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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나루 동작진

효령대군 이보의 묘는 전형적인 음택의 명당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8.01.22|조회수461 목록 댓글 0



서울 서초구 효령로 옛 지명 방배동에 자리한 효령대군 이보의 묘소다.

이 마을 방배(方背)동 이름이 '무덤 뒤의 마을' 방배(方背)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면산을 등지고 있다고 해서 방배동이라는 설도 있고 한강을 등진 마을 방배동이란 설도 있다.

효령대군의 묘는 우면산에서 북진하는 지룡이 돌아서서 우면산을 바라보는 회룡고조형이다.
효령로가 생기고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과협이 손상을 입고 있다.
효령대군 문중에서 모련재(慕蓮齋)라는 재실을 1991년에 지으면서 우백호를 손을 댔다고 하나

이 무덤은 누가 뭐래도 전형적인 음택(陰宅)의 명당으로는 아직 손색이 없다고들 한다.


맥세가 힘차게 치고 들어오고 있다.그 생기가 효령대군 묘역으로 들기 전에 볼록 솟아 오른 잉(孕)이 아주 실해 보인다.

효령대군묘는 우면산 정상에서 연결 된 중출맥이다. 중출맥이란 산의 정상에서 연결된 능선으로 산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능선이다. 조선시대에 무덤자리를 선정하는데 용맥을 정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무덤에 올라서면 봉분과 문인석과

장명등 그리고 망주석이 굳건히 서 있고 건너편 매봉재산을 안산으로 삼고 멀리는 관악산이 위용을 바라보고 있는 멋진 자리이다.

다만 좌청룡이 함몰되고 우백호가 발달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또한 능선이 우면산에서 한강 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 자리는 소용돌이치듯이 120도로 방향을 바꾸고 있어서 역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좌청룡이 가까이에서 함몰되면 장남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실제로 효령대군의 9세 종손 이성민은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1600년초 상주 공근면으로 쫓겨났으며

지금은 종손이 끊어진 상태이다.


이 묘역의 지세로 미루어 안산(案山)도 명당답게 상당히 실할 것으로 생각했다.효령대군묘역에 올라 앞을보니 많고 많은 건물들이

서있다.온통 시멘트 고층빌딩이 안산을 가로 막고있다.봉분 두 기가 풍수지리상 모두 정확하게 혈(穴)이 맺힌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효령대군 이보는 아들 6명을 두었고 손자는 33명이며 증손자가 109명이나 되는 등 후손이 크게 번성하였다.

현재 효령대군의 묘소와 위패는 ‘청권사’에 모셔져 있다. 영조가 중국의 옛 고사에서 따온 ‘청권’을 효령대군의 사당에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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