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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잠실

한강의 3대 나루터 송파나루(松坡津)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7.01.12|조회수1,763 목록 댓글 0


송파나루는 한강의 3대 나루터 중의 하나이다. 경기도 광주땅이자 영호남으로 가는 왕래 길목이며 강원도로 이어지는 통로였기에 아주 붐빈 송파나루이었다. 송파나루는 서울과 광주(廣州)를 잇는 중요한 나루로, 잠실(蠶室)과의 사이를 왕복하고 땔나무와 담배 등을 서울에 공급하였다. 이곳에는 송파진(松坡鎭)의 군영이 있었으며, 송파진의 별장(別將)이 송파나루와 삼전도(三田渡)·동잠실·광진(廣津)·독음(禿音) 등의 나루터를 함께 관할하였다.

송파나루는 조선시대 전국 10대 상설시장의 하나로 꼽힌 송파시장을 배경으로 번성하여 물화(物貨)의  집산(集散)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교통요지였다.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와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송파시장이  쇠퇴하여 그 영향을 받았으나 나루의 기능은 1960년대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행되어  명맥을 유지하였다.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송파장에는 대규모 개인 도매상가가 생겨 상설매장이 되다싶이 했으며 그 기세는 서울 종로의 육주비전에 타격을 줄 정도였다. 송파나루에는 관선(官船)을 9척이나 배치하여 오고가는 승선 행인들을 기찰하였다. 19세기 홍경모는 그의 책『남한지』에 각 나루터에 배가 몇 척 매어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광진 7척, 신천진 2척, 삼전도 6척인데 송파진은 25척이라고 적고 있다.

조선후기 유명한 화가 겸재 정선이 남긴 그림 송파진(松坡津)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겸재 정선이 본 한양진경> 중 송파진을 통해 송파나루 모습을 살핀다.

송파진은 지금 송파대로가 석촌호수를 가르고 지나서 생긴 동쪽 호숫가에 있던 나루터다.
이곳은 서울과 남한산성 및 광나루에서 각각 20리씩 떨어져 있던 교통의 중심지라서 광주(廣州) 읍치(읍소재지)가
 남한산성으로 옮겨지는 병자호란(1636) 직후부터 서울과 광주를 잇는 가장 큰 나루로 떠오른 곳이다.
사실 이 송파나루가 있는 지역 일대는 한강 물이 마음대로 흩어질 수 있는 평야지대다.
양수리에서 남·북한강 물이 합쳐져서 큰 강을 이룬 한강은 예봉산·검단산 등 큰 산 사이의 협곡을 따라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한양 부근에 와서 아차산과 암사동 쪽 매봉 자락에 의해 일단 물목이 좁아진다. 
그런데 위례성이 있던 풍납동 부근에서부터 갑자기 넓은 분지를 만난다.
자연히 이 분지형의 저지대로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남쪽에서는 수원 용인의 물들이 북류하여 봉은사 동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니 이것이 탄천(炭川)이다.
북쪽 매봉 기슭에서는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수되어 한강으로 물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중랑천은 의정부에서부터 천보산 도봉산 수락산 삼각산 등의 물을 모아오고 청계천은 한양의 물을 몽땅 모아온다. 
그러니 한강 본류와 탄천 중랑천이 이 낮은 분지에서 물머리를 맞대며 실어나르는 토사의 양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일대는 수많은 모래 섬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반복을 되풀이했다. 
이에 뚝섬 무동도 등은 섬이 아닌데도 섬이라 하고 부래도(浮來島) 잠실은 샛강이 생겨 섬이 되었다.

이것이 1970년 이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1970년 송파나루 앞으로 흐르던 한강 본줄기를 매립하고 성동구 신양동 앞의 샛강을 넓혀 한강 본류를 삼으니
이 일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됨)와 같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송파나루의 흔적은 메우다 남긴 석촌호숫가에서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그림에서 보면 멀리 남한산성이 보이고 그 아래 한강가에 송파진이 베풀어져 있다. 지금 화양동 쪽에서 비행기를 타고 보듯이 시점을 높이 띄워 멀리 내려다본 모습이라 한강의 양쪽 기슭이 모두 그려져 있다.
송파나루에서 서울 쪽으로 건너오는 나룻배에서 내린 인물들이 많고 그들이 잠시 쉬며 목이라도 축일 수 있는 곳인 듯 모래사장에는 차일이 쳐져있다. 
요즘 강변 모래밭 풍경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남한산성 위로 솔숲이 녹색 휘장을 두른 듯 높이 솟아 있는 것도 오늘날과 같다. 이것이 바로 남한산성의 본 모습이며 그다운 아름다움이다. 
녹음 짙은 한여름이나 새싹 돋아나는 봄철, 단풍 든 가을, 눈 쌓인 겨울 등 언제 보아도 소나무가 사시장철 푸르기 때문에 남한산성 모습은 늘 이와 같다. 다만 여기 보이는 한강 물줄기는 메워져 고층건물로 뒤덮이고 그 사이로 길이 나서 물길 따라 유유히 떠가는 돛단배 대신 사통팔달의 도로를 따라 차량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2002년 5월 30일자 동아일보의 <겸재 정선이 본 한양진경>의 글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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