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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선유봉

빛 바랜 사진으로 보는 난지도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4.09.19|조회수527 목록 댓글 0

 

 

 

 

 

 

 

 

 

빛이 바랜 옛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난지도(蘭芝島)이다.
난지도의 난지를 "蘭芝" 로 쓰기도 하고 시(詩)로 읊을 때는 "蘭芷"로 쓰기도 한다.
이 두 단어는 향기롭고 상서롭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蘭芝"는 난초의 꽃과 영지(靈芝)란 뜻으로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옛 선조들은 나라의 정사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고르게 베풀어지면 난지가 자라고
난지가 자라면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표상으로 알았다고 한다.

조선 때는 꽃과 풀이 많다고 해서 ‘중초도’(中草島),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오리섬’(압도)이라 불렸다.

 ‘꽃섬’이란 이름도 있었다.
한강의 강 중심 가운데 가장 바다 쪽으로 치우쳐있던 섬이 '난지도'였다.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은 겨울철새의 보금자리로 수십 종의 철새 10만 마리가 겨울을 나고있다.
바로 난지도 상공에 날아들면서 부터 내리기 시작한다하여 옛 시인들은 문섬(門島)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난지도. 우리나라 그 많은 지명 가운데 가장 향기로운 지명이 난지도일 것이다.
김포쪽 신곡수중보가 생기기 전까지 물이 들고 났던 난지 샛강은 난지도 형성의 근원이었다.
망원정(현재도 합정동에 망원정은 복원되어 있음) 근처에서 한강과 갈라진 난지 샛강은
행주산성근처에서 다시 한강과 합쳐지며 100여만평의 모래섬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샛강에 물이 말라 물이 적게 되면 난지도 건너편 마을사람들은 배로 건너지 않고

소달구지를 타거나 지게를 지고 난지도 밭으로 일하러 다녔다고 한다.
조선시대때 난지도는 양반네들이 놀잇배가 뜨고 대는 곳이었고,

해방후까지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포플러나무가 늘어선 길로 인해 연인들이 데이트코스였고,
 40~50년전까지만 해도 서울시민들의 이름난 신혼여행지 였다고 한다.
쓰레기 매립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지만 난지도는 기름진 땅으로 주민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준 소중한 터전이었다.
난지도에서 주로 농사일을 했던 사람들은 난지도 샛강 건너편 모루지와 귀리(지금의 상암동)에 정착하고 살았던 250여가구였다.
주로 땅콩과 수수농사를 짓고 소를 놓아 풀을 먹이는 곳이었다. 난지도에서는 재배되는 땅콩은 우리나라 생산량의 30%도 정도였고, 그 당시 많이 쓰였던 수수 빗자루의 70%가 난지도에서 생산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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