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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정원고 제 20화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3화-

작성자하늘소리|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제20화 모차르트도시 잘츠부르크 3화

           2025년 8월 7일

오늘은 잘츠부르크의 마지막 날이다 

이틀간 모차르트의 도시를 둘러보고 여유롭고 아침식사를 하고 미라벨 정원을 걸어 나와

 마카르트 광장(Markat Platz)이 나오고 광장 코너에는 삼위 일체 교회 (Dreifaltigkeitskirche)가 있었다

18세기 초에 건설된 이 교회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써 외관은 웅장한 돔, 곡선형 외관과

쌍둥이 탑 그리고 바로크식 측면 날개가 돋보이는 교회였다

내부는 백색으로 된  4개로 나누어진 예대에는 단순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두개의 종탑과 중앙의 큰 돔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고 하였다

1700년에 제작한 프레스코화는 대천사 미카엘과 많은 천사들,예언자, 10명의 교황 그리고

교회의 대주교들이 성모마리아의 대관식과 삼위일체를 묘사한 프레스코화라고 

마카르트 광장 8번지는 모차르트 가족이 1773년부터 1780년까지 7년간 거주했던 집이자

지금은 모차르트 박물관(Mozart-Wohnhaus)으로 사용되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의 좁은 생가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 모차르트는 17세였다. 

우린가 다음 찾아간 곳은  모차르트가족이 생가에서 나와 더 넓은집인 잘츠부르크

마카르트광장 8번지로 이사하여 1773년부터 7년간 거주 했든 집으로 지금은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원래 이 건물은 원래 1711년부터 무용 학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소유주인 마리아 안나 라압

(Maria Anna Raab, 1710~1788)이 모차르트 가족을 위해 건물을 개조하여 제공했다고 한다.

이 집에서 아버지 레오폴트가 1787년 영면했고 누나 나네를(마리아 안나)은 장크트 길겐의 고위 관리와

결혼하여 떠났고 청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입증한 교향곡, 성가, 아리아, 미사곡등 수많은  작품들이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고한다.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란 프란츠의 초상화 1775년 잘츠부르크에 왔을때 모차르트에게 의뢰하여

그린 초상화와

헝거리 화가 문카치( Mihály Munkácsy 1844~1900) 가 1884년 그린 "모차르트의 마지막 순간들"이란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마카르트 1번지에 있는 도플러 생가 앞에 서니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가 과학의 요람이기도 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1803년 석공의 3둘째 아들로 태여나  1842년 도플러 효과를 발명한 수학자인

동시에 물리학자로써 1842년 프라하 왕립 학술원에서 발표한 논문으로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 는 파원과 관찰자의 상대 운동에 따라 관찰되는 파동의 진동수가 변하는

현상을 말하며 구급차가 다가올 때 사이렌 소리가 높게 들리고 멀어질 때 낮게 들리는 것이 바로

도플러 효과다.빛의 경우, 천체가 지구로 다가오면 파장이 짧아져 청색 편(blue shift)이 일어나고

멀어지면 파장이 길어져 적색 편이(red shift)가 발생한다 이는 우주의 팽창의 원리로 현대 천문학과

우주론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시티 버스를 타고 남동쪽으로 약 4km 떠어진 헬브론 궁전(Schloss Hellbrunn)으로

다시 찾아가 보았다

'맑은 샘(Hellbrunn)'이라는 이름 그대로 온 세상이 물의 청량함으로 가득했다. 1613년부터 1619년까지

 마르쿠스 시티쿠스 폰 호엔엠스(Markus Sitticus von Hohenems, 1574~1619) 대주교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이 바로크 궁전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독창적인 건축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약 60헥타르에 달하는 광대한 부지에 펼쳐진 정원과 아름다운 작은 호수는 지금도 잘츠부르크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헬브론 궁전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트릭 분수(Wasserspiele)였다

오늘은 이 분수를 만킥하기위하여 다시 찾은 것이다

궁전의 뒷마당에는 수십 종류의 트릭분수( Wasserspiele)를 만들어 물의 정원이란 이름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알템프스 분수는 세 개의 분지(basin)에 별 모양의 연못(Star Pond)이 있고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으며 대주교시티쿠스(Markus Sittikus)의 외삼촌인 로마의 추기경 마르코

시티코 달템프스(Marco Sittico d'Altemps)의 이름을 따서 알템프스 분수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첫 번째로 만난 알템프스 분수(Altemps Fountain)는 세 개의 분지(basin)와 별 모양 연못 (Star Pond)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우스,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아폴론... 그리스의 각 신의 특성에 맞춰 물이 뿜어져

나오는 방향과 세기가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어, 아무리 주의해도 물벼락을 피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이것이 바로 '트릭' 분수의 묘미였다.

 

오르페우스 동굴 (Orpheus Grotto)은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묘사한 분수라고 한다

기계극장(Mechanisches Theater)은 1750년에 추가된 시설로 200여 개의 움직이는 인형이

물의 힘으로 작동하며 바로크 시대의 번잡한 도시 모습을 만들어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

인형들은 제빵사, 정육점 주인, 음악가 등 당시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트릭 분수는  헬브룬 궁전의 특징이며 인기 있는 명소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다이아나분수( Diana Fountain)로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 여신을 조각하여 만든 분수라고 한다

뮤즈의 신이 노래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트릭은 보는 사람마다 물장난의 재미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헬브룬 언덕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을 이용하여 정교한 수압 시스템장치로 분수가 분출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고 한다

마지막에 있는 분수는 넵튠 분수 (Neptune Fountain)로 바다의 신 넵툰이 삼지창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중앙에 있는 큰 분수라고 한다

