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인간이기에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사유상(思惟像)이 동서양에 있다.
동서양에 있는 두 개의 사유상은 전혀 다르다.
인간사를 생각하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동양의 생각하는 사람'은 미륵반가사유상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서양의 사유상을 대표한다.
법정스님은 동서양의 '생각하는 사람' 사유상의 차이를 설명한다.
“‘미륵반가사유상’과 로댕이 조각한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이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는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가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저절로 고요와 평안과 미소가 우리 안에 저며 듭니다.
그러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에는 그러한 고요와 평안과 미소가 없습니다.
그저 무거운 고요가 감돌고 있을 뿐입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는 아름다움, 무애(無碍) 미(美)가 깃들어 있는데,
생각하는 사람에는 이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고뇌하는 사람이라고 할만큼 그 모습이 어둡고 무겁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그의 고뇌가 어둡고 무겁게 보는 이에게 묻어오는 것같다고 했다.
미륵반가사유상을 마주하고 마음이 편하고 불상이 머금은 잔잔한 미소가
옮아오는 것같아 마음이 가볍고 그윽해진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 문'앞에서 현재의 아수라 고통'을 고뇌하는 모습이다.
로뎅은 단테의 신곡을 즐겨 읽었다.
그는 신곡의 지옥편에 나오 저승의 음산한 심문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심문하는 미노스(Minos) 모습으로 조각한다.
지옥을 방문하여 처절한 고통속에서 괴로워하고 고뇌에 찬 사람들을
몹시 걱정하는 그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깊이 괴로움에 빠진 왜소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외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는 무겁고 고독한 표정으로 턱을 손등으로 받쳐든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다.
구원받으려는 안스런 인간의 모습을 안타갑게 형상화한 생각하는 사람이다.
동양의 '생각하는 사람' 반가사유상은 고요와 평안을 준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않는 꺼리낌없는 아름다움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고통을 고민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는 달리 미륵의 고요와 평안을 그리며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는 이를 안락하게 위로하고 있다.
미륵은 56억7천만년 뒤에 이 세상을 불국정토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정진 수련하는 다음 세계의 부처다.
조금도 쉬임이 없이 공부하면서 세상으로 오고 있기에 가부좌를 틀지 못하고
언제든 곧 움직일 수 있는 반가좌를 하고 있는 미륵이다.
그 사유상이기에 인간에게 더욱 안정감 평온함과 여유감으로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는 구원자로 신비스런 미소로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있다.
우리 인간이 지닌 마음의 영원한 평화를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는 '사유상'이다.
그 미소는 평안 안정 여유로 찬 연화장의 세계로 인도한다.
"일본 열도가 물속에 가라 앉을 때 한가지만 건지라면 이 반가사유상을 건저야 한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1901년 11월 3일 ~ 1976년 11월 23일)는 목조반가사유상을 격찬한다.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이 보이지도 않고, 미소짓고 계신가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어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이 부처님의 미덕이다."
우리 조각사의 최고 정점에 서 있는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한 해곡 최순우가
솔직한 필치로 남긴 감상기이다.
세계 지성들은 이 반가사유상을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최고의 걸작품으로 찬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