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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장례를 도왔던 아리마대 요셉을 생각하며 2010. 4. 2. 새벽기도의 목사님 말씀 중 “이사야 53:9의 부자(富者) = 복음서의 아리마대 요셉” * 너무 새삼스러워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
1.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그리고 예수님의 장례식 (요한복음 19: 38~42)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隱諱]하더니 이 일 후에 빌 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은휘[隱諱]하다 - 꺼리어 감추다) 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 덤이 있는지라 42. 이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카라바조의 예수의 장례)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는 명화 중 라파엘로의 예수의 변모와 함께 가장 빼어난 그림이다. 카랍조는 어 두운 배경에 검붉은 옷을 입은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검푸른 옷을 입은 애제자 청년이 돌무덤에 예수 시신을 내려놓는 장면 인데 뒤쪽의 세 여자는 각기 다른 손동작을 하고 있다. 연로한 성모는 아들 머리쪽으로 손을 벌리고 있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 는 푹 숙인 머리를 오른손으로 받치고 있고 살로메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있다.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장례식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두 사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 모를 만납니다. 예수님에 대해 관심도 있었고 믿음도 있었지만, 그 동안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할 정도로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아리마대 요셉과 그리고 니고데모… 하지만 용기를 내었고 시신 수습과 묘실 제공, 몰약 과 침향 백 근으로 예수님의 장례식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마 이 일로 인해 이후, 그들의 삶은 전과는 다 른 삶으로 변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편으로 조금 더 일찍 주님 생전에 용기를 내었더라면, 좀 더 많은 기쁨을 주님께 드릴 수 있지 않았을 까 하는 것. 하지만 나중에라도 기회를 찾아 주님을 섬길 수 있었음 또한 중요하다는 것… 예수님 장례식을 통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변화를 묵상하며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2010년 4월, 현재는 이미 인류 구원의 완성의 때요, 은혜의 때, 그리고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 았음에도 주님 섬기기에 여전히 게으른 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었기에 철저히 그 뜻에 순종하시어 십자가를 지시고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우 리를 단번에 구원해주신 예수님… 하나님의 뜻이기에 내 뜻이 아니어도 자기를 부인하고 당하는 고난만이 진정한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는 진리를 새삼 절실히 느끼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주님 원하심을 깨달을 때, 주님 말씀하실 때, 기회가 있을 때, 그 뜻 앞에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 원하시 는 일을 이루어 드리는 신앙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이루며 두 사람 얼굴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2.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관련 말씀들
마태복음 27: 57~60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분부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사53:9)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가복음 15: 42~47 42. 이 날은 예비일 즉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 람은 존귀한 공회원(公會員)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사53:9, 요19:38)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細麻布)를 싸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누가복음 23: 50~54 50. 공회 의원(公會議員)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可)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 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52.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요한복음 19: 38~42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 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 는지라 42. 이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이사야 53: 9후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장례에 대하여 예언한 부분) 9. 그는 강포(强暴)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詭詐)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 께 되었으며 그 묘실(墓室)이 부자(富者)와 함께 되었도다.
그레엄 서덜랜드(영국 출신) 편안히 잠든 예수의 얼굴, 막달라 출신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 옆에서 슬픔에 차 몸을 가누지 못하며 그의 옷은 예수의 몸을 가리고 있다.
3. 아리마대 요셉의 가상 일기 가끔씩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최소한 그 날이 바로 그러했다. 관청에서의 나의 마직막 근무의 저녁, 나는 지금까지 산헤드린이 그렇게 마치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마도 어떤 사람이 그들의 목적에 대하여 거절하는 말이나 일을 할 것이 라고 생각했었다.