 

우린 궁전 뒤 마당을 돌면서 트릭분수들을 하나 하나보면서 물벼락도 맞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후2시가 다 되어 궁정 광장의 레크 불 커페( Req Bull)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지금은 문학궁전으로 변한 헬브룬 궁전의 내부를 관람하였다

1618년 카니발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설치물을 비롯하여1613년에 제작한 역사적인 지구본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지구본을 만들어 세상의 크기와 삶을 관찰하려는

욕구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주교의 성격을 나타내는 실물보다 큰 유니콘을 감상할 수 있는 방이 꾸며져 있었고 

옥타곤(Octagon)이라는 불리는 방은 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악보가 담긴 나선형의 악보 

조각상이 있는 음악실이 있었으며

인터랙티브 회전 소파라는 방에는 소파가 단순한 휴식 가구를 넘어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회전하거나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전동 메커니즘을 가미한 안락한 방이 있었다

또한 이 궁전을 설계하고 만든 17세기의 대주교  마르쿠스 시티쿠스 (1574~1619)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었다

 

우린 헬브룬궁전을 충분히 관광하고 나와서 다시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바로 가지 않고 여러군데를 둘러 가고 있었다

 

도쿠멘테이션 오버잘츠베르크(Dokumentation Obersalzberg)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옆에는

"독수리 둥지(Eagle's Nest) 버스 탑승장"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1890년대부터 귀족과

부유층의 여름휴가지로 널리 알려진 오버잘츠베르크는 오스트리아 영토가 아니며 독일의 영토이며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정권의권력 중심지라고 한다

1933년 히틀러의 저택 베르크호프(Berghof, '산의 집')이 건설되자 괴링, 보어만, 슈페어... 제3제국의

핵심 인물들이 이 작은 마을에 모여들어 1945년까지 나치 정권의 권력 중심지로 변모했다고 한다

가이드가 자료 사진을 보여주었다. 1941년 나치당 화가가 그린 오버잘츠베르크의 모습이었다    

 

     

오버잘츠베르크 산정상, 해발 1,834m 케슈타인(Kehlstein) 산 꼭대기에 있는 켈슈타인하우스

(Kehlsteinhaus), 일명 독수리 둥지(Eagle's Nest)"는 히틀러의 50세 생일을 기념하여 1939년에

건립한 것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탓에 파괴되지 않고 현존하고 있었다.

우린 이것으로 잘츠부르크의 관광을 모두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19시부터 시작하는

오페라 마리아 스튜아르트(Maria Stuarda)공연을 보기 위하여 정장차림으로 그래이트 페스티발 하우스

(Great Festival House)에 도착하였다

많은 사람들도 최대한 정장 차림으로 하나둘 씩 모여 들기 시작하였고 입장하기 전에 아는 사람과 

조우하여 와인과 함께 담소를 즐기다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는 것 같았다

우린 안내원과의 기념 사진도 찍고 그레이트 페스티발 하우스로 입장하였다

여기에도 서로 아는사람들가 인사를 나누며 즐거운 대화들을 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을 위하여 1960년 지휘자 칼라얀이 호프만 슈탈(Hofmannsthal 1874~1929)

의 대본에 리차드 스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가 곡을 부쳐 만든 오페라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를 공연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오페라 하우스이기때문에

무대은 넓지만 음향을 고려 하여 2,179석만을 만든 홀이라고 한다

5달 전에 예약하여 인당 235유로 약 40만원 입장료를 내어도  2층의 자리에 배정 받았다

도니체티( Donizetti 1797~1848)의 오페라 마리아 스튜아르다(Maria Stuarda)는

서정적이고 비극적인 오페라라고 한다

스코트 랜드의 여왕 메리와 일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1세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메리 스튜어트 (1542년-1587년 )는 튜드 가문의 헨리 7세의 딸로 정상적으로 스코트 랜드의

여왕으로 부임하지만 헨리7세의 아들인 헨리 8세는 정상적인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궁중의 시녀인 앤 볼러윈과 결혼하여 태여난  딸이 잉그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

(1533년-1603년)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메리는 자기가 적통자이며 엘리자베스는 시녀에게 태어난 사생아이고 왕위를 찬탈한 자

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있다 

그런데 메리가 남편  헨리 다안를 죽인 살인자라고 하여 스코트랜드의 귀족들이 반란을

이르키자 잉글랜드로 도피하여 엘리자베스여왕의 도움을 청하였지만

엘리자베스여왕은 카톨릭 세력들이 언제 메리를 앞세워 자기를 몰아낼지 두려워 

메리를 죄수같이 이성 저성으로 옮겨 지내도록 하였으나 영국내에서  매리를 여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카톨릭 교도에 의한 모반사건이 여러차레 일어나자 영국의 의회는

죄수같이 갇혀있는 매리를 이 모든 모반의 책임자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서형을

선고하도록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강요하여 결국 메리를  45세 나이에 1587년 참수당하는

비운의 여왕이 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40년이 넘는 왕위 재위 기간 동안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켜

'엘리자베스 시대'를 열었으며 평생 남편과 권력을 나누는 것을 거부했고 그 결과

영국과 결혼하였다고 하며 '처녀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훌륭한 정치와 외교

물가안정 복지법등으로 영국 국민들에게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

 메리 스튜어트는프리드리히 실러가 쓴 희곡이자 역사극이며 1800년 6월 14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이 작품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완벽한 걸작”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뭉클한 감정으로 오페라를 감동있게 보고 호텔로 돌아와 잘츠부르크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다

 

2025년 8월 7일 오늘의 운동량  19,684보 이동거리 12.7KM 이동 시간 3시간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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