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21세기』
제2장 고조선 연구의 역사 - 피와 눈물과 영웅들의 드라마 (2)
2. 신채호와 동북아시아 고대사의 재구성
윤내현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근본적으로 만리장성 이남 중국 내부에 대한 역사이다. 「흉노열전」이나 「조선열전」 같은 주변부 이야기도 있지만 부수적이다. 이 말은 사마천이 그 바깥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몰랐다는 뜻이다. 그리고 관심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렇듯 기원전 1세기까지 『사기』는 중국 외부 역사를 기록한 바가 없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은 물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 역사서이다. 그 이전 『춘추(春秋)』나 『국어(國語)』 등의 역사서는 『사기』보다 훨씬 범위가 작다. 따라서 중국 바깥 만주와 한반도의 그 이전 수천 년에 걸친 역사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시기 동안 그 지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무지는 최소한 사마천 이후 2천 년간 지속되었다. 심지어 그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다. 『사기』 이후 중국의 모든 역사서도 이에 대해 서술하거나 관심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암묵적으로 가진 생각이라면 고대의 그 지역에는 문명이 없었다는 것뿐이다.
신채호의 대고조선론은 이에 대한 첫 번째 연구이다. 고대 그 지역에 고조선이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의 학자들은 신채호의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고대의 그 지역엔 주목할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에 유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0년대에 이르러 만주 북서부와 내몽고에서 엄청난 발굴이 이루어졌다. 흔히 홍산문명(紅山文明)이라 불리는 것을 포함한 여러 유적들이 그것이다. 이 문화는 기원전 6천년 이전에서 역사 시대에 이르기까지,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진 고도의 고대 문명이었다. 또 이 문명은 앙소(仰韶) 문명과 같은 중국 내부의 고대 문명보다 오래 되었으며 그 수준도 뒤떨어지지 않았고 이질성도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중국 바깥에 중국과는 다른, 그러나 중국에 못지않은 고대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 홍산문명(紅山文明). 요하(遼河)문명을 말하는 것으로 황하문명에서는 보이지 않는 빗살무늬토기, 적석총, 비파형 동검 등 동이족 문화의 특징을 보인다.
중국 정부와 학자들은 이 문명을 중화문명의 일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것이 동북공정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이질적인 문화가 중화문명으로 온전히 통합되기는 쉽지 않다. 이 문명의 실제 주인공들이 누구였느냐는 질문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윤내현은 이 문명의 담지자(擔持者) 중 하나가 고조선이라 주장했다.
신채호는 후세에 벌어질 이런 일을 모른 채 오직 문헌 연구로만 대고조선론을 정립했다. 그리고 그가 그 일을 했기 때문에 윤내현 같은 학자가 존재할 수 있었고 이 유적의 본질을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신채호가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말의 의미이다.
따라서 신채호를 거론하는 순간 동북아시아의 고대사는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 전 수천 년간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던 만주 지방의 고대사에 고조선이라는 문명국가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이 문명은 중국 내륙 문명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또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 만주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고대국가들의 실상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들이 무수히 발생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일본 고대사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일본 학계를 포함하여 누구나 전제하는 사실은 일본 땅에서 과거 1만 년간 유지되던 채집사회 석기 문명인 죠몬(縄文: 대략 서기전 8000~7000여 년 전부터 서기전 400~300년경까지) 시대가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한반도에서 이주한 유민들을 통해 단번에 농경 사회 금속 문명인 야요이(彌生: 대략 서기전 400~300년 경부터 서기 3세기까지) 시대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정식 고대사는 이때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이는 일본 문명의 한반도 기원을 강하게 예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학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일본 문명의 본체는 그 멀고 알 수 없는 죠몬 시대에 있었다느니, 야요이 시대를 갑자기 일으킨 이주민들이 중국 본토나 동남아시아에서 왔다느니 하는 게 다 그것이다. 또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이라는 한때 센셔이션을 일으킨 이론도 있다. 연구를 더 해봐야겠지만 그들의 뜻대로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신채호가 대고조선론을 건립한 이상 일본 문명을 시작한 한반도로부터의 이주민들에 대한 재고는 불가피하다. 그들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하필 그때 일본으로 건너왔는지 다시 알아봐야 한다.
그럼 누가 언제 이것을 알아보는가. 앞서 역사 서술에는 힘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 말했다. 이것이 전 세계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가는 전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국력 그리고 양국가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영향을 얼마큼 가지는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일본의 한반도 기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책의 재판본에는 부록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첨가된 고대 한일 관계 논문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이면의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데도 그의 언사는 조심스러웠고 무엇보다 학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냐하면 전 세계 관련분야 학자들에게 한국의 고대사는 존재하는지도 모를 만큼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 『총, 균, 쇠』를 쓴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일본 열도가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 북한학자 김석형을 유력하게 참고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많지는 않아도 한국과 한국사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늘어났다. 유튜브에서도 이들의 발표나 강연이 간혹 보이는데 듣고 있노라면 예전보다 한국 실정에 근접한 이야기를 한다. 가령 중국 문명의 주변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금속 문자나 불교 등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든가 그만큼 특수한 유교 문화가 있으며,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 상상 이상으로 긴 시간 동안 통합된 집단으로 이어져 왔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다른 것 없다. 삼성의 반도체 같은 물건이 예전과 달리 전 세계 경제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방탄소년단이 빌보드를 석권하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이 천문학적인 이윤을 창출하고, 거의 핵미사일에 준하는 현무 미사일이 오차율 제로에 근접하는 발사에 성공하는 등 한국의 국력이 어느 순간 비약적으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한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경우라도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기 마련이다.
이는 물리 법칙에 준하는 세태의 법칙이기 때문에, 현재의 중국과 일본이 그토록 집요하게 역사 왜곡에 몰두하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김치와 한복이 자기네 거라는 주장, 일본의 역사 비틀기, 위안부가단지 매춘부였다는 주장들이 다 그것이다. 그것이 점점 심해지고 점점 괴상해진다는 것은 그들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그만큼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결국 역사 서술의 가부에는 이 사태의 가부, 소용돌이치는 국제사회 속에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가 간의 역관계가 결정적요소로 개입한다. 신채호의 대고조선론의 운명도 이 가부를 따라 흘러갈 터인데 과연 그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신채호가 지겠는가? 나는 신채호가 이길 것 같다. 왜냐고? 다른 무엇도 아닌, 신채호가 진실과 과학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 그러기에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부지런히 벌어먹고, 부지런히 놀고, 누가 우리를 괴롭히면 부지런히 화내고, 남은 시간은 잠이나 잔다. 그게 우리가 국력을 키워낼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출처: 『고조선과 21세기』, 김상태, 2021. 67~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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