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운동의 선봉장, 우드워드-에터
오순절운동의 선구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후에 오순절 신학의 교리들의 한 부분들을 형성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 여러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를 비롯하여 존 도위(John A. Dowie), 심슨(A. B. Simpson), 고든(A. J. Gordon), 컬리스(Charles Cullis), 마한(Asa Mahan), 팔머(Phoebe Palmer), 토리(R. A. Torrey) 등이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오순절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한 사람을 지명하라면 19-20세기의 가장 잘 알려졌고 유명했던 성공적인 순회 여류 부흥사 우드워드 에터(Maria B. Woodworth-Etter)를 들 수 있다. 그녀는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20세기 오순절운동에서 승낙할 수밖에 없고 필수적인 부분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신학적 요소를 전파한 19세기의 유명한 사역자였다. 그녀가 전파한 신학은 구원, 성결, 성령세례, 치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이었다. 그것들은 오순절신학의 핵심 신학적 주제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대중성과 평판의 많은 부분들도 오순절운동에 그대로 전수되어져서 초기 오순절 부흥에 영향을 미쳤고 선봉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1. 불행과 고난의 삶
우드워드 에터(Woodworth-Etter)는 12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돕기 위하여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3살 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회심하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을 때에 그녀는 자신의 교회에는 여성 사역자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우드워드(P. H. Woodworth)라는 남자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며 여섯 자녀를 낳았지만 열악한 설교 활동에서 그들을 양육하기는 정말 힘이 들었었다. 그런 차제에 불행이 연속적으로 닥쳐와서 자녀들이 병으로 하나, 둘 쓰러지더니 마침내 여섯 자녀 중에서 다섯을 잃는 가슴 찌어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또한 남편의 간통문제 때문에 1891년 이혼을 하게 됐는데, 그만 남편이 그 다음해에 죽고 말았다. 10여년을 혼자 지내던 그녀는 1902년 사무엘 에터(Samuel Etter)라는 사람과 재혼을 하면서 그녀의 이름에는 우드워드-에터(Woodworth-Etter)라는 합성어가 생기게 되었다.
2. 하나님의 부르심과 대중 전도사역
우드워드는 1879년 35살 때에 한 부흥집회에 참석했다가 사명에 대한 강한 영적인 위임(委任)을 새롭게 받게 되면서 곧 헌신하게 되었고, 오하이오(Ohio) 주에 있는 지역 교회들을 통하여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능력 있는 전도설교 사역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신학은 주로 마한(Mahan), 피니(Finney), 심슨(Simpson)에게서 전수받았고, 그리고 하나님과 성경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그녀의 전도 집회는 주로 회심을 강조하는 전도자의 설교를 하였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고는 마지못해 병자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또한 예언 사역을 하면서 특별히 최후심판의 날에 대한 예언의 말들을 많이 하였는데, 1890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연안에 지진이 일어나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에터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1883년부터 그녀의 사역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한 집회를 인도할 때에 사람들이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성령과 불세례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15명의 사람이 자비를 간구하며 비명을 지르면서 강단으로 나오더니 마치 초기 개척자 모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황홀경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 황홀경의 경험은 그녀에게는 생소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만은 확신하였다. 그로 인하여 곧 사람들로부터 “황홀경 부흥사”(Trance Evangelist)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사역을 통하여 믿음 치유 사역은 계속 수행되어졌고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오순절 능력”으로서의 성령이 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여러 가지 영적 은사들이 나타났다.
그녀의 사역은 각 주(the country)를 넘어서 천막과 교회당에서 이루어졌는데 집회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1885년 인디애나 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는 약 2만5천명의 군중이 참석하였을 때에 회심할 것을 초청하자 회심을 결심하는 사람들 중에 500여명이 성령에게 압도당하여 땅에 쓰러지는 아수라장이 일어났고, 성령이 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우드워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리 위에 임하였고, 약 5백 명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졌으며, 다른 사람들은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고 손을 올렸을 때에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왔다...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당대의 신문들은 우드워드의 집회 광경을 가장 큰 기사거리로 실었고, 심지어 엄청난 군중들의 모습을 일면 톱기사로 선정하여 집회 광경과 흥분된 상황, 강단에 있는 우드워드에 관한 것을 기사화했다. 그리고 가끔은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기사를 실면서 거짓속임수로 돈을 착취하여 사용했고, 자격증도 없으면서 의료행위를 한다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우드워드-에터는 설교의 소명을 결코 잃지 않고, 설교는 회심자를 얻고자 노력했으며, 교회들을 세워나갔고, 성결의 가르침을 확산시켜나갔으며, 오순절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8,000석이 넘는 대형 천막을 만들어서 거대한 군중집회를 인도하였고, 그의 사역의 결과로 12개의 교회가 시작 되었고, 1,000명이 넘는 여섯 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여러 개의 주일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녀의 부흥회에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많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거대한 회심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19세기 동안 그녀는 “능력”이라고 일컫는 회심 후에 받는 영적 경험을 설교하므로 이로 인하여 가끔 황홀경과 환상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이 현상은 오순절 날에 일어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초대교회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술 취한 사람처럼 행동한 것과 같은 현상이며, 또한 사도 베드로가 욥바에서 환상을 경험한 것과 같은 유형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현대 오순절운동의 선구자 파함(Charles F. Parham)이 토페카에서 오순절적인 경험을 한 것보다 10년 전부터 우드워드의 사역을 통하여 죄인들은 회심하고, 수많은 병자들은 치료를 받았으며,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능력 아래 들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것이다.
