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난지도이야기

효령대군 이보(李補)와 계궁선(桂宮仙) 사랑이야기(3)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8.10.06|조회수457 목록 댓글 0

세종9년(1497년) 2월 19일 의금부에서 세종에게 충격적인 보고를 올렸다.

-돈령부(敦寧府) 지사(정2품) 이담(李湛)이 몰래 효령대군의 첩 기생 계궁선(桂宮仙)과 간통했으니 법률에 의거해 곤장 60대에

도형(徒刑 오늘날 징역형) 2년 반에 해당됩니다.-하고 상소문을 올린 것이다.

돈녕부란 왕실 종친의 범위에 포함시키기 애매한 먼 종친이나 외척을 관리하기 위해 태종9년 만들어진 기구다.도대체 이담은 어떤

인물이기에 현직 국왕 친형의 기생첩과 대담하개 간통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이담은 이성계의 이복동생이자 초지일관 태종 이방원을 후원했던 이화(李和)의 넷째 아들이다.이담은 비록 서자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효령대군의 아저씨였다.보고를 받은 세종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화가 누구인가?개국(開國) 공신 1등에,자신의 아버지 태종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 직후 책봉된 좌명(佐命)공신

2등으로 '3등공신'에다가 '1등 공신 중의 1등 공신'이었다.그 아들을 처벌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다.

결국 세종은 '종실훈친(宗室勳親)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이담을 돈녕부사의 직위만 해제하고 공주로 귀양을 보냈다.그리고 계궁선과

대천교를 의금부로 끌고와서 문초했다.

"계궁선은 들으라.아무리 천한 기생이로서니 어찌 대군에게 정을 주며 수절할 것이지 돈에 눈이 멀어 대군의 5촌 아저씨에게 몸을

허락하느냐?"

계궁선은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죄인 기녀 계궁선은 효령대군과 정을 통하고 머리를 올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돈에 눈이 멀어 이담과 정을 통해놓고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아 곤장 90대를 집행하라."

계궁선은 형틀에 묶여 곤장 90대를 맞았다.계궁선의 엉덩이가 매를 맞아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또한 이담을 소개한 중매쟁이

대천교(對千嬌)에게는 곤장 80대를 때렸다.계궁선을 곤장을 맞고 공주로 귀양을 갔다.

義禁府啓: "知敦寧李湛潛奸孝寧大君妾妓桂宮仙, 按律杖九十、徒二年半。" 命只收職牒, 配于公州, 桂宮仙杖九十,

中媒妓帶千嬌杖八十, 竝贖徒年, 還本定役<세종실록>
이후 효령대군은 전국 사찰을 돌다가 공주로 귀양간 계궁선을 만났다고 전한다.효령은 계궁선을 귀양에서 풀어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귀양이 끝난 다음 계궁선은 석조불상을 찾아와서 통곡하였다고 한다.그해 5월 9일에도 효령대군과 관계를

가진 기녀를 두고 의금부에서는 임금에게 간통사건을 보고했다.

정윤(正尹) 이무생(李茂生)은 기생 매소월을 첩으로 삼은 다음에 매소월로하여금 이무생에게 조선시대 4대 기녀 중에 한사람인

자동선(紫洞仙) 간설매(間雪梅) 죽간매(竹間梅)를 소개하도록 하여 간통을 도왔고 이복생(李福生)은 약계춘(藥階春)과 신백정(新白丁)의 딸 보금(寶金)을 연결시켜 주었다.

그로 인하여 이무생은 백천(白川)으로 이복생은 원주(原州)로 원윤(元尹) 이의생(李義生)은 강화(江華)로 부처(付處)하였으며

이의생의 첩 매소월(梅素月)이가 기녀들을 소개했다 하여 매소월에게 곤장 80대,나머지 기녀들에게 곤장 90대를 처벌하였다.

이무생 이복생 이의생은 모두 공정왕(恭靖王) 궁침의 아들들이다.문제는 또 효령대군과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죽간매와 약계춘은 효령대군이 일찍이 관계를 가졌던 기녀이며 간설매는 봉년군이 관계를 가졌던 기녀이다.의성군 이용은

효령대군의 큰 아들이다.봉녕군은 태조 이성계의 장남이자 태종의 친형인 진안대군 이방우의 외아들이다.뿐만아니라 조선시대

4대 기녀로 꼽혔던 옥부향(玉膚香)도 효령대군과 관계를 가졌던 기녀인데 옥부향은 피부가 옥같이 고왔다고 한다.이러고 보면

효령대군과 관계를 가졌던 기녀들은 계궁선을 비롯하여 옥부향 죽간매 약계춘 등 왕실의 파티 타임에 어김없이 부름을 받았던

기녀들이었다.효령대군은 아들이 7명(본처에서 6명 막내는 첩의 소생)이었는데 막내동생 성녕대군이 대가 끊겨 여섯째를 양자로

보내고 생전에 손자가 33명 증손자가 109명이었다고 한다.

횽령대군은 계궁선이 곤장을 맞고 난 뒤 가끔 망원정 옆에 있는 석조불상 앞에 합장하고 삼배(三拜)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배는 동생 충령이 나라를 잘 다스려 주기를 기원했고 2배는 형 양녕대군의 건강을 기원했으며 3배는 막내 성녕대군이 극락세계에서

잘 지내기를 기원했다.효령대군은 동생들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국보2호인 '탑골공원의 10층 석탑'의 건립과 보물2호인 '보신각종'의 주조를 직접 감독했다.그리고 옛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짓게되자 그 약사를 주관했으며 계정혜(戒定慧)에 바탕을 둔 불법의 수련을 독실히 하면서 연주아(관악산) 무위사(월출산)백련사(만덕산) 회암사(양주) 등의 많은 사찰을 중건 중수했으며 문장에도 뛰어나 연화경(蓮華經)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 등의 우리말 번역을 비롯하여 많은 호국불사를 주장하시고 불교발전에 지대한 공적을 또한 남겼다.

------------------------------------------------------------------------------------------------

위의 글은 마포문화원의 <麻浦區資料叢書 第11輯>'금성당은 살아있다'에서 옮겨온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