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옥이 있을까? 황용연 바오로 예레미아 신부(대전교구)
저를 신학교에 보내주신 조성옥신부님께서는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진료를 받으실 때마다 제가 서울성모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당신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졌을 때, 어느날 신부님은 병원에 가는 차 속에서 “황신부야, 내가 신부로 잘 살려고 했지만 죽을 날이 가까워져 생각해보니 잘 산 날보다 잘 못산 날이 더 많았다. 심판날에 주님께서 날 지옥에 보내시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말인데 자비가 풍요로우신 주님께서 정말 지옥을 만들어 놓고 계실까?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겁주시려고, 지옥벌이 무서워서라도 착하게 살라고 지옥을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신부님께서는 한평생 열심히 사셨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떼르뚤리아누스 교부는 초세기 교회 신학의 정립을 위해 이단과 싸웠고, 교회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분이셨지만, 조신부님과 같은 논리로, 자비가 풍요로우신 하느님께서 과연 지옥을 준비하실까? 하여 성인품에 오르지 못하신 분입니다. 하느님이 헛소리를 하시는 분이 아닌 한,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께서 지옥의 존재를 말씀하셨으니 지옥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저는 천주교 신자로써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한, 삶의 순간순간 죄중에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의 자비를 믿는 한, 지옥 갈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서 허락하신 연옥단련이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한 번은 어떤 병원 영안실에서 신자들과 함께 연도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개신교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분들께 물어보니 개신교인들도 장례가 나면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신교의 신학에 의하면, 연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들 교리는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심판을 받고 그 심판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깨끗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요한 묵시록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에 있는 의인들이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빨아 희게 한” 사람들입니다. 즉, 완전히 자신을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흠도 티도 하느님나라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이렇게 온전히 깨끗해져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는 부족한 상태로 죽음을 맞기 때문에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씻는 연옥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은총입니다. 연옥이 없다면 누구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혹은 개신교 목사님들이 자기들 신학에도 연옥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비가 풍요로우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연옥은 벌을 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에 들어갔을 때 충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기에 우리에게는 최상의 은총의 공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로 죄가 용서받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평화를 위해서 무언가 보속을 하고자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죄의 보속은 하나도 하지 않고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갔다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물병을 깨서 엄마가 힘들게 바닥을 닦고 있다면 아이도 무언가 도와주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자기가 저질러놓은 일에 자기도 책임을 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연옥이란 나의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풍요로운 자비의 현장이니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우리 한형제회 회원님들이 연옥존재의 고마움을 묵상하시면서 위령성월 잘 보내신다면 다가오는 대림시기가 또 다른 은총의 시기임을 느끼실 것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은 은총의 연속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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