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16> 조선사편수회 삼총사가 발굴한 일 왕가의 시조묘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②
이마니시 류의 ‘삼국사기’ 불신론
대한민국 강단사학자들이 아직도 존경해 마지않는 일본인 식민사학자가 이마니시 류(今西龍)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실무를 맡으면서 경성제국대 교수도 역임했다.
그는 ‘삼국사기’는 가짜이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는 진짜라고 극력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대부분 조작되었다면서 “신라 제1왕 박혁거세 즉위년은 후대의 왕위계승의 연대에서 계산하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후대의 왕위계승의 연대에서 계산’하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면 그 후대의 왕이 누구이며, 어떻게 계산했더니 성립되지 않는지 논증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무조건 ‘믿을 수 없다’고 우기는 것뿐이다.
일 왕가의 시조묘, 사이토바루 고분군
필자는 2016년 일본 큐슈(九州) 남부 미야자키(宮崎)현에 있는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군을 답사하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삼총사의 흔적을 모두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토바루 고분군을 소개하는 일본 서적들은 “황조(皇祖)의 발상지(發祥地)”라고 설명하고 있다. 황조(皇祖), 즉 현 일 왕가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분의 축조시기에 대해서 “‘구주의 고분’은 3세기 말부터 6세기까지의 무덤(吉村靖德, ‘九州の古墳(2015)’)”이라고 말하고 있고,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4세기 초에서 7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고 있고, ‘서도원고분군’도 “4세기 전반에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北鄕泰道, ‘西都原古墳群(2005)’)
이는 다시 말해서 이른바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 자랑하는 현 일본 왕실의 시작이 아무리 빨라야 3세기 후반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 왕가의 뿌리는 가야계
이 사이토바루 고분군 발굴(1912~1916)에 조선사편수회 회장이었던 아리요시 쥬이치(有吉忠一)와 조선사편수회 고문이었던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그리고 조선사편수회를 주도했던 이마니시 류가 이 발굴에 모두 관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야마토왜가 큐슈 남부 미야자키(宮崎)에서 가야계에 의해 시작했는데, 그 시기는 빨라야 3세기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야마토왜의 시작을 서기전 660년으로 서술하고 있는 ‘일본서기’가 시기를 1천년 가까이 끌어올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국에 건너와서 황국의 역사는 서기전 660년에 시작되었다고 우기면서 ‘일본서기’는 진짜고 ‘삼국사기’는 가짜라고 주장했다. 일제 식민사학은 처음부터 학문이 아니라 사기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일본서기’ ‘신대기(神代紀)’는 야마토왜의 시조들이 고천원(高天原)에서 바다를 건너와 일향(日向)에 나라를 세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 고천원이란 다름 아닌 경북 고령의 대가야다.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된 가야 철모와 사이토바루 고분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철모가 완전히 같다는 점에서도 이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가야계가 현해탄을 건너 야마토왕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거꾸로 야마토왜가 서기 369년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우긴 일제 식민사학, 그리고 광복 75년이 넘도록 이를 추종하는 대한민국 강단사학, 세계 사학(史學)사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 미야자키(宮崎)현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군 발굴기념 명패. 이마니시 류가 이 발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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