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은 둘째 아들 채(寀)를 젊은 나이에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아들 채(寀)는 장가간 지 3년 만인 21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있던 48세 때 일이었다.
퇴계는 그 해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되었다가 이듬해 겨 울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그의 집에는 홀로 된 며느리가 있어서 하루도 마음 편할 때가 없었다.
그는 혼자 된 며느리가 참으로 애처로웠다.
어느 봄날 밤이었다.이날 밤도 자정 가까이 되어서 퇴계가 며느리의 방을 보살펴 주려고
후원으로 돌아와 보니, 며느리의 방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방안에서는 도란도란 정답게 속삭이는 이야기 소리까지 들려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퇴계 이황은 방 안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며느리는 방 한복판에 남자 허수아비를 하나 만들어 놓고 방안에 마주 앉아 마치 살아 있는 남편을
대하듯이 이 음식 저 음식을 권해 가며, “이 음식도 좀 자셔 보세요. 이것도 당신을 위해 제가 손수 만든
음식이니까 한번 잡숴 보시구요.” 하고 혼잣말로 속삭여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런! 죽은 남편이 얼마나 그리우면 한밤중에 저 애가 저런 망령된 짓을 하고 있을까?”
퇴계는 너무도 처절한 그 광경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괴로워 그 자리 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랑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 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튿날 퇴계 이황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연 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계 이황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 이황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냈다.
그로부터 여러해가 흐른 뒤, 퇴계 선생은 산촌 민가에서 하룻밤 북게 되었다.
그런데 저녁상에 놓인 반찬이 이상하게도 집에서 먹던 반찬과 맛이 똑같았다.
다음날 그 집을 나서는데 집 주인이 퇴계 선생 앞에 버선 한 켤레를 내놓았다.
"이것은 저희 안사람이 만든 버선입니다. 저희부부가 대감님께 드리는 선물이니 받아 주십시오."
퇴계 선생은 감사하다고 말하며 버선을 신어 보았다. 신기하게도 버선은 발에 꼭 맞았다.
민가를 나서 한참 길을 가던 퇴계 선생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들어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젊은 아낙네가 담 모퉁이에 서서자기를 배웅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낙네는 바로 퇴계 이황의 둘째 며느리였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 역시 각별했다. 둘째 아들 이채(李寀)가 자식도 없이 스물 둘의 나이로 죽으며
둘째 며느리는 청상과부가 되었다. 성종 8년(1477)이래 과부재혼금지법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저 불쌍한 것을 어찌 할꼬'라며 한탄하던 퇴계는 결국 맏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속히 둘째 며느리 친정에 통보하여 개가하게 하라. 나머지는 말하지 않는다.'
안동에서 퇴계 이황이 둘째 며느리를 개가시킨 이야기는 민간설화로 전해온다.
도산서원 홈페이지에서 <설화 시> '과부 며느리를 재가 시킨 퇴계' 를 원문 그대로 옮겼다.
퇴계 선생이, 자제가 돌아가시고 혼자 있는 며느리가 있었는데, 그말 아지?
[잘 몰래요.]
혼자 참 남편을 잃고 혼자 참 수절 지키고 있었는데, 퇴계 선생이 이래 밤이 이식하며는(깊어지면)
집을 한바퀴 빙 이래 모양이라. 도는데 며느리 있는 방에서 뭐 이래 수근 수근 수근 소리가
사람 소리가 나는 소리가 듣기(들려). 그래 이래 이상하다 싶어가주고(싶어서)
춤(침)으로 종이를 뚫어가지고 보이까 그 자기 며느리가 과일이라든가 음식을 차려놓고
자기 남편에게,
“이거 잡수세요 저거 잡수세요.” 하는 소리라.
퇴계선생은,
‘이거 외간 남자가 와 가주고 여 와 안 있느냐?’ 이래 생각했는데
그 문을 이래 보이까 그게 아니고 참 자기 남편에께 지극정성으로,
“이거 자세요 저거 자세요.” 하더라네. 그래가주고,
‘야 저렇게 죽은 남편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데 있느냐’ 싶어가지고
사돈에게 편지를 했어.
‘내가 도저히 안스러워서 못보겠다. 개가(改嫁), 내 메느리를 집으로
친정으로 디려다가 개가를 시켜라.’
그래하니까 그 사돈이,
‘그래할 수 있느냐.’
그래하면서 참 몇 번 권하니까 그래 인제 개가를 시켰거든.
그래 퇴계 선생이가 어디 이래 여행을 가시는데
날이 저물어 가지고 어느 집에 이래 하릿밤 자게 됐단 말이라.
자게 됐는데 그 이튿날,
그날 저녁상하고 그 이튿날 아침상이 들어 오는거 보이까
나물 무쳤는 음식맛이나 반찬 맛이나 국 끓였는 그 맛이나
꼭 자기 며느리 솜씨 같단 말이래.
그래 이상타 싶어 그 다음에 작별하고 인제 나올 직에,
[조사자를 향해]
보신(버선) 아지?
[예.]
양말 대신 옛날 보신. 보선을 한 켜레 이래 주거든.
보선을 신으니까 꼭 신발이 딱 맞단 말이라.
아하 이거 틀림없이 내 메느리다.
그래 그 메느리가, 메느리 개가했는 집에 가가주고
하루밤 주무시고 갔다는 그 얘기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