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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이야기

난지도의 유래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8.09.24|조회수899 목록 댓글 0

난지도는 행정구역상 서울 마포구 성산동 549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동쪽은 불광천 홍제천 북쪽으로는 성산천 샛강 난지천으로

둘러싸인 82만3천여평의 땅으로서 망원정 부근에서 한강과 갈라진 샛강이 행주산성 쪽에서 다시 본류와 합처지면서 생긴 범람원이다. 한강 하류 삼각주로 편마암 지대인 난지도는 자연스러운 모양의 제방이 있어 조선 말까지 놀이배가 정박하는 곳으로도 이용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난지도는 모래내의 불광천으로 부터 유입되는 토사가 쌓여 형성된 너른 모래펄로 이름난 곳이었다.

겸재 정선은 한강 일대의아름답고 낭만적인 산천을 '경교명승첩'에 담아 후대에 전하고 있으며 그 중 '금성평사'는 뛰어난

풍광뿐만 아니라 서해로부터 한강 하류 난지도를 거쳐 한양으로 입성하는 쌍 돛대인 세곡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 쪽은 지금 가양대교 남단이고 상단 왼쪽은 현재 난지도와 성산동의 성산을

보여주고 있다.1) 출처:월드컵공원 관리사업소 1층 사료관


                                                     겸재 정선의 '금성평사'(1740년)

난지는 난초와 지초를 아우르는 말로 흔히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난지도는 철따라 온갖 꽃이 만발해

있어 꽃섬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경조오부도(1861년)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는 의미의 중초도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구한말까지 이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오리섬 또는 압도(鴨島)라고 하였고

옛 시인들은 여러 종의 철새 수십만 마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한강으로 날아들면서 바로 이 난지도 위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다고

하여 문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2)출처:월드컵공원 관리사업소 1층 사료관


                                                                       김정호의 경조오부도(1861년)

난지도는 모래내와 홍제천 불광천이 물머리를 맞대고 들어오는 드넓은 지대라서 한강폭이 호수처럼 넓어지므로 서호라는

별명으로 불리었고 이 일대를 언제부터 난지도라 불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919년 지도에는 난지도라 표기되어있다.

                                                            한강 속의 섬 난지도(1919년)

난지도는 물이 맑고 먹이가 풍부해 겨울이면 고니 떼 흰 뺨 검둥오리 등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들었고 1970년대 중반까지

70여 가구의 토착민들이 수수 땅콩 채소를 가꾸고 젓소를 기르기도 하는 등 목가적인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갈대숲이 아름다워 청춘남녀들이 데이트를 하거나 애정영화의 세트 장소로도 이용되기도 했던 낭만적인 장소

난지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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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DCM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상암동의 역사적 배경>에서 일부 옮겨온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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