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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15> 근초고왕이 백제의 시조라고 우기는 역사학자들

작성자팔도유람(신종근)|작성시간21.02.10|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15> 근초고왕이 백제의 시조라고 우기는 역사학자들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대한민국 역사학계에는 다른 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교리들이 있다. 국민들에게는 비밀로 삼고, 자신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교리다. 그중 하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김부식이 만든 가짜라는 논리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삼국(三國)의 건국시기를 물으면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신라는 서기전 57년, 고구려는 서기전 37년, 백제는 서기전 18년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나라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 사학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한 예로 천재교육에서 발행한 검인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보자. 이들은 삼국의 건국시기를 부정하기 위해 ‘국가의 기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국이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는 차이가 있다. 고구려는 2세기, 백제는 3세기, 신라는 4세기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6대 태조왕(재위 33~146) 때, 백제는 8대 고이왕(재위 234~286년) 때, 신라는 17대 내물왕(재위 356~402년) 때 나라가 되었다는 논리다. 그 전까지는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학자들 중 ‘삼국사기’를 가짜라고 본 학자는 없었다. 그럼 누가 가장 먼저 ‘삼국사기’를 가짜라고 주장했을까? 물론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다.

 

▲ 나가 미치요(那珂通世:1851~1908). 그는 ‘삼국사기 불신론’을 처음 주장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대한민국 강단사학계의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인 학자들의 ‘삼국사기’ 비판

 

‘삼국사기’를 포함한 모든 역사사료는 사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비판에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 기록이 가짜라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는 일본의 국학자였던 나가 미치요(那珂通世:1851~1908)였다.

 

나가 미치요는 1900년에 쓴 ‘가라고’라는 논문에서 가야가 임나이자 고대 야마토왜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 황국사관(皇國史觀) 논자였다. 나가 미치요가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한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이라고 우기기 위한 것이었다.

 

‘삼국사기’의 시각으로 보면 고대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일본서기’의 기사가 명백한 거짓이므로 ‘삼국사기 불신론’이라는 희한한 이론을 발명한 것이다. 그 후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했다.

 

‘삼국사기’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비판한 일본인은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1873~1961)였다. 쓰다 소키치의 주장 또한 간단하다. ‘삼국사기’는 ‘일본서기’에 비추어 보면 가짜라는 것이다.

 

 

▲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1873~1961). 그는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이 건국했다고 주장했다.

 

 

‘삼국사기’와 너무도 다른 ‘일본서기’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대해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삼국사기’의 계왕(12대) 이전의 백제기사는 모두 사실로서 믿을 수 없으며 그것이 후세의 사가(史家)에 의해서 구조(構造, 조작)된 것이라는 것은…벌써 말할 필요조차 없다.”

 

12대 계왕 이전의 백제본기는 모두 거짓이라는 쓰다 소키치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벌써 말할 필요조차 없다.”

 

나가 미치요나 쓰다 소키치가 13대 근초고왕이 백제 시조라고 우기는 이유가 있다. ‘일본서기’의 신공(神功) 왕후 49년조의 내용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신공 49년에 야마토왜군이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서기’ 신공 49년은 서기 249년인데, 주갑제(周甲制)를 적용해서 2주갑 120년을 끌어올려 369년의 일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서기 369년에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 2만 군사를 격퇴하고, 황제의 깃발을 뜻하는 황색 깃발을 휘날리면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했다고 적고 있다. ‘삼국사기’의 눈으로 보면 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에 임나를 설치했다는 서술이나 근초고왕이 야마토왜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는 서술 등은 모두 거짓이기 때문에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사기’ 불신론’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발명한 것이다.

 

그런데 쓰다 소키치 등의 이런 억지에 대해 남한 강단사학계의 고 이기백 서강대 교수는 “(일본인 학자들의 삼국사기 비판은) 근대적·학문적이자 엄격한 비판이며 철저한 비판이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일본인들의 시각으로 자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대학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큰 비극이다.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근초고왕이 백제의 시조라고 우기는 역사학자들 -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604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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