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한국통사』: 다시 찾는 7,000년 우리 역사
서설(序說): 국사(國史)를 보는 눈
4. 한국사학은 실증사학인가?
남한 강단사학이 스스로를 실증사학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명실상부한 것일까? 실증사학에 대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역사연구에 있어서 실증적인 방법을 중시하는 역사학"이라면서 사라도리白鳥庫吉ㆍ이케우치池內宏ㆍ이마니시今西龍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전의 다음 구절은 이들이 실제 실증사학을 추구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그런데 실증사학자들이 가장 중시한 증거는 정확한 문헌자료였다. 문헌자료라고 해도 이들이 추구한 것은 정확한 사료였다. 정확한 사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들은 사료비판에 철저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나 고故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는《고대한일관계사연구》에서 "일본인 연구자의 한국고대사 연구가 실증사학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본인 연구자들의 태도를 이렇게 비판했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삼국사기》초기기록이 조각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자신들이 허구의 증거를 만들어놓고《삼국사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한 것을 비롯하여《삼국사기》의 기사가 중국 기록에 없어도 조작, 중국 기록과 같아도 조작, 중국 기록과 차이가 나도 조작되었다고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아직도 한국인 연구자들이 왜 일본인 연구자들을 '근대적 실증사학자'라고 높게 평가하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고대한일관계사연구》
최재석 교수는 일본인은 물론 그를 추종하는 한국인 학자들도 실증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남한 실증사학은 실증과 거리가 멀다. 아마 전 세계에서 남한 실증사학처럼 실증과 거리가 먼 역사학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랑케Leopard von Ranke(1785~1886)의 실증주의를 추종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랑케의 실증주의와도 전혀 다르다. 랑케는《강국론Die grossen Machte》에서 세계가 보편적인 인류공동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민족국가들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랑케는 각 민족국가들이 상호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각국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유지해나가야 한다면서 강국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사적 보편성은 각 민족국가들의 공존이며, 국가의 힘은 곧 민족정신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병도ㆍ이기백이 주장하는 '객관'은 조선총독부의 관점을 뜻하고, 이들이 주장하는 '주관'은 독립운동가들의 민족사학을 뜻한다.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관점, 즉 강대국의 관점을 '객관'으로 포장하고, 이에 맞서는 민족사학을 '주관'으로 폄하해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을 합리화했다. 이는 랑케의 실증사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랑케는 독일의 민족주의 사학자였다. 랑케가 살았던 시대는 유럽에서 뒤쳐져있던 독일이 막 도약하던 시대였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뒤쳐진 나라라고 인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랑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하면 독일사를 서술할 수 있다는 독일 민족주의 역사학을 주창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민족, 어느 국가든 실제로 존재했던 자민족과 자국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랑케 실증주의의 핵심이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랑케의 실증사학을 일제에 맞섰던 한국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기 위한 용도로 오용했다.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은 엄격한 문헌고증을 통해 보편적인 역사가 아닌 개별적이고 특수한 민족의 역사를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 복원해서 서술"하는 과학적 방법론이었다(임종권,《한국역사학의 계보》) 랑케는 각 민족, 각 국가가 동등한 가운데서 각 민족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인정했는데, 남한 강단사학은 랑케의 실제 주장과는 거꾸로 일제 황국사관의 눈으로 한국사를 비하하는 것을 '객관' '공정'이란 논리로 합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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