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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잠실

남한산성 장대(將臺)들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7.03.19|조회수367 목록 댓글 0

장대(將臺)는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축조한 장수의 지휘처소를 말한다.

장대는 성내의 지형중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성이 넓어 한곳의 장대에서 지휘를 할 수 없는 경우 각 방면에다 장대를 마련하였다.
장대는 전투시에는 지휘소인 반면 평상시에는 성의 관리와 행정기능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성의 장대는 규모가 크지 않은 단층형식이 대부분이나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의 경우처럼 중층 누각형태의 장대도 있다.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 각 방면에 각각 하나씩 4개의 장대와 봉암성에 외동장대를 설치하여 5개의 장대가 있었다.
남한산성에 구축된 5장대중 동장대를 제외한 4장대는 17세기 말엽까지는 단층 누각건물의 형태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5장대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아있게 되었다. 18세기 중후반에는 서장대와 남장대가 2층 누각형태로 건립되어 19세기

후반까지 남아 있었으며, 그중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인 수어장대(守禦將臺)이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선조 28년 남한산성 축성 당시 동남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졌으며 유일하게 현존한다.

원래 단층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西將臺)'라고 불렀다. 영조 27년(1751)에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이층누각으로 증축한다.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 바깥쪽에는 수어장대(守禦將臺)라는 편액을 걸었다.

일명 서대(西臺)라고 불렀다.이천부사가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우부별장이 되어 지킨 곳이다.

산성 내의 최고봉인 일장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의 양주·양평·용인·고양·서울·인천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군사 요충지이다.

남한산성 남쪽 제2옹성의 바로 안쪽에 있었던 남장대(南將臺)터이다.

수어청 소속된 5영 중 후영장(後營將)이 배치되어 진을 치고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장대 위에는 1788년 부윤 이태영이 새운 타운루(唾雲樓)가 있었다. 지금은 둥글게 잘 다듬어진 21개의 주춧돌만 남아있다.

주춧돌은 높이 31cm 내외의 고주초석으로 직경 50cm 정도이고 남-북향으로 놓여졌으며 한 변의 길이가 880cm인 장방형건물이다.

성 내부로 향하는 건물 터 뒤쪽에는 장대를 지을 때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 석축이 남아 있다.

남장대가 있는 이 지역은 성곽을 크게 돌출시켜 장대 앞의 면적을 넓히는 한편 수성의 효과를 크게 하였다.

특히 돌출된 성곽의 끝으로는 옹성을 설치치하여 그 끝에는 포혈을 설치하여 성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동쪽 내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동장대(東將臺) 터이다. 한봉외성으로 나가는 암문의 우측 언덕에 있다.

해발 498m 지점에 있는 동장대 건물 터이다. 이곳에 동서 21m 남북 17m 정도 규모의 평탄지에 자리하고 있다.

중앙에는 4개의 초석이 남아 있다. 장대의 외곽에는 높이 350cm 정도의 석축이 쌓여 있다.

수어청의 5영 중 전영장(前營將)과 좌영장(左營將)이 배치되어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건물 터에는 와편과 잡석이 흩어져 있다. 주변에 비교적 높이 쌓은 석축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곳은 숙종 때 외성이 확장되면서 외동장대와 함께 성곽의 동쪽에서 가장 높아 성곽 북쪽과 동쪽을 한 눈에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 2년에 산성 수축시에 설치되었고,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북장대와 남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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