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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국보급 문화재 진천 보탑사(寶塔寺)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20.04.23|조회수1,033 목록 댓글 0


예로부터 살아서 살기좋은 곳, 바로 생거진천(生居鎭川)의 명당이다.

백두대간의 용맥이 속리산에서 갈라져 한남금북정맥으로 안성 칠장산까지 올라와서

안성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북진하던 용맥이 다시 남서진하면서 금북정맥을 형성한다.

그 용맥이 불쑥 솟아 이룬 만뇌산(611.7m)이다. 회룡고조형의 만뇌산 품에 안긴 충북 진천(鎭川)이다.

진천은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있다. 물이 풍부하고 바람이 잘 갈무리되는 곳이다.

풍수해가 없고 농사가 잘 되어 사람살기에 좋은 땅으로 알려져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고 했다.


보련산(寶蓮山)이 감싸고 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이다.

그 산아래 보련(寶蓮)마을이 있다. 보련마을을 상공에서 보면 물 위에 연꽃을 띄운 모양이다.

보련(寶蓮)은 보련화, 연꽃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다. 신라시대에 ‘연화세계를 꿈꾼다’는 뜻에서

이름 붙인 연곡리(蓮谷里)이다.

연곡마을 윗자리에 1996년 최고의 한옥장인들이 조성한 20세기 국보급 보탑사(寶塔寺)가 들어섰다.

절을 찾는 이들을 먼저 반기는 노거수 느티나무이다.

올해로 느티나무의 나이는 372세이다. 1982년 진천군은 보호수를 지정했다.

보탑사는 일주문이 없다.

'寶蓮山 寶塔寺' 현판을 단 천왕문(天王門)이다.

천왕문이 보탑사의 산문(山門) 일주문을 겸하고 있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 두 지킴이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천왕은 서쪽을 지키고 있다. 상상의 상서로은 동물 용으로 사특한 무리를 막고있다.

그 옆에 있는 천왕은 북쪽의 지킴이다. 오른손에 올려놓은 탑(塔)으로 보탑사를 지키고 있다.

탑은 고대 인도어로 수투파(Stupa)에서 유래된다. 수투파는 부처의 무덤을 뜻하며 부처의 진신(眞身)을 상징한다.

부처가 설(說)한 진리(眞理)을 상징하는 수투파다. 중국으로 건너가 탑파(塔婆)로, 우리나라에서는 탑(塔)으로

불렀다. 사특한 무리는 진리 앞에 꼼짝 못한다. 그 탑을 내세워 보탑사, 불국정토를 수호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천왕이다.

입구에서 먼저 만나는 지킴이는 남쪽의 천왕이다.

그는 칼로 부여잡고 눈을 부릎뜨고 사특한 무리를 막아내고 았다.

그 옆은 동쪽을 지키는 천왕이다. 그는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늘 악기를 연주한다.

사특한 무리는 음악을 싫어한다고 한다. 동쪽 천왕은 악기를 즐겨 연주하며 보탑사를 수호하고 있다.

이 절의 산문(山門) 천왕문을 통과하면 가파른 불국정토로 계단을 만난다.

천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통과해서 나온 산문 뒤쪽에 天王門 현판이 걸렸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보면 불국정토의 보탑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천상으로 가는 계단 좌우에서는 7각의 법고각과 범종각이 불전사물(佛殿四物)을

품고 협시(挾侍)하고 있다.

보탑사의 오른쪽 수문장 범종각이다.

종은 쇠로 만든다. 쇠는 음양으로는 음(陰)이다.

쇠로 만든 종은 나무로 친다. 나무는 음양으로 양(陽)이다.

한국의 종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 울린다. 듣는 이의 마음은 편안캐 한다.

범종은 울림은 지하로 전달돼 그곳 중생을 제도한다.

왼쪽 문지기 법고각이다.

큰 북이 있다. 북의 동쪽 면은 숫소의 가죽을 덮었다. 바로 양(陽)이다.

북의 서쪽 면은 암소의 가죽으로 감싸 만들었다. 서쪽과 암소는 음(陰)이다.

법고를 울려 지상의 중생 아픔과 고통을 다스린다.

작은 북 목어(木魚)가 법고각에 있다.

나무로 만든 작은 북이다. 그 북은 물고기(魚) 모양을 하고있다.

물고기는 물안경도 없이 물 속에서 눈을 뜨고 오랜 시간 구석구석 살핀다.

물고기처럼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해달라는 의미를 안고 있는 목어이다.

