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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문(全文)

성탄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구주로 찾아오신 날

작성자사람낚는어부|작성시간10.12.19|조회수368 목록 댓글 0

 

 

 

 

 

 

 


성탄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구주로 찾아오신 날

(누가복음 2: 8-14)

 

성탄절이 예년과 다름없이 올해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로 보내는 날도 없을 것입니다.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성탄절을 명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드를 주고받고 선물을 교환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캐럴을 부릅니다.

집과 거리에는 울긋불긋한 조명과 종이로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좀 우스꽝스럽습니다.

성탄의 의미도 잘 모르는 채 즐거워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 하니까 나도 즐거워 한다는 식입니다.

  

어느 기독교 단체에서 사람들이 성탄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올림픽 마크가 1위, 맥도날드가 2위인데,

성탄절에 대한 이해와 인식도는 8위였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의 주인공이어야 할 예수님 대신에 산타크로스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성탄의 찬송 대신에 징글벨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릅니다.

  

아들딸을 잘 기르고 결혼을 시켜서 손자, 손녀까지 둔, 홀로 사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생신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모여서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겠다고 다 모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딸, 손자, 손녀가 다 온다고 하니까 아침부터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자녀들이 와서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얘

기를 나누고 TV를 보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났는데도 그 많은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가운데 상을 치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70이 가까운 어머니 혼자 부엌에서 덜거덕거리며 설거지를 하

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으면서도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음식

을 먹고, 어머니에게 설거지까지 시켰습니다.

누구 생신입니까? 누가 누구를 축하해 준 것입니까?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닙니다. 더더욱 산타가 아닙니다.

  

베들레헴 근방의 들에서 목동들이 밤에 자기 양들을 지키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곁

에 섭니다. 그리고 주의 영광의 빛이 목동들을 비칩니다.

목동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천사를 목격해보지도 못했고, 그렇게 영광스러운 빛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너무도 놀라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말하기를,

“무서워 말라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과 함께 갑자기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

  다!”

이 천군 천사들의 찬송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얼마나 황홀하고 감동적인 찬송이었을까요?

아마 우리 할렐루야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과 버금가는 찬송이 아니었을까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쁜 소식이 되는 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넘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시간을 초월하여 오고 오고는 세대에게 큰 기쁜 소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뉴스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식도 몇 번 듣고 나면 싫증이 납니다.

그러나 목동들에게 전해 준 뉴스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란 말은 헬라어로‘메갈렌’인데,

그 의미는 큰, 중대한, 위대한, 굉장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굉장한 소식, 위대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사람이 창조되어 이 세상에 살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에 있었던 수많

은 소식들 중에 이 소식보다 더 크고 굉장하고 중대한 소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일 크고 놀라운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쁜 소식은 많이 듣습니다.

누가 칠순을 맞아서 기뻐하고, 수능시험을 잘 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기뻐하고, 자식

이 사업에 크게 성공했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이 소식은 그 정도 기쁘고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구주가 나셨다는 이 소식은 한 마디로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좋

은 소식인 것입니다.

내 인생 전부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그런 놀라운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날

 

구주가 태어나셨다는 말이 왜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위대한 소식일까요?

구주가 태어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제2위가 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성탄절은 제 2위가 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입니다.

이것을 성육신,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제 2위가 되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사건 중에 사건이에요.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사람이 절대자에게 찾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이 사건 때문에 우리가 성탄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제 2위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친히 입으시고 이 땅의 태어나신 날입니다.

  

찬송가 109장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찬송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부르는 찬송입니다. 왜 거룩한 밤, Holy Night라고 할까요?

1년 364일은 그냥 Night이라고 하는데, 왜 유독 Holy Night이라고 합니까?

거룩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밤이기에 거룩한 밤, Holy Night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거룩한 밤, Holy Night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입고 incarnation하셨기 때문에 Holy Night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탄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

신 날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찾아 오셨다는데 성탄의 메시지가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은혜이고 여기에 성탄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찾아 와서 같이 지내는 밤도 평생 잊지 못할 기쁜 날 일턴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찾아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신 성탄

절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으며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탄은 두 번째 위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찾아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잊어서는 안 되며, 이 날을 기쁘게 찬양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주로 오심

 

왜 제2위 되신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까?

11절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까? 너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의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성육신의 주목적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incarnation하셨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허물과 죄로 우리의 영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려면, 우리를 구원하려면 누군가 죄 없으신 분이 오셔서 우리

 대신 피를 흘려주셔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이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구속의 원리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제2위가 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원하셔서,

“내가 가마. 내가 사람이 되마. 내가 피를 흘리마. 내가 죽어주마. 내가 너희를 살려 주

  마” 하시고는 이 땅에 구주로 오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 불 심판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

해 구주가 오셨다는 소식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형수는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늘 불안하다고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혹시 사형이 집행되지 않나 불안하다고 합니다.

밤에 되어서야‘오늘도 살았구나.’하는 안도의 숨을 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형수에게 1년 그 사형집행 날짜가 연장된다고 하면 기쁨의 소식일 것입니다.

10년 연장은 정말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형 면제되었다고 하면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목요일에 부산에서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옥상 물탱크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김길태 씨에게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고 합니다.

비난 여론이 무성하지만, 본인 입장에서 보면 무기징역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구주가 오셨다는 것은 죄악으로

멸망 받아야 하는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

시고 천하고 천한 이 땅을 찾아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마음에 감동이 밀려

옵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흥분이 밀려옵니다.

  

오늘 본문의 14절에도 보세요.

천군 천사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습니까? 뭐라고 합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

  화로다 하니라”

누구에게 하늘의 평화가 임합니까?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평화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으면서 아멘 하는 사람, 강보에

쌓여 누인 아기를 보고 구주이신 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 되는 것입니다.

누구 진정으로 성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까?

누구에게 크리스마스가 Merry Christmas!가 될 수 있습니까?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셨음을 진정으로

깨달은 자만이 Merry Christmas!가 될 수 있고 감동의 Christmas!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은 바로 이 큰 기쁨을 새롭게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에게는 이 기쁨이 있습니까?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큰 기쁨이 있습니까?

올해도 우리가 Merry Christmas를 수없이 외치게 될 것인데, 혹 내 마음에는 진정한 큰 기

쁨이 없이 형식적으로 Merry Christmas를 외치지는 않습니까?

  

성탄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생각보다 성탄 감사예배에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인데 왜 이렇게 성탄 감사예배 출석률이 저조할까요?

정말 성탄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성탄 감사예배를 소홀히 할 수 있을까요?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Christ(그리스도) + mass(천주교의 미사)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그리스도에게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 성탄절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구주로 찾아오신 아기 예수를 진정의 기쁨과 축하의 마음

으로 예배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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