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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풍류(風流)공간' 농산정(籠山亭)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8.08.09|조회수472 목록 댓글 0


경남 합천 가야산 입구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4km계곡 홍류동계곡이다.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 물도 붉게 보인다고 해서

홍류동계곡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주위 송림 사이로 흐르는 물이 괴암 괴석에 부딪치는 소리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귀를 먹게 했다고 전한다. 이 계곡 내의 최고 명소는 최치원이 수도한 장소로 알려진 농산정(籠山亭)이다.

농산(籠山)이란 기야산 홍류동을 읊조린 시 귀절에서 빌려온 말이다.

첩첩이 쌓인 돌은 미친 듯이 바쁘게 뿜어내고
겹겹의 산봉우리들은 목놓아 울부짖는다
저 물소리에 지척의 사람소리도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내 항상 저 세상의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까 저어하여

짐짓 흐르는 물을 가르쳐 산을 온통 귀멀게 했었느니

(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최치원이 갓과 신만 남겨놓고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정자는 1922년에 재건(再建)된 것이며 정자 옆에 ‘고운최선생돈적지(孤雲崔先生遯跡地)’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또 학사영각(學士影閣)도 있었으나 근년에 후손들이 정자의 동쪽 강 건너편으로 이건(移建)·중수(重修)하고

여기에서 봄·가을 마다 제사를 지낸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풍류(風流)로 정의한 고운 최치원이다.
그는  신라의 화랑이었던 ‘난랑(鸞郞)’을 위해 쓴 비석문인〈난랑비서(鸞郞碑序)>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말하기를 풍류(風流)라 한다.
이 종교를 일으킨 연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불·선 3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예를 들어 집으로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가 가르쳤던 교지(敎旨)와 같다. 매사에 무위(無爲)로 대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노자의 교지와 같다.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바람 '풍(風)'자와 물 흐를'류(流)'자가 합쳐져 된 풍류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바람이나 물의 흐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주만물의 오묘한 운행을 풍류라 한 것이다.사람의 성품이 고지식하지 않고 물과 바람처럼 융통성이 있으면,
더불어 속되지 않고 고상하여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운치와 멋스러움이 있다는 뜻이다.

풍류를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美) 바로 멋이라고 했다.

"'풍류'란 미(美)적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연과 예술과 인생이 혼연일체가 된 경지의 미를 뜻한다. 
고운이 한국인의 영성으로서의 풍류라고 할 때에는 거기에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이 깔려 있다.

風流라는 한자는 우리말의 ‘부루’(불, 밝, 환, 하늘)에 대한 이두식 표기라고 생각된다.

알타이어의 ‘부루칸’은 천신(天神)을 뜻한다. 그리고 道는 종교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풍류도는 '종교-예술적 개념'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이상을 담은 종교의식으로서 영성이며, 한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인이 되게 하는 <얼>이라 했다.
 풍류도란 곧 <人中天地一>의 신인합일에서 오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내포한 한국인의 영성이다.
풍류도가 한국인의 얼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인이 되게 하는 것은 풍류도이다.
풍류를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멋’이다.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멋을 알고, 멋을 지닌 인격이 된다는 말이다.
풍류를 모르고 사는 한국인은 멋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유동식 명예교수(연세대 신학)-

풍류도는 화랑의 수련과정에 잘 나타나고 있다.

도의로서 서로 연마한다(相磨以道義):윤리

노래와 춤을 통해 아름다운 감정을 기른다(相悅以歌樂):예술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하며 심신을 단련한다(遊娛山水):자연

화랑은 그 세 과목을 통해 인격수양과 놀이를 겸해 진리를 탐구하고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전인교육을 지향하였음을 쉽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풍류는 고려를 거쳐 조선사회로 들어서면서 선비사상으로 승화 계승된다.

선비들이 멋과 풍류를 만끽하는 자연공간,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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