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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떼돈'은 뗏목에서 유래된다.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4.03.27|조회수384 목록 댓글 0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대덕산 금대봉 아래에 있는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한강이다.

검룡소에서 출발한 물길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 정선쪽으로 내려오면서 골지천(骨只川 숫강)이 된다.

이 골지천과 평창군 도암면에서 흐르고 있는 구절쪽의 송천(松川 암강)이 만나는 곳,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조양강이 된다.조양강은 동강, 남한강 등으로 이름이 바뀌며 흐르다가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룬다.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한강의 뗏목이 출발하는 여량(餘粮)의 아우라지이다.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아우라지는 예부터 강과 산이 수려하고 평창군 도암면에서

흐르고 있는 구절쪽의 송천(암강)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흐르고 있는 임계쪽의 골지천이

합류되어 두강이 만나 함께 '어우러진다'하여 아우라지라고 한다고 한다.

오래 전 한양으로 목재를운반하는 뗏목이 출발하던 곳이다.

아루라지에서 태여난 민요 '정선아라리'이다.

여량에 사는 처녀와 유천에 사는 총각이 서로 사랑하였다.

그 처녀는 매번 유천리 근처에 있는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간다고 하면서

강을 건너가 사랑하는 총각을 만났다.

어느해 늦 여름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전날 밤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났다.

그래서 그 처녀는 강을 건너가지 못했다. 안타까운 그 여인은 뱃사공을 원망해서 부른 노래이다.

 

아우라지 자장구아저씨 배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 나를 넘겨주소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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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구아저씨는 지(池)씨 성을 가진 이로 아우라지의 뱃사공이다.

그는 장구를 잘 치고 '아라리'를 멋있게 불렀다고 전한다.

정선군 북면 아우라지 나루터에서 남한강 1천리 물길따라 목재를 운반했던 뗏목꾼들의 애환이 담긴 처녀의 동상이다.
뗏목을 타고 내려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우라지 처녀들의 애환을 말해 주고 있다.

 

 

 

 

 

여량 아우라지는 남한강 1천리 뗏목 시발점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뗏꾼들이 끊이지 않던 고장
'떼돈' 벌다 라는 말이 유래된 곳이 바로 아우라지이다.
떼돈는 뗏목을 운행해서 번 돈이라고 해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뗏목 한 번 운행하면 군수 월급의 2배를 받았다고 하는 설이 있다.
떼돈에도 사람들의 입에 본격젹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고종 때이라고 전한다.
1867년 대원군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의 중건을 위해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얻고자
지천으로 널려있는 동강 상류의 소나무를 떼로 엮어 서울로 수송한 때부터 '떼돈'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 후 60년대까지 뗏사공들의 숱한 애환과 사연을 싣고 서울로 땔감이나 목재로 떠내려 갔다.
이 시기는 동강 여울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밑천을 잡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드는 뗏꾼으로 흥청거렸으며
 떼돈을 벌다 라는 말도 이 때 널리 사용했다고들 한다.
이처럼 동강은 60년대 초반까지 정성에서 나는 목재를 서울로 뗏목으로 엮어 나르는 물길이었다.
뗏목 운반은 당시로선 제일 나은 벌이여서 강마을 사람들에겐 솔깃한 유혹이 되고는 했다.
뗏꾼들이 운목으로 받는 운행삯(고전)이 큰 돈이었기에 동강 물길에서만큼은 남부러울 게 없었다고 한다.

임계 고양산 등에서 벌채된 통나무 길이 32m 소나무 150 개로 묶어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 길이 36m, 폭 3m, 뗏사공은 2명이었다.

뗏목은 큰물이 난 후 출발 물살이 험한  동강이 고비이었다.
한양에 도착한 뗏목은 비싼 값에 팔려 '떼돈' 번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
때로는 뗏목이 뒤집혀 목숨을 잃곤 했다.

그들이 목숨 걸고 부르던 정선아라리 아우라지 나루를 떠나
마포나루까지 물길 좋으면 5∼7일, 물이 줄면 한 달

뗏사공들이 가장 큰 돈을 만졌던 땟목을 팔아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돌아왔을 때에는 거의 빈털털이 정선으로 돌아오면서  남한강가 주막집과
동강의 전산옥 등에서 정선아라리에 취해 예쁜 색시와 몸을 섞다가  돈을 다 털린 탓

그래서, 빈손으로 뗏목을 타는 힘겨운 삶을 살았던 뗏목꾼들.아우라지에는 그들의 슬픈 애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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