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국 위인전

[고려사 인물]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의 손자 조지린

작성자도경당|작성시간04.07.08|조회수533 목록 댓글 0

중국역대황제들의 혈통을 본다면 대부분이 한족출신이 아닌 이민족이다.
대표적인 수나라와 당나라도 그렇고 원나라와 청나라도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송나라 같은 경우에는 송나라 태조 조광윤의 손자와 증손자가
고려로 귀화한 예가 있다.
979년 정월, 송나라의 2대 왕 태종 조경趙炅이 군사를 일으켜 북한北漢을 칠때 고려에 원병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자 북한은 요遼나라에 원병을 요청해 마치 4강구도의 형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요나라는 산서성 백마령이라는 곳에서 송나라군과 혈전을 벌이다가 그만 패하여서
송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후 북한의 태원성을 공격할때 조경이 친히 군대를 지휘아여 싸움을 주도해 나갔다.
이에 북한은 질겁을 하고 그 군주 유계원劉繼元이 항복하니 북한은 멸망을 고하였다.
북한을 평정한 조경은 기세를 몰아 요나라를 정벌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군사들은 모두 지쳐있었고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다.
조경은 979년 6월, 진주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사하와 남경에서 잇달아 요군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오래된 전투로 인해 군사 모두가 체력이 소모되었으며 전투력이 상실되어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7월, 요나라의 원군이 급히 파병되어 하북성의 고량하에서 송나라가 거듭 참패를 당하였다.
송나라의 군대는 그 대오가 흩어졌으며 조경은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군사를 버린채 남쪽으로 도망을 갔다.
그러자 장수들 모두가 조경이 죽은 줄로만 알고 그의 형이자 송나라초대 왕인 태조 조광윤의 장남 조덕소를 옹립하고자 하였다.
얼마 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경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는 조덕소를 크게 성책하였다.
조덕소는 조경의 꾸지람에 괴로워 과도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조덕소에 얽힌 왕위계승문제는 참으로 복잡한 것이었다.
976년, 태조 조광윤이 갑자기 죽지만 않았어도 조덕소의 계승권은 여러모로 정당하였다.
하지만 태조 조광윤 재위시 이미 모친앞에서 총신 조보를 증인으로 하여 조경에게 왕위를 물러줄 것을 약속한 바 있었다.
그런데 976년 태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조경은 재빨리 왕위에 즉위하였다.
조경은 원래의 약속대로 정당하게 왕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태조의 아들들에게는
심한 부담감과 위협이 되었다.
그러한 미묘한 숙질간의 관계에서 조덕소 왕위옹립사건이 터지자 이는 조덕소뿐만 아니라
태조의 자손에게 모두 불안감이 조성되어졌다.
그래서 조덕소의 삼남 조지린은 견디다 못해 태조의 차남 조덕방의 손자 조천혁과
고려에 귀화할 것을 결심한다.
조지린일행은 무사히 고려에 귀화했으며 고려 현종황제 치세때에 금자광록대부 좌복야에 이르렀으며 훗날 배천조씨의 시조로 모셔졌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조그마한 나라로 알려진 고려로 귀화를 하게 되었을까...
우리들이 언제나 군소국가로 알고 있었던 고려가 조지린일행의 귀화를 받아들이면
송나라에게 질책 받을 것을 알면서도 왜 그들의 귀화를 허락했을까...
그것은 진정 알 수 없는 역사 속의 의문이다.
어쩌면 송나라 황성 조씨의 혈통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수 없는 혼란함과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져......도경당 서함.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