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문 오른 쪽에 자리한 불로문(不老門) ‘영원히 늙지 않는 문’이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돌문이다. 통돌 하나로 만든 문으로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다.
문은 하나의 판석을 ㄷ자 모양으로 깎은 뒤 다듬은 것이다. 마치 종이로 오려낸 듯한 단순한 형태이다.
그렇지만 두께가 일정하게 돌을 다듬은 기술만큼은 무척이나 세밀하다.
세로 판석에 돌쩌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나무문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불로문과 잇달려 있는 담장과의 조화로움에서도 전통 조형물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다.
연꽃을 사랑한 임금이 이름 지어준 애련지(愛蓮池)이다.
또 예쁜 정자 애련정이 연못과 주변 경관과 한껏 어울린다.연못 옆에는 어수당(魚水堂)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方池)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입수구가 독특하다.정자 뒤의 비탈진 언덕에는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여러층의 돌단이 쌓여져 있다.
또 연못 언저리도 장대석을 바른층쌓기를 하여 마무리해 놓았다.
연못에 물을 끌어들이는 입구가 빼어난 솜씨로 처리되어 있다. 저 안쪽의 연경당부근에서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한 장의 넓은 판돌 가운데를 우묵하게 파서 만든 물길을 따라 한 길 낮은 자리에 놓인 물확으로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한 솜씨는 여기만의 자랑이 아니다.
가득찬 물확의 물이 다시 연못으로 흘러들어가게 해 놓은 솜씨는 참으로 정밀하고도 뛰어나다.
그 돌에 새겨진 조각이 또한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고 있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 진다.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원래는 연못 옆에 어수당(魚水堂)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애련지 북쪽에 단문의 정자 애련정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숙종18년(1692년)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이다.
그 옛날에는 6월이면 하얀 연꽃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상상으로만 장마철 굵은 비가 연꽃잎에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이 인간을 위로한다'는 선인들의 말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애련지이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난간마루와 바닥마루 사이에는 풍혈판을 짜 넣은 형식이고난간 쪽마루는 계자각을 받혀져 있다.
처마는 겹처마에 지붕 꼭대기에는 절병통이 얹혀져 있고 목재에는 단청을 입혀 놓았다.
애련정에 들어가 앉으면 난간위로 기둥에 장식한 낙양각이 드리워진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산과 물 나무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이다.
자연과 극히 잘 어울리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유네스코가 인정한 문화유산 아닌가.
사각의 낙양각을 통해 아름다운 풍광을 끌여 그 그림을 내다보는 경치가 한폭의 그림 같다.
이 낙양각을 통해 후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다 마치 보는 차경법(借景法)의 진수를 애련정에서 맛 볼 수 있다.
애련정 기둥에는 주련들이 걸려 있다. 주련은 시구를 적어 걸어둔 것을 말한다.
정자 주변을 고상하고 운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마력을 발산한다.
주변의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승화시킨다.
시가 형체 없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雨葉眞珠散(비 맞은 잎사귀에는 진주알 흩어지고)
晴花粉臉明(활짝 핀 연꽃은 단장한 고운 볼일레)
亭近如來座(정자는 석가여래의 자리와 가깝고)
池容太乙舟(연못은 태을주(太乙舟)를 받아 들였네)
花愛稱君子(꽃을 사랑하여 군자라 일컫고)
龜齡獻聖人(거북이 나이를 임금님께 바치네)
碧筒供御酒(푸른 연대로 어주(御酒)를 바치니)
霞綺散天香(찬란한 놀 천화의 향기 흩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