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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18> 고등수학과 거울까지 등장하는 '삼국사기' 불신론

작성자팔도유람(신종근)|작성시간21.02.24|조회수105 목록 댓글 0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18>
고등수학과 거울까지 등장하는 ‘삼국사기’ 불신론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④

일본 사료에 안 나오니 가짜라는 주장


일제강점기 한국사를 연구했다는 일본인 학자들의 논문들을 보면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된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내용을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일본인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했는데, 그 중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라는 인물이 있다. 마에다는 조선총독부의 통역관이었는데, 1925년 ‘신라왕의 세차(世次)와 그 이름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에서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삼국사기』 소지왕(炤知王) 이전의 기사를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은 확고부동의 단안(斷案)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소지왕의 재위연대는 서기 479년부터 500년까지이니 이를 따르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500년 이상 가짜가 된다. 그런데 이마니시 류의 학문을 믿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이마니시 류는 소지왕 이전의 『삼국사기』 「신라본기」만 믿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17대 내물왕(奈勿王:재위 356~402)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도 하고, 때로는 24대 진흥왕(眞興王:재위 534~576)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심지어 28대 진덕왕(眞德王:재위 647~645)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으니 이에 따르면 신라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삼국통일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마에마 교사쿠는 일본사적(日本史籍)에 소지왕 이전의 왕명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도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가짜로 모는 사유로 들었다.『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신라 국왕이 일본 사료에 나오지 않으니 가짜라는 것이다.

일본 사람이 너를 못 봤다고 했으니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논리다. 이런 주장들이 근거 사료를 가장 중요시하는 역사 논문에 버젓이 등장하고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이니 불가사의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 신공왕후 삼한정벌도(三韓征伐圖).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사기를 조작으로 몬 이유는 신공왕후(神功王后)가 가야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세웠다는 일본서기를 사실이라고 우기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서기가 가짜니 삼국사기도 가짜다?

오타 아키라(太田亮)는 여기에서 한술 더 떴다. 그는 1928년 ‘조선 고대연대의 연구와 일한의 관계’에서 “한국의 고대연대(古代年代)도 일본의 고사(古史)처럼 연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서기』가 연대를 연장시킨 것처럼 『삼국사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도둑이니 너도 도둑이라는 식이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를 가짜로 모는 이유는 모두 임나일본부설 때문이다. 오타 아키라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倭)와 가야는 모두 일본을 뜻한다고 본다.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사기』에 주목하는 것은 모두 왜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오타 아키라는 주갑제(周甲制)를 『삼국사기』에도 적용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무려 4주갑 24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하고, 「백제본기」는 3주갑 18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개의 거울에 비춰본 ‘삼국사기’

신라사는 240년, 백제사는 18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하다 보니까 스스로 수학자로 변신해서 복잡하게 계산했다(자세한 내용은 원본 기사 참조).

『삼국사기』는 초고왕이 48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오타 아키라는 근초고왕(29년)+근구수왕(9년)의 재위연대를 합친 38년에 10년을 더 보태서 48년이 나왔다는 것이다. 왜 굳이 10년을 더 보탰는지 아무런 근거는 없다. 자신이 계산 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또 『삼국사기』는 비류왕이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고 썼는데, 오타 아키라는 14대 근구수왕(9년)+15대 침류왕(11년)+16대 진사왕(7년)+17대 아신왕(13)의 재위연대를 합친 30년에 10년을 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타 아키라 주장의 압권은 ‘여러 개의 거울론’이다. 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국(倭國)관계의 기사는 거울을 세 쪽으로 놓고 가운데 물건을 세운 것처럼 반영한 것이 또 반영하여 하나의 사건이 두 개도, 세 개도, 네 개도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거울을 여러 개 놓고 그 보이는 모습을 제각각 적는 식으로 『삼국사기』를 썼다는 것이다. 오타 아키라의 ‘여러 개의 거울론’은 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한때 강단사학계의 주류였던 고 이기백 교수는 “쓰다 소키치·오타 아키라·이마니시 류 등의 『삼국사기』 비판은 근대적·학문적이고 엄격한 비판이며 철저한 비판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현재 한국 강단사학이 딱 그 수준이다.


[이덕일의역사를말하다]고등수학과 거울까지 등장하는 ‘삼국사기’ 불신론 -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60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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