목어의 울림은 수중(水中) 중생을 제도한다.

법고각에는 작은 종 운판(雲板)을 모셨다.

철판에 구름문양과 천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새겼다.

운판의 소리는 공중중생을 제도한다.

20세기 한국 최고의 한옥장인들이 한껏 솜씨를 보이며 지은 보탑사((寶塔寺)이다.

주위사방은 연꽃봉우리 같이 아담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그 한 가운데에 현란한 단청으로

장식한 보탑사가 자리하고 있다.

한옥의 최고 장인으로 꼽히는 목수(木壽) 신영훈(申榮勳)이 총감독으로 지은 3층 목탑(木塔)이다.

1992년5월 고려 때 옛 절터에 목탑 보탑사를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3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된다.

몽고의 2차 침입 때 불타서 없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보탑사이다.

못하나 박지 않고 짜맞추기식으로 보탑사이다. 건축에 쓰인 목재만 8톤 트럭 150대 분이 소요 되었다.

목탑은 탑신과 상륜부를 합친 높이만 43m에 이른다.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규모이다.

보탑 1층에 사방불(四方佛)을 모셨다.

남쪽에는 석가모니불, 서쪽에 아미타불, 북쪽에 비로자나물,

그리고 동쪽에 약사유리광불을 모셨다. 중앙심주안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

보탑 2층 중앙에는 윤장대를 보셨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윤장대이다.

그 어렵고 복잡한 경전을 읽지 않고 윤장대를 한 번 돌리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대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한글법화경의 경판을 모셨다.

보탑 2층은 법보전(法寶殿)으로 꾸몄다.

3층에는 미륵불을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면서 이곳 현세는 무주공산이다.

그의 열반 후 56억7천만년 동안 공부하고 수련해 부처가 돼 이 땅 현세를 찾아 구도하게 될 미륵불이다.

미륵불은 다가올 57억7천만년 뒤의 미래를 관장하게 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상을 모신 적조전이다.

 적조전 들기에 앞서 부처의 발을 새긴 모습을 대할 수 있다.

깨들음을 위해 무수한 고행을 견디어낸 부처이다. 그 고난의 부처의 발이다.

적조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을 담은 열반상을 모셨다.

보통 사찰의 부처 뒤에는 탱화로 장엄을 한다. 이곳 열반상 주위에 탱화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가 마지막 열반에 들던 인도 쿠시나가의 산하를 옮겨왔다.


사찰 안은 정결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비구니의 정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야생화가 멋이 있다.

56억7천만년 뒤에 이 땅에 와서 제도하게 될 미륵불이다.

그 미륵불은 지금도 공부하고 걷고 있다. 한가하게 책상다리를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반가좌를 하고 있다. 잠시 반가좌로 '백제의 미소'를 머금고  잠시 묵상을 하고 있다.

곳곳에 연꽃이다. 좌대에도 연꽃이고 해를 가려주는 일산도 연꽃문양이다.



국보 404호인 백비(白碑)이다.

약 5평 규모의 비각 안에 백석(흰 돌)으로 다듬어진 비신(碑身)이 있다.

거북형상의 받침돌 위에 놓인 백비이다. 높이가 2m 정도이다.

그 위에 용 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비 머리가 얹혀있다.

그 비신에는 아무런 글자도 음각 되지 않았다.

옛 도승이 비석에 글을 쓰는 것조차 불경이라 해서 백비(白碑)로 세워달라고 했다는 설이다.


몽골이 고려를 두 번째 처들어왔다.

고려왕조는 강화도로 피신해 항몽(抗蒙)에 돌입했다.

유럽 정벌 선봉에 섰던 사리타이이다. 유렵인들이 그 말발굽 아레 무릎을 꿇었다.

고려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려인의 저항에 사리타이는 놀랐다.

개인의 체력은 길어야 40년이고 국가의 무력 군사력은 100년도 못간다.

문화와 종교 사상 등 소프트파워는 1000년을 간다는 사실에 몽골인들은 놀랐다.

사리타이 기병대는 남으로 달렸다. 대구 부인사의 대장경 목판을 불태웠다.

경주에 있는 황룡사 9층 목탑도 불태워 없앴다. 고려인의 소프트파워를 소멸시켰다.

1992년 한국의 대표적인 한옥장인들이 나섰다.

몽골인들이 불태워 없애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을 옛 고려 절터에 재현시켰다.

목탑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주위 산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한옥 3층목탑 보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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