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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일본 초기 고분시대(古墳時代) 주인공의 정체는 가야 기마민족(騎馬民族)이다.

작성자동이|작성시간21.12.26|조회수356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일본 초기 고분시대(古墳時代) 주인공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일본 고대인들을 인류 계통학적으로 분류하면 조몬인 (縄文時代: 기원전 14,000 ~ 300년) , 야요이인(彌生時代: 기원전 300년~기원후 300년)으로 구분할수 있습니다. 이후에 일본 열도 일왕가와 직접 연결되는 고분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조몬인들에 대해서도 훗가이도 지역의 아이누 보다는 주류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한 남만계 이주민들이라는 것이 최근 유전자 연구 결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日 선사인 조몬인은 동남에서 왔을까 (daum.net)

그리고 조몬시대 이후에 일본열도로 이동한 야요이인(彌生人)의 정체는 벼농사 기술을 가지고 이동한 고조선인(古朝鮮人)입니다. 이는 일본 벼농사 유적으로 유명한 큐슈 북쪽 요시노가리 유적의 묘제 양식과 유물로서도 증명됩니다. 또한 야요이 집터 유적지의 형태도 충남 송국리형(松菊里形) 선사 유적지와 동일하다는 사실도 알려 졌습니다.

한반도에서 옹관표의 분포와 이동, 고조선 청동검과 요시노가리 청동검 비교

 

일본인들은 야요이인들이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가지고 이주한 한반도 도래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천황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고분시대(古墳時代)는 일본 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양식이라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홍보합니다.

아래는 일본 큐슈 남부 미야자키현의 사이토바루고분군 및 주변 고분들과 이를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어판 홍보 영상입니다. 또한 이 고분들의 주인공을 일본 천황가의 시조인 천손 니니기노미코토(天津彦彦火瓊瓊杵尊, 邇邇芸命, ににぎのみこと, 니니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https://youtu.be/Aik9qOtf2KQ

또한 더 나아가 고분시대의 '왜(倭)' 가 강력한 국가라면서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는 임나 가야설, 임나일본부설의 논리까지 펼치며 이를 현재 국사 교과서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들이 역사적인 사실 일까요??

먼저 그렇게 강력하다는 '왜(倭)'의 모습을 기록한 양직공도의 모습과 진서 동이열전 사료의 내용을 보면 위의 주장과는 전혀 다릅니다.

양직공도(梁職貢圖)의 ‘왜’ 사신의 모습과 이를 모사한 우측 당염립본왕회도(唐閻立本王會圖), 남방계 조몬인으로 추정

其男子衣以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綴. 婦人衣如單被, 穿其中央以貫頭, 而皆被髮徒跣. 其地溫暖, 俗種禾稻紵麻而蠶桑織績.

남자들은 가로 폭이 긴 옷을 입었는데, 좌우로 서로 이어서 묶기만 하고 간략히 해서 봉제선이 없었다. 여자들은 홑옷[單被]과 같은 것을 입었는데, 그 중앙에 구멍을 내서 머리를 집어넣어 입는다. 남녀 모두 산발하고 맨발로 돌아다닌다.

『晉書』 卷97 「東夷列傳」 第67 사이 왜(倭)

과연 이 사료에 기록된 '왜(倭)'가 바로 일본 열도를 지배한 고분시대의 주인공들 일까요?

또한 고분시대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니니기노미코토 천손 강림에 대해 고사기(古事記, こじき)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此地者 向韓國 有真之道通笠紗之御前 又此地者 朝日之直刺國 夕日之日照國也 故 此地甚吉地也

니니기는 "이 땅은 가라쿠니(韓国,가라국, 가야)을 향하며, 가사사(笠沙)의 곶까지 원래 있던 길이 있어서, 아침해가 잘 비치는 나라, 석양이 잘 비치는 나라이다. 그래서 이곳은 매우 좋은 땅이다.

『고사기(古事記, こじき)』

天降坐于竺紫日向之高千穗之久士布流多氣

니니기가 강림한 곳이 축자(竺紫) 일향(日向)의 다카치오(高千穗:고천수)의 구지후루다케(久士布流多氣)이다.

『고사기(古事記, こじき)』

일본 고분시대의 선조 니니기노미코토는 가라쿠니(韓国,가라국,가야)를 기억하여, 큐슈 남부 지역의 구지후루다케(久士布流多氣,구지봉)에 정착한 가야인입니다.

