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牙山)은 ‘어금니 산’이란 뜻이다.
아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영인산에 위치한 어금니 바위(牙巖)에서찾는다.
어금니 바위 앞에 위치한 안내판에는 바위와 얽힌 설화를 통해 이바위가
‘애기 업은 바위’로 불리며 아산(牙山)이란 지명의 유래는 ‘산의 모양이
어금니를 뒤집어 놓은 형태’에서 유래됐다고 밝히고 있다.
어금니 바위에는 오래 전부터 좋지 않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어금니 바위에는 이러한 시가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괴상한 바위가 기이한 부처를 만들어(怪石成奇佛)/
삼 년 동안에 다섯 관원을 보냈다네(三年送五官)/
강바람도 부끄러움을 알기에(江風如有恥)/
눈보라를 몰아 산 얼굴을 덮어 주었다네(吹雪掩山顔)
이 시와 같이 어금니 바위 때문에 이고을의 수령들이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향리들이 흉포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세조실록에 수록된 당시 충청도 관찰사의 장계에는
“신이 아산(牙山)의 관아를 보건대 일찍이 수령(守令)을 지내고
살아 있는 자는 적고 죽은 자가 많으니…”라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아산수령들의 사망과 관련해 어금니 바위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귀신소문이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조선초기 당시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들과
향리(지방의 아전)들의 권력 다툼에 기인한 것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산현은 조선 세조 4년(1458)에 수령들의 사망 등으로 인한 어수선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온양, 평택, 신창현에 각각 분리 흡수됐다가
지역유생들의 상소등을 통해 세조 11년(1465)
원상태로 복귀시켰다고 역사서에 수록돼 있다.
조선중기 아산현감을 지낸 토정 이지함 역시 못된 마음을 품은 향리의
계략으로 죽음을 맞이한 일화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산군 영인면 성내리에 '고용(高聳)'이란 산이 있다.
이 산은 신화리와 신봉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들 가운데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높이는 295m에 이르며 초목은 없고 큰 돌만 많이 쌓여 있어
산봉우리에서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 산에는 갖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선조 때의 인물이었던 토정 이지함은 그 당시 아산 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은 태평가를 구가 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마를 사이가 없었다.
평온한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이날은 별로 할 일도 없어서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토정은 동헌에서 고용산을 보고 기이한 산이라고
생각한 일이 생각 났다.들 가운데 하늘 높이 불쑥
솟아 있지만 나무 한 그루 없는 데에 커다란
바위 덩어리만 잔뜩 쌓여 있던 민돌산...
토정의 머리 속에는 그 고용산이 아물거렸다.
그는 통인 한 사람을 데리고 고룡산에 올랐다.
그리고 산의 경치를 즐긴 뒤 통인을 시켜
여러 바위를 두드리게 했다.
그리고 커다란 돌맹이 하나 하나 들어 보게 했다.
조그마한 것은 자신이 직접 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토정은 "허! 허! 이건 은이 가득 들었구나!"하고
혼잣말로 지껄였다.
통인은 토정이 하는 소리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차츰 바위나 돌맹이 속에 금이나 은 등이
가득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통인은 그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 돌멩이 속에 금이 가득 들었다고 했겄다!"
통인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을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몰라도 바로 토정이 말한 것이다.
그래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통인은 금과 은에 욕심이 났다. 동헌으로 돌아온 통인은
고용산에 묻혀 있는 금과 은을 자기가 모두 혼자 차지할까 하고 궁리했다.
토정이 가끔 생지네즘을 내서 마시고 독을 없애기 위해 밤을 깍아 먹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토정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착안한 것이다.
토정이 생지네즘을 마시고 밤을 깍아 먹을 때다.
밤 대신 버드나무를 번갈아 쳐서 주었다.
이가 튼튼한 토정은 버드나무를 밤으로 알고 별다른 의심없이 먹었다.
토정은 그 자리에서 곧 숨을 거두었다.
물욕에 눈이 어두워진 아전이 밤 대신 버드나무로 가짜 밤을 만들어
바치는 바람에 지네 독이 들어 62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토정도 인간이었다.
통인은 토정이 죽는 것을 확인하고 고용산으로 달려갔다.