3. 오순절운동 사역
우드워드는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최초의 육체적 증거”(initial physical evidence)는 방언이라는 오순절 신학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설교와 사역에서 이러한 현상은 수없이 일어났다.
1894년 「주님의 영광」이라는 설교에서 위로부터 능력을 입는 성령의 세례는 신자들을 돕기 위하여 받는 능력의 경험으로서, 오순절 날 120명의 신자들이 받은 것처럼 19세기의 교회 신자들에게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거대한 부흥은 세상을 흔들기 위하여 준비된 것으로, 수천의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있다. 오순절 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시대를 거듭하여 일어나야 할 것을 계획한 것이다. 오순절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야 한다.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항상 나타나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녀의 초기 사역에서부터 방언은 주장하지 않았지만 중생 후에 후차적인 경험으로서의 성령세례를 주장하였기에 그녀의 집회에서는 항상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생겨났었다. 그녀의 신학에는 성령세례와 믿음치유가 밑거름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순절운동의 선구자였다고 믿고 있다.
우드워드-에터는 오순절운동이 일어난 광경을 보면서 오순절운동이야말로 마가다락방의 오순절 날 이후로 교회 속에서 일어난 역사들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보고, 1912년을 시작으로 중요한 행사들을 오순절운동과 함께 연계하여 전개해 나아갔다. 1912년 달라스의 젊은 오순절 목사이며 유명한 부흥사인 보스워드(F. F. Bosworth)의 초청을 받고 5개월 동안 천막집회를 개최하였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은혜를 받아 각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오순절 능력으로서의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집회에 수많은 영향력 있는 오순절주의자들이 참석하였고, 세계에 흩어져있는 오순절 출판사들은 그 집회 사실을 보도하였다.
또한 1913년 로스엔젤로스에서 있었던 세계 오순절 캠프집회의 주강사로 서서 설교를 하므로 그를 통하여 많은 오순절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특별히 그녀의 명성과 진실성이 확산된 것은 그녀의 책들 때문이었는데, 당대의 사람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읽혀지는 책들이었다.
보스워드(Bosworth)는 『성령행전』(Acts of the Holy Ghost)에서 이렇게 간증하고 있다.
“오순절운동의 모든 신자들은 에터 자매의 책을 복사해서 가지고 다녔다. 그것은 믿음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사도행전 이후 그와 같은 책이 없을 정도였다. 오늘날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죄와 질병을 계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스탠리 스미스(Stanley Smith)는 우드워드의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를 읽고서 간증하기를 “그 책은 나에게 성경 다음으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특별한 때에 나는 한편에는 신약성경을 가지고, 다른 한편에는 에터의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움을 발견했다... 나는 이 사역이 교회 역사 속에서 에터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기에 견줄 수 없는 것이라 생각 될 때에 모험을 감행한다. 나는 안다. 그것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분명히 우드워드-에터의 책은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책들은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이 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녀는 40년이 넘게 성결-오순절 설교자로, 부흥사로 활동하면서 오순절운동에 주요한 요소들을 물려주었다. 구원과 믿음치유, 성령세례의 경험과 거대한 천막집회를 통한 구원-치유사역 방법들을 전수해 주었다. 윌리엄 화우펠(William Faupel) 박사의 말처럼 우드워드-에터(Maria B. Woodworth-Etter)는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오순절 메시지가 확산될 수 있도록 기념비적인 용어들을 형성해 주었던” 여성 부흥사였다.
우리는 우드워드-에터처럼 건전한 신학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21세기의 여류 부흥사가 다시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목회멘토링연구소 김성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