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일본종이의 비교
김중태 (종이박물관 학예연구실장)
1. 한지(韓紙)의 어원
한지!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접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韓브랜드 사업이 진행되면서 우리 입에 더욱 자주 오르내리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전통종이를 말하는 한지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한지’ 명칭의 유래에 대한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양지(洋紙)의 반대 개념으로 등장했다는 주장으로 서양의 것과 구별하려고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전통 종이는 겨울에 원료를 거둬들여, 찬물에 담가 좋은 질의 원료를 만들었다 하여 한지(寒紙)라고 했다는 것이고, 셋째는 중국의 화지(華紙), 선지(宣紙), 일본의 화지(和紙)에 대응하여 붙인 우리의 종이를 말하는 것이고, 넷째는 대한민국의 한(韓)자를 따서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50년 이전에는 한지 용어에 대한 자세한 문헌 자료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원래 우리 민족은 종이를 있는 그대로 종이, 조히, 조선지, 창호지, 문종이, 참종이, 저지(楮紙) 등으로 불렀으며, 그 외에 재료와 만드는 방법, 쓰임새, 생산지와 크기에 따라 달리 불렀을 뿐 한지라고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한지’는 서양 문물이 들어와 모든 문화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생성된 언어로 생각된다.
2. 한지, 왜 좋은가?
한지의 우수성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이 좋으며, 왜 좋은지 물어보면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단지 오래 보존한다는 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지의 우수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또한 우리가 실생활에 직접 사용하면서 그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지의 우수성은 대략 아래와 같이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한지는 수명이 다른 종이에 비해 매우 길다는 것이다. 견오백지천년(絹五百紙千年)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은 수명이 500년인데 비해 종이는 1,000년을 간다는 말이다. 1966년에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751년 불국사가 창건될 당시 석가탑 안에 넣어두었던 이 불경은 닥종이에 목판 인쇄한 것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이다. 이렇듯 한지가 수명이 긴 이유는 한지가 PH7.5 정도를 유지하는 중성지이기 때문인데, 중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가지고 자연과 하나 되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지가 질기다는 것이다. 이는 한지의 원료인 닥피의 섬유 길이가 다른 나라의 원료에 비해 길고, 또한 중국과 같이 맷돌을 이용해 갈지 않고, 방망이로 두들겨 고해하기 때문에 섬유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한지는 외발을 이용해 전후좌우로 흔들어 만든 후 두 장을 합해서 한 장을 만드는 반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가둬뜨기 방식으로 종이를 만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광택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먹을 머금었을 때의 광택을 보는 발광도 실험 결과 표면이 고른 한지의 빛의 반사율은 3.0을 기록한 반면, 화지나 선지는 이보다 발광도가 떨어지는 2.3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닥섬유 자체의 광택도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먹 번짐이 좋다는 것이다. 먹을 주로 사용하는 서화용 종이는 대체로 먹색이 윤택하고 먹물이 고루 먹히면서도 많이 번지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한지는 도침이라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의 종이에 비해 종이의 조직이 치밀해서 먹이 거의 번지지 않고 스미기만 한다.
다섯째는 방온 및 방풍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한국의 한 원예학자가 2002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원예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은 대회참가자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1450년경에 한지를 이용해 온실을 만들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때가지 학계에서 최초의 인공난방 온실로 인정하던 독일보다 170년이나 빠르고, 자연온실을 개발한 영국보다 240년이나 빠른 기록이다. 또한 조선시대 함경도 지방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은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 솜을 대신하여 한지를 넣어 만든 옷을 입었다고 하며, 창호지와 문풍지만으로 겨울을 났던 우리 전통 가옥 구조를 보아도 한지의 방온·방풍 효과가 얼마나 우수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여섯째는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한지는 한 장만으로도 다른 종이에 비해 월등히 질기기만 여러 장을 겹쳐 놓았을 때의 내구성은 가죽을 능가한다. 조선시대 일부 군사들은 한지를 이용해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하며, 민가에서는 신발이나 의복, 그릇, 주머니 등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일곱째는 통기성과 습도조절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닥피로 만든 우리 전통 한지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구멍이 많아 그곳을 통해 바람과 빛을 통과시키고, 습기가 많으면 그것을 빨아들여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공기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알맞은 습도를
우지하게 하는 신축성을 갖고 있다.
여덟째는 냄새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지 벽지를 바르면 담배 냄새 등 집안의 잡냄새가 없어지고, 아이들의 아토피에 진정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한지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우수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문필용으로 뿐만 아니라 건축용, 생활용, 실내장식용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현재에도 벽지, 차량용 필터지를 비롯해 생활 공예품 및 의복 제작에도 사용하고 있다.
3. 종이의 종가(宗家) 중국에서 평가한 한지(韓紙)
앞에서 언급한 우수성으로 인해 한지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최초로 종이를 만들었던 중국에서 조차 인기가 매우 높았다. 그들은 우리 종이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보관하는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길 정도로 한지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는데, 과거의 기록물 속에 나타난 중국인들의 한지 사랑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청이록, 700년 편찬 - “당나라에 전해진 계림지는 거울처럼 희고 매끄럽다.”
● 송사(宋史), 1015년 편찬 - “고려의 사신이 백추지를 가져왔다.”
● 고려사, 문종35년(1080년) - “송나라 황제가 대지(大紙) 2,000폭을 요구했다.”
● 부훤야록, (송나라 진유) - “고려지는 곱고 견고해서 빛이 난다.”
● 계림지, (송나라 손목) - “고려지는 윤택이 나고 흰빛이 아름다워 백추지(白硾 紙)라 부른다.”
● 능양서초, - “고려지는 비계를 잘라 놓은 것처럼 반질반질하다.”
● 금화경독기, - “고려지가 천하 제일의 종이이다.”