그 산봉우리에는 똑같은 돌맹이가 참으로 많았다.
토정이 말했던 돌맹이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여기 저기 다니면서 돌맹이를 커다란 망치로 며칠간 두들겨 부셨다.
그러나 모두 헛 일이었다.
토정 이지함은 의욕적으로 직무를 다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순직하였다.
이 때문에 토정의 죽음 원인을 둘러싸고 이설이 분분하다.
설화로 전승되는 이야기는 아전과의 불화설과 그에 따른 살해설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수령 위해(危害)나 살해는 커다란 국기문란의 문제라
토정이 살해된 것이 사실이면 큰 논란을 낳아 관찬사서에 많은 기록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제자인 중봉 조헌의 기록에 의하면 토정이 아전들을 제어하는 가운데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것이 토정의 갑작스런 죽음과는 관련이 없다.
토정의 죽음원인에 대한 기록은 이율곡이 석담일기에서 이질(痢疾)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가장 확실하다.
이와 함께 토정과 당시대를 같이 살았던 태천(笞泉) 민인백(閔仁伯)의 기록에는
토정을 수발하며 아산관아에서 함께 생활하던 둘째아들 이산휘(李山輝)와 관련한
아래와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공은 아산에 있는 동안에 병에 걸려서 늘 구토를 했는데 손으로 놋타구를
두드리면서 아들 산휘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었다.
산휘는 그 소리가 전하는 뜻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렇게 아뢰었다.
“소리가 매우 화기롭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필경 편안함을 얻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문밖에 나와서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렸다.
조헌의 <제토정선생문(祭土亭先生文)>에도 ‘병환이 한번 나시자
큰 뜻을 품으신 채 운명을 하시었다’라고 하여 신병으로 인한 사망을
언급하고 있다.
조카 이산해도 <숙부묘갈명>에서 ‘불행하게도 병으로 관(官)에서
돌아가셨으니 그것이 천명인가, 운수인가?’라고 말하여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토정의 독살설은 당시에도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택당 이식(李植)의 문집에 ‘일찍이 아산의 원이 되어 간사한
관리를 엄하게 단속하다가 문득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독살을 당했다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토정은 남을 알고 기미를 알아 뜻과 기운이 귀신같았으니
흉측한 일은 응당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언급이 있다.
이식은 독살을 인정하지 않지만 당시 독살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산 27-3 번지에 있는 토정 이지함의 가족 묘역이다.
"우리 삼 형제의 후손들 중 일품의 벼슬을 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토정 이지함이 이곳에 가족묘역을 정하면서 한 예언이라고 한다.
그의 예언대로 맏형의 아들이 영의정을, 중형의 아들이 판서를 역임했으며
추증된 것까지 하면 이곳에는 영의정의 묘가 세 기나 된다.명당 중 명당으로 꼽히는 길지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는 토정 이지함을 비롯해 14명의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의 산맥은 금북정맥의 오서산(790m)에서 비롯된다.
서쪽으로 계속 내려온 산맥이 서해 바다를 만나 멈추었다.
야트막한 산세들이 사방으로 감싸며 보국을 이루었다. 특히 앞의 안산이 활모양처럼 생겨 특이하다.
활모양의 면궁사는 문무에 걸쳐 인물을 배출한다고 보았다.
정혈이 아니면 소용이 없으며, 맥을 벗어나면 오히려 피해도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맥을 받는 곳은 이지번의 묘다. 이지무의 묘는 맥에 살짝 걸쳐있다.
토정의 묘는 맥에서 벗어나 있다. 토정이 생전에 직접 자리를 잡으면서 형들을 좋은 곳에 쓰게 했다.
자기는 가장 나쁜 곳으로 했다. 형들이 염려하자 흉한 것은 자신이 다 감수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기해년(1539) 삼형제는 모두 아들을 낳았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이지번의 장자 이산해는 북인의 영수로 영의정에 올랐다.
이지무의 차자 이산보는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토정의 장자 이산두는 충령위에 올랐으나 21세로 요절하였다.
둘째 이산휘는 시묘 살이 하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셋째 이산룡은 12살 때 역질로 사망하였다. 후취 소생 이산겸은 의병장을 지냈으나 역모혐의로 옥사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지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관치도 않은 것 같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