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 제일의 나루터 한강진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4.03.21|조회수858 목록 댓글 0

 

 

한강진(漢江鎭)은 조선 시대 한강 상류의 송파진(松坡鎭)과 하류의 양화진(楊花鎭) 사이에 있었던 나루터이다.

조선시대 한양을 경비하는 5대 요지로 노량진(鷺梁鎭)과 개성의 남쪽인 임진도(臨津渡)
한강상류의 송파진(松坡鎭), 하류에 양화진(楊花鎭), 그리고 중간에 한강진(漢江鎭)이 있었다.

조선시대 경강에서 제일의 나루터였으며 근처에 두모포와 서빙고가 있었다. 서빙고에는 대략 139,947장의 얼음을 저장하였다.

 

 

먼길 떠나는 나그네의 단봇짐을 부여잡고 이별의 한숨과 눈물 또한 그칠 날이 없었던 한강의 나루터였다.
한강진(漢江鎭)나루는 오늘날 한남동 단국대학교 정문 어귀와 순천향병원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형이 마치 오메가 모양으로 되어 있어 배를 갖다 대기에는 천혜의 나루터였다고 전한다.
목멱산(南山)자락 고개 너머 조선조 때 수도방위와 왕실호위를 맡아보던 어영청의 분영인 남소영이 있었다.
나루터 이름은 사평도(沙坪渡)이었다. 고려 현종 때 한강진나루로 바뀐다.

이 나루를 지나는 강의 이름도 이때 한강(漢江)으로 된다.

금천 출신 강감찬 장군이 거란족을 물치는 쾌거를 이룬다.

현종은 "장군이 거란족을 물리쳐 한강가에서 안정을 찾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강감찬장군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한강이라는 이름이 사상 처음 등장한다.

이 근처 약수동과 한남동 사이에 있는 고개도  '배를 타러가는 고개'라는 뜻의 '배터고개'라 불렀다.
이 '배터고개'가 '배티고개-버티고개'로 된 것이라고 한다.

한강진나루터가 자리한 지역도 한강과 남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한남동(漢南洞)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강진나루는 옛날 한남동(순천향병원 앞)에서 사평나루(沙坪津:강남구 신사동)를 잇는,
군사적으로나 물류면으로 매우 중요한 나루터였다.
삼남지방(경기ㆍ충청, 호남, 영남)의 물산과 많은 보부상, 선비, 나그네 할 것 없이
강남의 역삼동과 양재역, 말죽거리에서 몸을 풀고 건너오고 갔던 나루터였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강나루를 건너 백제 한성을 처들어가 아신왕을 굴복시켰다.

 

 

서울이 그동안 많이 변하였다.

근대화의 물결에 철길이 나루터 앞을 가로막고 국철의 철마가 지나고 있다.

또 철길 옆으로는 강변도로가 놓여 차랑행렬이 줄지어 역동하는 서울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남대교가 놓이면서 다리 위로 수많은 자동차가 홍술를 이루어  달리고 있다.
한강진나루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나루터 자리엔 많은 사람과 물류가 흐르고 있다.

이웃에는 50여개국의 대사관이 밀집되어 있고 유엔빌리지 등이 있어 서울속의 외국인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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