서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정말 주님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찬양합니다. 저를 떠나지 마시고 저와 함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찬양합니다. 저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소망의 불꽃을 가진 찬양

찬양 기도는 바로 희망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풍랑 가운데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스투름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슬픔에서 잠잠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그것이 당신의 표어가 되게 하라
그의 날개 아래 순종하는 자세로
당신에게 찍힌
그의 형상을 받아들이라
하나님 안에서 잠잠하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한 평화를 알게 될 것이며
기쁨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밤과 슬픔을 헤쳐나갈 것이다

시련 가운데에서도 찬송을 드리는 것은 가장 최고의 수준의 기도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매를 맞고 나서 깊은 옥에 갇히고 발은 착고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밤중이 되자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찬미의 기도를 드립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 감옥에서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헬라어 동사와 분사는 그들의 노래가 기도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찬미와 노래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찬미 때문에 지진이 발생하여 죄수의 사슬이 벗겨지고 옥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의 사건으로 간수장이 구원을 받고 그 가족이 빌립보 교회의 핵심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난 가운데 우리의 초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점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필요보다는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스스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노래로 찬양하며

성경은 우리에게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시 149:1).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시 40:3). 이것은 우리가 항상 새로운 자세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찬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어제 찬양했다고 해서 오늘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도 새롭게 찬양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감사와 감격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처음에 찬양 기도가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때 “할렐루야” 라는 찬송을 반복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음송가 노래를 부릅니다. 또 찬양 테이프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면 찬양의 시동이 걸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온전한 찬양은 새 마음으로만 드릴수 있습니다. 새 마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새로운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천사의 사역인 찬양에 전념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찬양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유의점

찬양 기도를 드릴 때는 감사와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또한 주님을 찬양한다는 일반적인 고백과 더불어, 구체적인 찬양 제목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찬양할수록 더욱 풍성한 기도의 장이 열리게 됩니다.

유익

찬양 기도를 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에 기쁨이 솟아나며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깁니다. 찬양 기도는 또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며 사단의 궤계를 파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찬양 기도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나가는 유익이 있습니다.

시간

찬양 기도는 시공간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드릴 수 있습니다. 집에서든지 걸어갈 때에든지 일할 때에든지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편을 읽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찬양 기도를 드리는 것도 한가지 중요한 찬양 기도의 방법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약 20분 정도면 찬양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삶이 찬양이 되도록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생각해 볼 문제

1. 여러분이 찬양의 감격을 느껴 본적은 어떤 경우였는가?

2. 여러분이 즐겨 찬양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가?

3. 찬양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사례를 성경에서 찾아보고 그 의미를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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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부산 참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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