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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건축가와 풍수학인이 조성한 건원릉의 능침공간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6.03.30|조회수302 목록 댓글 0


건원릉 능침공간이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고향 함흥에서 가져온 억세로 입힌 봉분이 눈에 든다.
상계에 석호 석양이 능침을 둘러싸고 지키고 있고 중계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왕을 지키고 있다.
하계에는 무인석이 왕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게 믿음직하다.
앞쪽에 배위가 보이고 팔각 장명등이 중앙에 세워져 있다.
배위는 3대 태종까지는 볼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명등은 고려시대 사각등 형태에서 팔각형태로 발전한 모습을 볼수 있다.

능침공간 북쪽 뒷면은 울창한 소나무가 북쪽에서 치고 내려오는 사특한 악기(惡氣)를 막아주고 있어 듬직해 보인다.

"내 고향에 나를 묻어다오!"
태조 이성계는 간곡하게 유언을 남긴다.

태종은 고향인 함흥에 묻어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긴다.
그는 아버지 태조를 건원릉에 장사를 지낸 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을 조성하였다.
태조는 실제로는 자신이 사랑했던 신덕왕후 강씨 무덤인 정릉(貞陵)에 묻히기를 원했다.
태종은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을 경기도 양주 땅으로 내친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그 유언과는 다르게 동구릉에 모신다.

장사를 마친 태종은 자시(子時)에 건원릉을 출발하여 환궁했다. 심야의 강행군이다.

돌아오는 길에 장사를 총감독하는 사헌집의(司憲執義) 이관을 불렀다.
"부왕의 유지에 따라 동북면 영흥에 모시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능침의 봉분에 잔디를 심지 말고

영흥의 억새풀을 심도록 하라. 이것 또한 부왕의 뜻이다."
"명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오늘날의 건원릉 봉분에는 잔디가 없다. 무성한 억새풀이 자라고 있다.

억새풀의 특성상 자주 깎아주면 죽게 되므로 1년에 한번 한식날에만 깎아주기 때문이다.

태조가 승하하자 태종은 창덕궁 동남쪽에 있는 왕자의 독서실에 여막을 정하고 날마다 ‘주자가례’의 예를 보았다.
태조의 국장 총책임자인 총호사는 영의정부사 하륜(河崙)이 맡았다. 하륜과 김귀인 등이 양주의 검암(儉巖)을

왕릉 길지로 천거하고 건설은 당시 최고의 기술자 박자청(朴子靑)이 담당했다.
박자청은 왕실 내시 출신으로,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궁문 파수를 맡았다.
이때 세자인 방석(의안대군)이 소명(召命:출입증) 없이 궁궐에 드는 것을 막다가 발길에 걷어채고 얼굴에 상처를 입었지만

굽히지 않았다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태조가 박자청을 칭찬하고 상과 직급을 올려주었다.
박자청은 왕실 건설책임자로 문묘와 문소전을 짓고, 공조판서(건설부 장관)가 돼 제릉(태조의 첫째 부인 신의왕후의 능)과

건원릉을 감독했다. 세종은 67세를 일기로 그가 죽자 국민장으로 하고 3일간 정사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산릉 건설에는 충청 황해 강원도에서 6000여 명의 기술자가 동원됐다. 건원릉의 석실은 회격실과 전실 등이 논의됐지만

석실로 최종 조성됐다. 유교를 국시로 했으나 태종은 산릉 재궁에 개경사를 세우고, 검암산 아래 지금의 재실 위쪽에

원찰 개경사를 조성했다.

능침공간에서 내려다 본 제향공간 진입공간이다.

홍살문 정자각 능침공간이 일자로 어김없이 배치된다.

좌청룡 우백호 그리고 남주작 안산이 고르게 그리고 단단하게 건원릉을 지켜주고 있다.

건원릉은 능침을 둘러싼 송림과 능침 앞으로 시야가 탁 트인 경관이 아름답다.

좌청룡 우백호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곡장(曲墻)이 보기도 좋고 믿음직하고 듬직하다.
앞에 펼쳐진 능선들은 신하가 읍조리는 형상이라고 하며 여러 겹의 능선을 꽃잎, 능침을 꽃심으로 보았다.
병풍석을 두른 봉분 위의 흙과 억새풀은 이성계의 고향 함흥에서 가져다 조영했다.
봉분 위 억새풀은 벌초를 자주 하지 않고 4월 5일 한식 때만 한 차례 하는 것이 특이하다.
가을에 흰색 억새풀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요동 벌판을 말 달리던 맹장 이성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북쪽 백두산에서 내려온 생기(生氣)가 꿈틀거리며 힘차게 달려온 길이다.

그 생기가 올라타고 당당하게 내닫는 맥세의 힘찬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조선왕릉만이 자랑하는 그 유명한 잉(孕)을 보고 있다. 이 잉(孕)이 있어 천하의 명당인 것이다.

조선왕릉은 사초지 강(岡) 위에 있다. 사초지는 생기의 저장 탱크다. 그 ‘강’에 생기를 불어 넣는 길이 ‘잉(孕)’이다.
풍수에서는 잉이 혈을 만들기 때문에 혈증(血證)이라고 한다.
잉은 곡장 바로 뒤의 얕으면서 약간 위로 돋아 올라온 부분이다. 잉이 없는 조선 왕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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