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지 동북쪽에 자리한 영화당(映花堂)이다. 팔작지붕에 곱게 단청을 한 꾸밈이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영화당은 동쪽을 향해 있다. 영화당은 언제 창건되었는 지 알 수 없다.
선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지는 "영화당 15간이고 남쪽에 남행각 7간이 있었고
여기에 의춘문이 있었으며 또 담장에 영화문 그리고 22간의 곳간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판 '映花堂'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暎)’자는 ‘비치다’는 뜻이고 화(花)자는 글자 그대로 꽃이다.
‘영화(暎花)’는 ‘꽃과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주변에 꽃이 많이 피어서 풍광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영조가 지은 영화당명(映花堂銘) 머릿말에는 '영화당에 선조의 어필이 있다'고 헸다.
"영화당의 방 안에는 인쇄한 어필이 있는데 바로 인조의 어필이고 대청 안의 동서에는 스무 글자의 어필이 있고
북쪽 들보에는 여덟 자의 어필이 있으니 선조의 어필이다."-영화당명에서-
선조가 재위 5년에 춘당대에서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일 때 영화당 앞마당에 차일을 치고 임어했다는 기록이 있고 광해군이
이곳에서 꽃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일대의 건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전한다.여러 왕들이 이곳을 들려 연회를 한 흔적이 많다. 왕과 신료들이 군사훈련을 참관하거나 직접 활쏘기를
한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당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아주 유명한 중요 장소였다.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를 때 최종 고사장, 영화당 앞 춘당대다.
영화당을 개축하여 활발하게 이용한 때는 숙종 이후다. 숙종 18년(1692) 4월 16일 이곳에서 선비들이 시험할 때 왕이 임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같은 해 5월 12일 영화당을 개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화당보다는 춘당대가 더 유명하였다.
<동궐도>에는 춘당대 동쪽으로 시야가 넓게 트이고 더 동쪽으로 가면 지대가 갑자기 낮아지면서 연못이 있다.
이것이 창경궁 춘당지이다. 춘당대는 조선 전기부터 전시를 치르는 곳이었다. 춘당대에서 임금의 얼굴을 보는 것은 모든 유생들의
꿈이었다. 초시와 복시를 거친 유생들이 마지막 시험인 전시를 여기서 자주 치렀다. 춘당대에서 시험을 치를 때 임금은 영화당에
거둥하여 시험을 참관한다. 고전 소설 「춘향전(春香傳)」에서 이몽룡이 과거 급제할 때 시험 본 장소도 이곳 춘당대이며
이 때 글제가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춘당대는 서총대로도 불렀다.
영화당은 정조때부터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1503년(연산군 9)에 후원 춘당대의 돌을 갈고 고쳐 쌓으라는 전교를 내렸다.
중종은 하교를 내려, 성종대에는 물론 이전 조종조에서도 후원 춘당대에서 종친과 더불어 잔치를 벌인 전례가 있으니 춘당대 진연을 시행하라고 하였다.춘당대는 종친, 신하 등과 잔치하는 곳임은 물론 선비를 시험 보고 무사를 사열하는 곳이기도 하다.
춘당대는 「동궐도」상에서 규장각·주합루 남쪽에 있는 부용지 연못가 동쪽의 영화당 앞마당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영화당은 궁궐의 여느 건물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그 동쪽에 펼쳐진 넓은 공터가 바로 춘당대이다.
춘당대는 대지의 격차가 높아 마치 축대 위에 서 있는 듯 보인다. 그 아래, 즉 동쪽 아래에 연못을 두고 있고 춘당대 터로 보이는 영역 안 북쪽에도 네모난 모양의 연못이 하나 더 조성되어 있다. 둘중 어느 것을 명확히 춘당이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춘당대의 주변에 이외에도 많은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로도 쓰였다고 보인다.
연산군 이전에는 이 너른 마당을 ‘춘대’라고도 불렀던 듯하다.
성종 시기, 사직단에 제사를 올리고 돌아오는 성종의 행차를 맞이하며 한 신하가 가요를 지어 바쳤다.
그 내용은, ‘왕의 수레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상서로운 그림을 받들어 올리니 선녀가 옹위하는 듯하고 자신들은 태평성대 도읍에서
노닐고 춘대에서 쉰다.’ 라는 것이었다. 효종대인 1654년(효종 5)에는 춘당대에서 세자에게 농사의 어려움을 보고 깨닫게 하였다면서, 춘당대 곁 연못가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영·정조 시기에는 춘당대에서 명나라의 신종황제에게 망배례를 행하였다.
춘당대는 훈련을 마친 군사들과 과거시험에 당선된 유생들에게 식당을 열어 음식을 베풀고 위로하였던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