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10>
백제와 왜의 관계를 거꾸로 쓴 ‘일본서기’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 ②
일본 ‘건국기념의 날’
일본에서 2월 11일은 ‘건국기념의 날’이다. 서기전 660년 2월 11일에 초대 신무(神武)천황이 즉위하면서 야마토왜(大和倭)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혈통이 지금껏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이어진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실제로 서기전 660년 2월 11일 건국했다고 믿는 일본인은, 극소수의 극우파들을 제외하고는 없다. 문헌사료는 물론 유적·유물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야마토왜는 이르면 서기 3세기 말 경 가야계가 큐슈지역에 ‘진출’하면서 시작한다. 가야계가 ‘정복’한 것이 아니라 ‘진출’한 것이다.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철갑으로 무장한 가야계의 진출을 저지할 정치세력 자체가 없었다.
연대조차 거짓으로 기록한 ‘일본서기’
모든 사서(史書)의 기초는 연대(年代)의 정확성이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연대가 맞지 않는다. 문제는 일부 연대를 실수로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먹고 연대를 조작했다.
서기전 660년 신무(神武)가 즉위했다고 결정한 해는 메이지 5년(1872)이였다. 지금의 총리격인 태정관(太政官)은 그때까지 사용하던 태음태양력을 태양력으로 바꾸면서 2월 11일이라고 결정해 ‘건국기념의 날’로 기념했다.
역사 조작한 허황된 건국연대
문제는 서기전 660년에 일왕 신무(神武)가 즉위했다는 주장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점이다. 서기전 7세기에 일본 열도에는 나라라고 부를 정치세력 자체가 없었다.
일본 고대사는 조몬(繩文)시대부터 시작하는데 대략 서기전 8000~7000여 년 전부터 서기전 400~300년경까지를 말한다. 그 뒤를 이은 야요이(彌生)문화는 대략 서기전 400~300년 경부터 서기 3세기까지이다.
일본학계는 야요이문화에 대해 “중국과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새로운 요소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중국은 사실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끼워 넣은 것이고 사실은 모두 고대 한국인들이 가져간 것이다.
서기전 400~300년 경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가 시작되는데, 서기전 660년 경에 신무(神武)가 임금으로 즉위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지금 기념하고 있는 ‘건국기념의 날’이라는 것 자체가 조작된 역사이다.
▲ 야요이(彌生)토기. 고대 한국인들이 건너가 만든 무문토기(無紋土器)이다.
‘일본서기’를 읽는 법
그러면 ‘일본서기’는 왜 이런 허황된 내용을 수록했을까? 이는 ‘일본서기’라는 역사서의 성격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일본서기’는 건국연대뿐만 아니라 야마토왜와 신라·고구려·백제·가야에 대한 관계도 거꾸로 썼다.
중국의 ‘양서(梁書)’ 〈동이열전〉에는 “백제는 다스리는 성을 고마(固麻)라고 하고 읍을 담로(檐魯)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말하는 군현(郡縣)과 같다. 백제에는 모두 22개의 담로가 있는데, 대개 왕의 제제와 동족들이 나누어 웅거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1971년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의 지석(誌石)을 보면 무령왕의 죽음을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이라고 썼다. 백제에서 일왕에게 내려준 유명한 칠지도(七支刀)에는 “마땅히 후왕에게 공급할 만하다(宜供供侯王)”라고 쓰고 있다.
야마토왜는 백제의 제후국이라는 뜻이다. 야마토왜는 ‘양서’에서 말하는 백제의 담로, 곧 제후국 중 하나였다.
이런 관계를 거꾸로 써놓은 역사서가 ‘일본서기’인데, 720년에 편찬했다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 663년 벌어진 백강(白江:백촌강) 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은 신당(新唐:신라·당)연합군에 궤멸적 타격을 받았다. 이로써 백제는 멸망한 것이다.
그 57년 후에 ‘일본서기’를 편찬할 때 모국(母國)이자 상국(上國)인 백제가 무너졌으니 야마토왜 자력으로 생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서 황제국 백제를 제후국으로 서술하고 제후국인 야마토왜를 황제국으로 서술하면서 독립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러면서 개국연대를 1천년 이상 소급해 서기전 660여년 경에 야마토왕조가 시작한 것으로 설정했다. 그러니 연대부터 맞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국고로 편찬한(동북아역사재단) ‘역주 일본서기’는 “(일본서기의)진정한 가치는 ‘일본서기’가 고대인들에 의해서 편찬된 고대의 사서라는 점에 있다.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즉 중세인의 시각에서 본 역사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호도하고 있다.
▲ 미송리식 토기. 평북 의주 미송리에서 출토된 무문토기(無紋土器)를 뜻하는데, 일본 야요이 토기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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