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정(孝思亭)은 노량(露梁) 남쪽 언덕에 있다.
효사정은 조선 세종 때 노한(盧閈, 1376~1443)이 고사리(高寺里)에 세운 정자였다.
고사리는 1,700년대 중엽까지 이곳 영등포가 속해 있던 금천현의 하북면(下北面)에 속해 있다가 과천현(果川縣) 하북면(下北面)에
편입되었고,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으로 과천이 시흥에 통합될 때 지금은 노량진동인 시흥군(始興郡) 북면(北面)
노량진리가 된 마을이다.
우의정(右議政) 노한(盧閈)이 어머니 왕(王)씨의 상을 당하여 장례를 마친 다음 집의 북쪽 언덕에 정자를 지어
여막을 삼고 올라 바라봄으로써 부모님을 사모하는 회포를 풀었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효사정이라고 한다.
노한의 어머니 왕씨가 돌아간 것은 세종 21(1439)년의 일이고, 그 때 노한의 나이는 64세였다.
노한은 조선 세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이 교하(交河)이고, 자가 유린(有隣)이며, 호는 효사당(孝思堂)이고, 시호가 공숙(恭肅)이다.
민제(閔霽, 1339~1408)의 사위이자 태종의 동서이고, 영의정을 지낸 노사신(盧思愼, 1427~1498)의 조부(祖父)이기도 하다.
정종(定宗) 2(1400)년에 공조의랑(工曹議郞)이 되었고,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를 거쳐 태종 3(1403)년에는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으며, 이조전서(吏曹典書)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등을 거쳐 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있던 1409년 처남 민무구(閔無咎, ?~1410) 형제의 옥사에 연좌되어 파직되었다가 1422년에 다시 한성부윤으로 복관되고, 그 뒤 형조판서(刑曹判書)
찬성사(贊成事) 대사헌(大司憲) 등을 벼슬을 거쳐 1435년에는 우의정(右議政)이 되었으나 1437년 언사(言事)가
임금의 뜻에 거슬려 파직된 뒤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고사리에 내려와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분이다.
많은 문인들이 노한의 효성을 기리는 시문을 남겼다.
목소리와 모습은 멀어져, 아득하게 더듬어 생각하기 어려워라.
한 생각 유유(悠悠)하여 다할 기약이 없다. 벼슬길에 사는 오랫동안 풍목탄(風木嘆)을 생각하였다.
책 읽는 방에서는 일찍 육아편(蓼莪篇) 읽기를 폐했다. 쓸쓸한 서리와 이슬에 마음 상하게 하는 날,
황홀하게 갱장(羹墻)에서 얼굴 보는 때여라. 지금 나라에서 효도로 다스림을 숭상하는데,
명성을 드러나게 함도, 응당 구천(九泉, 황천)에서 사렴하는 것을 위로하리라.
-중국의 기순(祁順)의 시에서
사정(思亭)이 큰 강 위에 높이 임했는데, 효성스런 아들 착한 손자 갖추어 아름답다.
세덕(世德)은 이미 산같이 무겁고, 한집안 명성은 길이 물과 함께 흐른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는데, 개오동나무 늙었고, 가을날이 쌀쌀하니, 골짜기가 그윽하다.
굽어보고 쳐다보는 정회를 누가 알아주리. 때때로 북궐(北闕)을 보니, 서기 띤 연기가 떴네.
-정인지(鄭麟趾)의 시에서
정자는 푸른 강 끝나려는 곳에 있네.
들 풍경 아득하며 더욱더욱 아름답고, 푸른 봄 구룡(丘隴)은 긴 길에 임했고,
붉은 대궐 안개와 놀은 상류에 닿았구나.
높은 나무는 반쯤 사당을 가려서, 어둡고 한가한 구름은 때로 골 어귀를 잠겨 그윽하다.
공사에 휴가 내느라 늦게 오면 술 내어 큰 잔으로 먹으리라.
-김수온(金守溫)의 시에서
산세가 큰 들머리에 꿈틀거리며, 영수(靈秀)한 기운을 잉태하여 어느 때나 아름답다.
세 봉우리는 하늘 밖에 솟아 화산(華山)이 푸르고, 한 줄기는 뜰 앞에 돌아 한수가 흐른다.
착함을 쌓아 선세부터 그침이 없었고, 효성은 대마다 전해 저승과 이승에 통했네.
잇따른 경사가 다하지 않으리.
아름다운 기운이 밤낮으로 떴구나.
-신숙주(申叔舟)의 시에서
효사정이 노량 나룻머리에 있다. 바람과 나무를 생각한 마음 어느 날에 그치랴.
무덤엔 송추가 합쳐져서 서리와 이슬에 느낌이 일고, 시골은 상재(桑梓)가 무성한데 세월이 흘렀다.
감호(鑑湖)에 주인 되어 사람이 길이 있고, 반곡(盤谷)을 전해 받아 지역이 그윽하다.
벼슬에서 물러나 여가가 많아서 난간에 기대니, 산과 물 푸름이 둥실 하네.
-서거정(徐居正)의 시에서
강정(江亭)이 푸른 물 위에 오똑한 데, 올라 보면 어버이 생각 잠시도 쉬지 않는다.
북쪽으로 화산(華山) 서늘한 기운을 대했고, 동쪽으로 한수 맑은 흐름에 임했다.
고기잡이배 아득하여 외로운 돛 멀어지고, 자작나무 무성한데 한 마을 그윽하다.
어찌하면 인끈을 던지고(벼슬을 놓는다는 뜻) 넓디넓은 바다로 가, 갈매기 따라 함께 잠겼다 떴다 할까.
-정창손(鄭昌孫)의 시에서
집터를 처음으로 이 강 머리에 잡으니, 좋은 지역이 벽세의 아름다움을 열었다.
위씨(韋氏)의 한 경서(經書)는 예전 학문을 남겼다. 사씨(謝氏) 집 여러 아들은 모두 영묘한 무리였다.
송추에 가린 정자는 그림 같고, 산수가 둘려져서 지경이 그윽하다. 눈에 가득한 풍경,
저절로 효를 생각하게 하는데, 겉과 속이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이에서 알겠다.
-이승소(李承召)의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