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제게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한소원
육교의 층층계단을 내려오다
우연히 당신을 만났습니다
그때 나는 하늘을 올려 보았는지
무수히 겹쳐진 사람들의 발자국을 세며 걸었는지,
당신이 제게 오는줄도 몰랐습니다
한 사람 오직, 당신과의 우연한 재회가 한 시절 바람의 전부이던,
해야 할 푸른 말들과 눈빛, 표정을 준비하던
가슴 잎사귀 떫은 그런 나날은 시나브로 퇴색하여
그저 보통 사람의 평범한 날,
당신이 저만치 오는줄 정말 몰랐습니다
미궁의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거나
간밤에 잘못 자세하여 어긋나진 목을 추스르는 등의,
허튼 생각으로도 옳게 찾아가는 익숙한 그 길에서 만난
햇빛 들이찬 유리알같은 맑은 눈의 당신
불편하거나 조금의 서먹함도 느낄 수 없던 스치던 그날의
당신은, 나는, 천년의 세월을 지나 온 듯한
또 천년의 세월을 지나야 다시 만날듯한,
복사꽃 폭설터져도 좋을 아쉬운 절정의 순간에도, 성숙으로 절제된,
가벼운 미소만을 짧디 흩날려 목례하고 멀어졌지요
아아, 우리가 1로 포개어졌다가 11의 두 사람으로 분열하여
엇갈려 나아가던, 고무줄처럼 당겨지는 등 뒤 당신의 마음을 느끼던
그때 문득,
당신이 제게 오는줄도 몰랐던 것은
당신이 제 가슴 한켠에 늘 살은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은 없었지만
언제고 기다려 달라는 무거운 부탁 또한 없었지만
가지 않고도 동행하는 길, 거듭의 생으로
몇 만번의 우연을 인연하여 살아가는 앞으로의 동안에도,
나는 당신이 제게 오는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