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정벌했다는 가라(加羅), 다라(多羅), 안라(安羅), 신라(新羅)와 관련된 지명들의 위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신공황후가 신라(新羅)를 정벌하고 이후에 남가라, 안라, 다라, 탁순 등의 지역들을 차지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위 이 지역들은 임나(任那)라고 불리우는 지역들로서 신공황후 삼한 정벌(三韓 征伐)의 내용입니다.
高麗·百濟二國王 聞新羅收圖籍 降於日本國 密令伺其軍勢 則知不可勝 自來于營外 叩頭而款曰 從今以後 永稱西蕃 不絶朝貢 故因以 定內官家屯倉 是所謂之三韓也 皇后從新羅還之
고구려와 백제의 두 나라 국왕이 신라가 도적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그 군세를 살피도록 하였다.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여 “지금 이후로는 길이 서쪽 번국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내관가둔창(內官家屯倉)으로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三韓)이다. 황후가 신라로부터 돌아왔다.
『일본서기』 신공황후 9년 조
俱集于卓淳 擊新羅而破之 因以 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 加羅 七國 仍移兵 西廻至古奚津 屠南蠻忱彌多禮 以賜百濟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벌(比自㶱)·남가라(南加羅)·탁국/녹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古奚津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 조
또한 위 지명들은 학계에서는 말하는 소위 임나(任那) 7국이라고 하는 것인데, 현재 강단학계에서는 위치 비정에 있어 근거도 없는 초성 발음의 유사성 만으로 한반도 남쪽으로 모두 위치를 비정하고 있는데, 강진은 과거 도무군(道武郡)이 이였고 '도무'는 '다례'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논리로 침미다례(忱彌多禮)이고, 탁순(卓淳)은 달구벌로서 'ㅌ'과 'ㄷ'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를 대구로 비정하는 등의 학문 같지도 않은 논리로 끼워 맞추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의 위치와 동일하게 한반도 남쪽 가야 지역에 모두 비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나가야설(任那加耶說) 또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로서 아직도 식민 강단학계에서는 이를 정설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들에게 임나일본부 극복 했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이 지명들이 모두 한반도 남부에 있다고 앞뒤가 전혀 않맞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렇다면 임나와 관련된 지명들이 일본 열도에는 없는 것 일까요?
먼저 임나의 위치에 대해 살펴 보면, 일본서기 숭신조에 축자국(북큐슈)에서 2천리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다고 되어 있고
任那者 去築紫國 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임나는 쓰꾸시(북큐슈)국에서 2,000여 리 떨어져 있는데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일본서기』 숭신 65년 조
삼국지의 기록에서도 일관되게 말로국(末盧國)으로 부터 2,000 여리의 위치해 있는 대마국(對馬國)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對馬國)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대마국에서] 남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는데, 이름은 한해(瀚海)라고 하는 데 일대국(一大國)에 이른다...또 바다 하나를 건너서 1천여 리를 가면 말로국(末盧國)에 이른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왜
일대국(一大國)은 이키 섬(いきのしま)을 말하며, 말로국(末盧國)의 위치에 대해서는 唐津(가라쓰), 후쿠오카(福岡市), 북큐슈(北九州) 등의 큐슈 북쪽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말로국(末盧國)에서 2천리가 정확히 대마도(對馬島)임을 사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라(加羅), 다라(多羅), 안라(安羅), 신라(新羅) 등의 가야계(加耶系), 고구려계(高句麗系), 신라계(新羅系)의 이러한 지명들은 일본 열도에 널려 있습니다. 특히 큐슈 지역에서 관련 지명을 찾아 보겠습니다.
1. 가야계(加耶系) 지명
가라는 가야계의 지명으로서 가라, 가야, 가랑, 가쿠라 등으로 이를 한자로 加羅, 可也, 韓, 唐, 加良, 加久羅 등으로 표시 합니다. 이는 가야계의 일본 열도 진출을 말해주는 것으로 대마도, 이키섬, 큐슈 북쪽과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즉 가라(南加羅)등의 가야계 지명들은 이와 관련된 지명입니다.
