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장기간은 보통 5개월이 소요된다.
냉동고가 없었던 그 시절에도 왕의 시신은 5개월간 보존하는 시설이 있었다.
오늘날 냉동영안실이라고 할 수 있는 설빙(設氷)이 그것이다.
설빙(設氷)은 공조(工曹)에서 선공감(繕工監)으로 하여금 4월 - 9월 장례 시 빙반(氷槃)을 제조하게 한다.
빙반의 제도는 그 때의 사정에 맞게 하며 영조척(營造尺)으로 길이는 10척, 너비는 5척 4촌, 깊이는 3척이다.
밖의 4면에는 각각 큰 쇠고리를 박고 첩첩된 베로써 고리를 꿰어 들기에 편리하게 한다.
또 잔상(棧牀)을 만든다. 향명(鄕名)으로는 전평상(箭平牀)이라 한다.
길이는 8척, 너비는 3척 4촌인데, 발까지 통틀어 재면 높이는 1척 5촌이다.
평상 위에 빙 둘러 난간을 붙였다. 높이는 1척이나 된다.
안에는 대그물을 붙여서 옷으로 하여금 밖으로 향하여 습기(濕氣)를 받지 않도록 한다.
또 잔방(棧防)을 향명(鄕名)으로는 전방(箭防)이라 한다.
4척(隻)씩 만들어 양쪽 옆에 있게 하였다.
길이는 각각 8척이나 되고, 양쪽 끝에 있는 것은 길이가 각각 3척 4촌이나 되고 모두 높이는 3척이나 된다.
"무릇 얼음을 설치하는 설빙법(設氷法)은 중춘(仲春) 이후부터 그 절후를 헤아려서 시신에 입히는 습의(襲衣)를 입히고,
혹은 죽은 다음 날에 시체를 옮겨 옷을 갈아 입히고 이불을 덮어 주는 소렴(小斂)을 하고 난 후에 얼음을 사용한다.
만약 절후가 그다지 덥지 않으면, 전목반(全木槃)을 사용하여 얼음을 담아서 적당한 데 따라 평상(平牀) 아래와 4면(四面)에
두는 것도 또한 좋다. 대렴(大斂)까지는 날마다 얼음을 20정(丁)을 사용하고, 5월 보름 전과 8월 보름 후에는 반을 감한다."
설빙은 길이 3m, 넓이 1.6m, 깊이 90㎝다. 냉동보관소가 없던 조선시대 냉동 영안실이다.
빙반을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위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을 설치한다.
평상 위에 시신을 올려놓는다. 그 위에 다시 빙반을 설치한다.
습기를 흡수하기 위해 마른 미역을 사방에 쌓아놓고 계속 갈아댄다.
이것을 ‘국장미역’이라 한다.
"기록에 의하면 빙반이 놓인 잔상 난간위에 마른 미역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마른 미역으로 얼음이 녹으면서 생기는 습기를 흡수하여 왕의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임민혁(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국장이 끝난 뒤 이때 사용한 미역이 시중에 쏟아져 나왔다. 그때 시중의 미역 값이 크게 내렸다고 한다.
평상시엔 미역을 먹기 힘들었던 백성들은 어떤 미역인줄 알면서도 사먹었기 때문이다.
'국상중 미역값'도 거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