그렇다면 고분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그 묘제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통해 '왜'의 실체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1) 전방후원분의 기원

민족학계에서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홍산문화의 원방각 묘제에서 기원하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강단 학계에서는 홍산문화는 우리 것이 아니다 라는 주장으로 부인하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단학자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일본의 사학자들은 전방후원분의 기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 까요?

일본의 학자들은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에서 전방후방분(前方後方墳)이 만들어지고 이후에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으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에서 기원한 고유의 매장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 열도에서는 나타나는 방형주구묘는 야요이(彌生時代: 기원전 300년~기원후 300년)의 중기 이후 부터에나 나타는 묘제 방식입니다.

그런데 1996년 충남 보령에서 야요이 시대 보다도 더 빠른 기원전 4세기의 방형주구묘(돌널무넘)가 발견되고 1999년 전남 나주 복암리에서 그 중간 형태의 원방각(옹관묘) 형태의 중간 방식의 묘제가 발견되어 전방후원묘의 묘제가 바로 한반도에서 기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물들의 증거에도 아직도 학계에서는 충남 보령시의 방형주구묘가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전방후원분의 원형이라는 주장은 일절 언급이 없으며, 오히려 5~6세기 영산강 지역에서 나타나는 전방후원분으로 근거로 왜가 한반도에 진출해 지배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 유적들을 통해서도 이는 사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연대나 시기적으로 볼때 한반도의 방형주구묘, 원방각의 묘제 양식이 아요이시대, 고분시대를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어 졌음을 알수 있으며, 특히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군은 일본 천황가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일본 열도의 유물과 가야 유물

이번에는 일본 고분시대의 유물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분의 유물에서는 철갑옷, 마구, 토기, 파형동기, 장신구, 환두대도 등 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고분시대의 유물들은 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거의 동일합니다. 이는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동일한 유물이 많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식민강단사학자들은 이를 가야 와의 단순 문화 교류라고 치부 합니다. 과연 그들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고분 유적의 유물들이 모두 가야에서 수입해 온 것들 만 있는 것이라면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학설과 주장일까요?

3) 가야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의 일본 열도 이주

일본 고분 시대 주인공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유적이 바로 큐슈 후쿠오카 다케하라(竹原) 채색 벽화의 내용입니다. 그 고분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들은 배에서 말을 싣고 일본 열도로 이동한 기마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사료에는 일본 열도에는 '소(牛)'도 '말(馬)'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이 없고 철기도 없는 '왜'가 이렇게 강력한 철기와 기마유구가 있어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 또한 한반도 남부까지 지배 할 수 있을 까요?

其地無牛馬虎豹羊鵲. 兵用矛·盾·木弓.

그 땅에는 소, 말,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가 없다. 무기로는 창, 방패 그리고 목궁(木弓)을 사용한다.

『삼국지』 「 위서 동이전 왜(倭)」

반면에 '가야'가 속한 변진(弁辰)은 소와 말을 타고 철이 생산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乘駕牛馬...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소와 말을 탄다...나라에서는 철(鐵)이 생산되는데, 韓·濊·倭人들이 모두 와서 사 간다.

『삼국지』 「 위서 동이전 변진(弁辰)」

즉 이 기록들은 고분시대의 주인공들은 일본 열도에 살던 농경민들이 아니라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이동한 기마민족(騎馬民族)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흉노 김일제의 후손들이 세운 신라와 가야에서 유례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秺侯祭天之胤 傳七葉 以〇〇焉. 十五代祖星漢王 降質圓穹.

투후(秺侯) (김일제)는 제천(祭天)의 후손으로 7대를 전하여, 15대 선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신라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遠祖諱日磾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

먼 조상 이름은 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西漢)에 투항하시어 무제(武帝) 아래서 벼슬하셨다.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

則南加耶始祖首露, 與新羅同姓也.

남가야(南加耶)의 시조 수로와 (신라의) 유신은 성(姓)이 같은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四十一 「列傳」 第一 金庾信

일본 천황가로 연결되는 고분시대의 주인공들은 바로 일본 열도로 진출한 우리의 선조 가야인들 이고 이것이 바로 역사의 진실입니다. 이후 백제계가 천황가를 주도하게 되어 왕권이 바뀌게 됩니다.

아직도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과 그 학설을 그대로 추종하는 강단사학자들에 의해 가야사의 역사는 축소, 왜곡되고 난도질 당하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이 역사를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역사의 진실이 밝혀 질때 만이 올바른 한·일관계가 만들어 집니다.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가을 학술 대회 발표 내용의 일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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