● 보만재총서, - “송나라 사람즐은 고려지를 최고로 여긴다.”
● 고려사, 고종8년(1220년) - “몽고 황제가 종이 10만장을 요구하였다.”
● 고려사, 원종4년(1264년) - “표지 500장과 주지 1,000장을 몽고 황제에게 보냄.”
● 조선왕조실록, 태종8년(1408년) - “명나라 왕실에 순백후지 6,000장을 보냄.”
● 조선왕조실록, 세종원년(1419년) - “명나라에서 불경 인쇄에 필요한 백지 25,000장을 요구하여 바침.”
● 고반여사, (명나라 도륭) - “고려에 면견지가 있는데 비단같이 질기고 글씨를 쓰면 발묵이 좋다.”
● 승정원일기, 인조27년(1649년) - “청나라 황실에서 백련지 26만장과 상화지 5,800장을 요구해서 보냄.”
● 비변사등록, - “청나라 황실에서 백련지 132만장과 후백지 42만장을 요구해서 보냄.”
● 청나라 건륭 황제는 궁내에서 반드시 고려지를 사용하라고 명령.
4. 한국·중국·일본 종이의 비교
1) 3국 전통 종이의 특징
한국과 중국, 일본 동양 삼국의 종이는 모두 오랜 역사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한지는 주로 닥나무를 원료로 만들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보존성이 매우 탁월하며, 질기면서도 유연하여 기록용 뿐만 아니라 건축, 공예,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우리 한지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두 장을 붙여서 한 장을 만드는 합지(合紙)이고, 도침이라는 마지막 공정을 한 번 더 거침으로써 표편이 매끄럽고 광택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의 선지(宣紙)는 죽피, 마피, 청단피, 상피에 볏짚이나 밀짚 등을 섞은 원료로 만들며, 종이의 질이 약하지만 먹 번짐이 우수하여 서화용으로 적합하고, 호사스러움을 표현하는데 제격이라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일본의 화지는 닥피(왜닥), 안피, 삼지닥을 원료로 만들며, 부드럽고 유연하며 정교한 특성을 보인다.
2) 3국의 종이 제조방법 비교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통종이를 만드는 과정에 맞추어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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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과정 |
한국 |
중국 |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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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다듬기, 물에 담그기 |
차고 맑은 냇물에 닥나무를 1~2일 정도 담가 둠. |
원료의 특성에 따라 원료를 다듬고 담그기를 함.(대나무 100일 담가둠. 생마는 잘게 잘라 담가둠. 죽순은 촘촘히 잘라 석회와 함께 5~6일 담가 둠. |
닥나무 껍질은 물에 담가두어 거친 껍질을 벗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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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해 |
잿물 이용.(종이의 강도를 향상 시킬 수 있고, 내구성과 보존성이 월등한 종이를 만들 수 있음.) 4~5시간 증해. |
잿물이나 석회 사용. 대나무는 8일동안 석회로 끓인 다음 꺼내어 씻고 다시 자탄즙(紫炭汁)으로 끓이고 나서 도초회(稻草灰)로 끓이고 회즙 뿌리기를 반복. |
잿물 형태인 소다회를 이용해 증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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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일광 유수 표백 실시. |
죽지와 피지의 경우 지약수즙이라는 것을 초조때 지통 안에 넣어 표백. |
한국과 비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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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
원료를 방망이로 두들겨서 사용. |
원료를 맷돌로 갈아서 사용. |
원료를 반석이나 나무 위에서 두들겨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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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제 |
황촉규 뿌리 사용. |
죽지법에는 지약수즙, 상용지법에는 골척수 사용. 중국은 단섬유를 많이 사용하므로 분산제는 잘 사용하지 않음. |
표목즙(鰾木汁) 한 홉을 섞어 사용. 겨울에는 황촉규 뿌리의 점액을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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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발 및 발틀 |
외발을 이용한 흘려뜨기. |
가둬뜨기. |
가둬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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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
온돌이나 일광 건조. |
죽지법의 경우 이중벽을 세우고 그 사이에 땔나무를 태워 기둥을 뜨겁게 하여 건조. |
목판에 붙여 일광 건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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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공정 |
섬유 조직이 치밀해 지고, 종이의 광택이 뛰어나게 하는 도침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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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잎으로 문질러서 표면 처리를 실시. |
5. 한지의 현황과 앞으로의 대책
과거 찬란했던 문화를 꽃피웠던 우리 한지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19세기 후반 김옥균이 일본에서 초지기를 들여오면서 생산하기 시작한 양지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일반 대중에게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외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열세가 지속되면서 한지 제조 과정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우선 고가인 닥피 대신 질이 떨어지고 가격이 싼 수입닥, 펄프, 폐원료 등을 한지의 원료로 사용하게 되고, 증해나 표백을 할 때에도 가공이 쉽고 효율성이 높은 소다회, 가성소다 등 화공약품을 사용하고, 고해를 할 때에도 방망이 대신 동력 비터를 사용하게 된다. 또한 초지법에서도 전통적인 외발뜨기(흘려뜨기) 방식 대신 효율성이 높은 일본의 쌍발뜨기(가둬뜨기)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면서 가격은 많이 떨어졌지만 이와 함께 종이의 질도 함께 떨어져 과거의 우수한 한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질적인 면에서 일본의 화지에 뒤지고, 가격 면에서는 중국이나 동남아의 종이와 경쟁이 되지 않아 어정쩡한 위치에 서있는 우리 한지는 지금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우선은 최고의 품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가격이 비싸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비층의 의식변화가 있어야 하겠고, 한지를 이용한 신소재 개발과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부록>
한지와 양지의 특성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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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특성 |
양지의 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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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섬유나 목재펄프를 주원료로 사용해서 짧게 고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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