2. 고구려계(高句麗系) 지명
고구려계의 지명인 다라(多羅), 안라(安羅)에 대해 다라는 다례, 다라, 다나, 다랑 등으로 한자로 多禮, 多羅, 多那, 多良, 太良 으로 표시합니다. 침미다례(忱彌多禮)도 다라계 지명입니다. 관련국으로는 다라국/다라한국(多羅韓國)이라고도 하는 고구려인 협보가 건국한 다파라국(多婆那國)이 있습니다. 가야계로도 보는 안라(安羅)는 안라, 아라 등으로 한자로 安羅, 安楽, 安良, 荒 로 표시 합니다.
3. 신라계(新羅系) 지명
신라계 지명은 신라, 시라, 시라키, 시로 등으로 한자로 新羅, 皿, 白野, 白木, 白鳥 으로 표시합니다. 지명들은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관련된 신사(神社)는 큐슈 전역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 가야, 고구려, 신라 관련 지명들은 큐슈(九州)에서 무수히 많이 발견됩니다. 이는 야요이인(彌生人) 이라고 불리우는 삼한인(三韓人)들의 일본 열도 진출을 말해주는 것으로 그들이 정착한 대마도, 이키섬, 큐슈 지역이 결국 삼한인(三韓人)들의 땅이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내용들의 사료에도 기록되어 있는 데
自古 仇州對島 乃三韓分治之地也 本非倭人世居地 任那又分爲三加羅
옛날부터 큐슈(仇州)와 대마도는 삼한(三韓)이 나누어서 다스리던 땅이었지 왜인(倭人)들이 살던 땅은 아니었다. 임나(任那)는 다시 갈라져 삼가라(三加羅, 좌호가라, 인위가라, 계지가라)가 되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新羅國)因襲加羅·任那諸國滅之, 並三韓之故地也.
신라국이 가라와 임나의 모든 나라들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아울러(이곳은)삼한의 옛 땅이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新羅國」
태백일사, 태평환우기의 이런 기록들은 임나와 관련된 삼한(三韓)이라는 것은 큐슈와 대마도 일대 라는 것 말해주는 기록들입니다. 즉 신공황후가 정벌한 삼한 지역은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대마도나 큐슈 지역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신공황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신무(1대) 즉위를 서기 전 660년으로 설정해 초기 천황들이 부자연스럽게 장수하고, 신공황후기는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의 비미호(卑彌呼)로 생각되지만 120년 정도 연도를 끌어올렸다."
『일본사대사전(평범사)』
"한반도 부산 근처 김해(金海)에서 떠나온 사람들은 한국인 무녀 왕녀 신공이 이끄는 무속의 특권적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들 이였다.” 『부여기마민족과 왜, 존카터코벨』
"한국을 지배한 모든 왕조의 시조는 부여족이였으며 이들은 또한 일본문화에 크나큰 발전을 이룩한 한국 이주민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은자의 나라 조선(Corea, the Hermit Nation), 윌리엄 그리피스』
일본사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신공황후는 비미호(卑彌呼) 또는 가야(加耶)의 공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내 외의 여러 학자들의 주장과 이렇게 일본 열도도 수 많은 임나(任那)와 관련된 지명들이 널려 있음에도 이를 한반도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얼빠진 식민사학들, 아직도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30년 간 가야사를 연구 했는 데 일본 열도에 가야 관련 지명이 하나도 없었다고 거짓말하고 다니는 식민사학자들, 그리고 또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극우들이 만든 정한론(征韓論)의 논리가 학계의 정설이라고 임나가야설, 임나일본부설을 외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그들이 최소한의 학자로서 양심이 있다면 임나(任那)의 지명들을 한반도 남부에서 기를 쓰고 찾을 것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일본 열도의 지명들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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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pancalas 작성시간 21.12.20 다 당나라 땅이라는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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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동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12.21 사료의 근거를 대라니까 계속 엉뚱한 소리만 하시네요.. 제 질문에 대한 문헌 사료의 근거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근거를 제시하시 못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거짓말쟁이로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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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pancalas 작성시간 21.12.21 동이
제가 올린 글이나
댓글들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위 댓글은 지명이니
님도 찾을 수 잇씁니다
왜 그런 지명이 그쪽에 남아
있는지는 님이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동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12.21 pancalas 댓글 어디에 문헌 사료의 근거가 있습니까? 카페 운영진에 정식 항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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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pancalas 작성시간 21.12.21 동이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겁니다
항의를 하세요
제 주장이 옳튼 그르든
운영진이 판단 하시겠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제 글과 댓글을 보시고
더 연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