것이 아니었으며, 그 집에는 벌써 이스라엘의 재판관과 입법자(국회의원)가 있었다. 안뜰 밖 에는 성전의 경비대와 군중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알았고 존경하던 그분이 우리들 앞 에 서 있었다. 그는 나사렛의 예수였다. 나는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메시 야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해 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가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그에 게서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말 하길 자신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했었다. 자리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다. "만약 그가 할 수 있다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으며 그들을 구원하게 하자!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예수가 의미했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여러 가지 말로 말했었다. 이 사람 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구원자로 지명한 사람이었다. 인 적이 없었다. 나는 비밀스럽게 예수를 따랐다. 왜냐하면 산헤드린의 다른 사람을 두려워했 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나의 믿음을 경멸했을 지도 모르며, 나를 조롱하며 관리직에서 내쫓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아리마대를 떠난 이후 수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내가 비록 나사렛의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믿었지만 나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리들이 그를 비웃었으며, 잘못된 고발자가 그에 대하여 거짓말했다. 어떤 관리들은 이 재판이 위법이라고 거절하기도 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동조했다. 그러나 그러한 거절은 한쪽으로 밀렸다. 우리의 지도자가 그에게 명령했으며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기 위해 빌라도에 게 보내어졌다. 이스라엘의 믿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 왔었다. 나는 아마도 예수 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함께 모으며, 로마의 정복자들을 내쫓고, 하늘의 왕국을 세울 것이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기대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는 이것을 지켜보았다. 예수는 심한 고통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 내가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나는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그늘에 있었다. 나는 어느 누구도 나를 발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그의 팔이 펼쳐져 세계를 껴안고 있 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고난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가 죽는 것을 보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의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죽기 직전에 용서의 소 리를 내었었다. 용서! 로마의 군인, 우리의 모든 전략보다 더 강력한 것이었다. 용서! 용서! 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더 이상 나에게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 과거에 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고 나는 결정했다. 아마도 나의 침묵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강력한 격려의 목소리가 되었다. 빌라도와 면담을 요구했으며 나의 유대인으로서의 지위 때문에 나의 청이 받아들여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예수의 죽은 시신을 내 무덤에 장사 지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하게 마련이다. 나는 빌라도가 어떻게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로마의 관행으로는 사형 당한 죄인은 매장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그들의 관행을 무시할까? 물론 유대인을 싫어했 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잘 대해줌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내 요 청에 응해 서류에 도장을 찍어 나에게 주었다. 아마도 그는 내 안에서 산헤드린이 자신의 일 에 압력을 가했던 일들에 대한 보복할 수 있는 기회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친구 니고데모에게 내 가족의 묘지에서 만나자고 말을 전하고, 골고다 언덕으로 되돌아 갔다. 나는 백부장에게 빌라도의 서류를 보이며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 후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까이서 쳐다보고 있는 동안 몇 명의 군 사를 나에게 붙여 시신 내리는 일을 돕도록 했다. 나는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도움을 청했고, 우리들은 그의 시신을 가까이에 있는 내 가족묘지에 장사 지냈다. 우리는 예수의 시신을 이집트에서 하는 것처럼 방부제 처리를 하지 않고, 준비한 것으로 닦아 깨끗하게 하고 상처들은 닦아냈다. 그의 머리, 배, 등. 그리고 우리는 시신을 천으로 여러 번 둘러싸고 향료를 발랐다. 시간이 늦어, 우리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일을 마치기 위 해 서둘렀다.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내려놓은 후 니고데모와 다른 사람들이 무덤의 입구에 커다란 돌을 굴 려 놓았다. 그것은 무척 무거웠으며. 누구도 쉽게 옮겨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의 지도자들의 요구로 나중에 빌라도는 무덤의 입구에 직인을 찍고 경비병을 세워 아무도 예 수의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상 내 자신이 산헤드린 회원이기를 거부하는 것, 유대인들 가운데 좋은 내 명성, 그리고 내가 내 인생에 대하여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마지막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산레드린과 모든 사람들이 내가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 나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더 이상 개의치 않는다. 깊은 슬픔의 얼굴로 나는 내 목소리를 찾는데 긴장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기쁨인가? 그것은 용기의 목소리요, 축복의 목소리였다. [펌글]
(1480년경 한스 홀바인 작품 ) 예수님의 시신 그림들 중 자세히 감상하기 어려울 만큼 섬뜩한 작품이다. 홀바인이 25세에 그림 작품을 보면 예수님의 머리칼은 헝크러지고 눈은 부릅떴으며 빰은 푸르둥둥하다. 입은 쩍 벌어지고 가슴은 창자국이 선명하고 손가락들은 오그라들었다. 죽음의 참상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그릴 수가 있을까?
4. 아리마대 요셉(개신교)-아리마태아 요셉[Joseph of Arimathea]
아리마대 요셉(개신교), 또는 아리마태아 요셉(천주교)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명 (마 27:57)으로,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란 뜻이며, 누가에 따르면 ※ 유대인(히브리어: יהודי Yehudi) 또는 유태인(猶太人, 영어: The Jews, Jewish people) 종교적인 의미 에서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 민족적인 의미에서는 혈연 또는 개종을 통해 고대 히브리 민족의 후예가 된 유대민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민족적인 의미를 다룬다.
1) 복음서의 아리마대 사람 요셉 복음서에 따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명망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개역한글에서는 공회, 공 동번역에서는 의회로 번역되어 있다.)의원이었고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의 통치와 질서를 열 심히 대망하는 거룩한 사람(마 15:43)으로,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을 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눅 23:51) 그의 행적 중 가장 유명한 행동은 그리스도의 장례를 치렀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형으로 처형 당하자, 그 시체를 내려다가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 만든 무덤에 모셨다.(눅 23:53) 이는 바위무덤에 시체를 모셨다가, 유골만 남으면 유골함에 모시던 유대인들의 장례방법에 의 한 것이다. 요한복음서에서는 그를 예수의 제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약성서를 연구하는 성 서신학자들 중에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을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요 13:23)라고 보는 이 들도 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 인디아나 존스에서 잠깐 언급되기도 했다.
2) 외경과 전설에서 언급되는 아리마대 요셉
◆ 성배 관련설 전설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성배 안에 모았다고 한다. 그 피는 로 마의 백부장이었던 롱기누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입혔던 창에서 흐른 것 이었다.
◆ 외경 빌라도 행전 5세기 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빌라도 행전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에 겪은 이야기들이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가 그의 부활로 인해 무덤에 서 사라진 후에 요셉은 시체를 훔친 자로 오인되어 40년 형을 언도받았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났고 그에게 성배를 주면서 이를 보호하는 수호 자로 삼았다. 이 성배의 힘으로 그는 감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매일 그에게 한 마리의 이 이야기는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숭배자인 이세벨과 아합의 탄압 때문에 도망할 때 까마귀가 매일 빵을 날라다 주었다는 열왕기상의 전승을 연상하게 한다.
◆ 영국 이주 전설 전설에 따르면 감옥에서 나온 후에 고령의 요셉은 그의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처 남 브론과 그의 아들 알란과 함께 성배를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간다. 서머싯주(州)에 있는 글래스턴베리에 그는 작은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이 교회는 1184년에 불 탔고 대신 대규모의 수도원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이 수도원도 1539년 헨리 8세의 영국 종교개혁(England Reformation) 시기에 로마 가 톨릭이 탄압받으면서 파괴되어 버린다. 오늘날에는 단지 그 폐허만이 남아있다). 전설은 이외에도 그가 글래스턴베리에 도착해서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꽂았을 때에 그곳에서 가시나무 덤불이 자라났다고 한다. 수백 년 간 이 덤불은 그 작은 교회 안에서 성탄절 때마다 꽃을 피웠다고 하는데, 성공회에서는 이 전승이 교회사적인 근거는 없지만 영국에 기독교가 이 미 고대교회 시기에 상륙했다는 증거로 이해한다. 또 다른 전설들에 따르면 요셉은 성배를 글래스턴베리의 성문 곁에 묻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철분을 많이 함유한 이른바 성배우물(Chaice Well)의 근원이 만들어졌고 그 우물물의 붉은 기 운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성배 이야기는 다시 아서왕전설로 연결 된다. 이러한 글래스턴베리를 둘러싼 요셉과 관계된 이야기들은 모두 전설들이며 기독교 초창 기 문서들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유럽 대륙에 만연해 있던 성인과 성물에 대한 숭배와 (특히 이탈리아) 이들의 영향에서 벗어 나 독자적인 모습을 갖추려는 중세 영국의 성인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러한 전설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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