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여러 정통 사료에 전해지는 환국(桓囯, 桓國)에 대한 기록들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보통 환국이라고 하면 환단고기에나 등장하는 역사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학계에서 인정하는 사료와 여러 고대의 기록들에서 환국(桓囯)과 관련된 내용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보고 환국이 실제하는 역사인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囯, 昔有桓國) 판본의 기록
전해지는 삼국유사의 여러 판본에는 석유환국(昔有桓囯)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환국(桓囯)이라고 되어 있는데, 일연(一然) 선사는 이를 위제석야((謂帝釋也)로 잘못된 주석을 넣어 마치 불교의 제석환인(帝釋桓因)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원본에는 환국(桓囯)이라고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는 이를 대놓고 조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경대본, 약천집, 수산집의 다른 기록에서도 昔有桓國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중종 임신본(1512년)에는 '囯'으로 되어 있는 데 임신본보다 이른 조선 태조 3년(1394)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른본 ≪삼국유사≫에 '𡆮'으로 되어 있어 또 논란이 됩니다.
다양한 삼국유사 본에 기록된 석유환국의 문헌 기록 비교
그러나 환국의 국(囯)자를 인(因)자로 조작한 기록은 있어도 삼국유사 원본에 환인(桓因)으로 기록되어 있는 판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삼국유사 원본을 보면 桓囯, 桓𡆮, 桓國의 3가지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𡆮가 인(因)자의 오기라는 강단사학의 주장에 대해 거란문자의 금석문을 통해 𡆮가 나라국(国) 으로 기록한 부분이 확인되었습니다.
나복성의 석독: □士을 国으로 판독 출처: 청격이태, 유봉저, 진내웅, 우보린, 형복례 공저, <거란소자연구> (북경: 중국사회과학출판사, 1985), p.36.를 근거로 이강식 교수는 <환국(桓□士)의 국(□士)이 거란소자에도 나오는 국(□士)이며 그 뜻은 국(囯)으로서 환국(桓□士)은 환국(桓囯)이라는 변증>의 논문(세계환단학회, 2017)에서 거란문자의 금석문에 (士+口)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한 결과 1. (士+口)이 囯, 國임을 논증하고 2. (士+口)의 뜻이 囯보다 좋은 의미(天, 大)로 쓰였으며 3. (士+口)이라는 글자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고, 고려와 거란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논하였다.
이런 여러 증거들을 통해 원래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은 석유환국(昔有桓囯) 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2. 조선 왕조 실록에 기록된 안함로, 원동중 삼성기(安含老 元董仲 三聖記) 서명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의 기록인 안함로, 원동중의 삼성기(三聖記)의 책명이 조선왕조 실록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諭八道觀察使曰: "《古朝鮮秘詞》、《大辯說》、《朝代記》、《周南逸士記》、《誌公記》、《表訓三聖密記》、《安含老元董仲三聖記》、《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文泰山ㆍ王居仁ㆍ薛業等三人記錄、《修撰企所》一百餘卷、《動天錄》、《磨蝨錄》、《通天錄》、《壺中錄》、《地華錄》、道詵 《漢都讖記》等文書, 不宜藏於私處, 如有藏者, 許令進上, 以自願書冊回賜, 其廣諭公私及寺社。"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3번째기사 의 내용으로 볼때 환국(桓囯)의 역사 내용을 기록한 안함노 원동중의 삼성기는 당시에 실존한 책임을 알수 있습니다.
3. 진서(晉書)와 광개토태왕릉비(廣開土太王碑)에 기록된 12 환국(桓囯)의 국명 기록
원동중의 삼성기(하편) 에는 12환국의 국명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分言則卑離國, 養雲國, 寇莫汗國, 勾茶川國, 一羣國, 虞婁國一云畢那國, 客賢汗國, 勾牟額國, 賣勾餘國一云稷臼多國, 斯納阿國, 鮮稗國一稱豕韋國或云通古斯國, 須密爾國 合十二國也.
이 환국은 다시 여러나라로 구성되었는데, 그이름은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일명 필나국),객현한국,구모액국, 매구여국(일명직구다국), 사납아국, 선패국(일명 시위국 또는 통고사국), 수밀이국으로 합하여 12국이다.
『원동중 삼성기(하)』
그런데 실제 『진서晉書』 와 『광개토대왕 비廣開土太王碑』 기록에 실제 해당 국가의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裨離國 在肅愼西北, 馬行可二百日, 領戶二萬. 養雲國去裨離馬行又五十日, 領戶二萬. 寇莫汗國去養雲國又百日行, 領戶五萬餘. 一羣國去莫汗又百五十日, 計去肅愼五萬餘里. 其風俗土壤並未詳.
비리국(裨離國)은 숙신(肅愼)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말을 타고 이백여 일이면 당도할 수 있다. 거느리고 있는 호(戶)는 이만(二萬)이다. 양운국(養雲國)은 비리국에서 말을 타고 50일 정도 더 가면 당도하며 거느리고 있는 호(戶)는 이만(二萬)이다. 구막한국(寇莫汗國) 은 양운국(養雲國)에서 다시 100일 정도로 더 가면 당도하며 거느린 호는 오만(五萬) 정도이다. 일군국(一群國)은 막한(莫汗)에서 다시 150일 정도 더 가면 당도하며 숙신으로부터는 오만여 리 정도 된다. 이들의 풍속과 지리에 대해서는 모두 자세히 알 수 없다.
『진서晉書』 卷97 열전 第67 사이
守墓人 烟戶 <賣句余民國(매구여민국)> 烟二 看烟三 東海賈國 烟三 看烟五 敦城( ) 四家盡爲看烟 ( )城一家 爲看烟碑利城 二家爲國 烟 平穰城 民國 烟一 看烟十( )連二家爲看烟 住 婁人國 烟一 看烟( )二梁谷 二家爲看烟 梁城 二家爲看烟 安連 卄二家 爲看烟 改谷 三家爲看烟 新城三 家爲看烟南蘇城 一家爲國烟 新來 韓穢 沙水城國烟一 看烟一 牟婁城 二家爲看烟 豆比鴨 岑韓五家爲看( )<句牟客頭(구모액두)>二家爲看烟永底韓一家爲看烟舍조城韓穢國烟三看烟卄一古家耶羅城 一家爲看烟炅古城國烟一看烟三<客賢韓(격현한)>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
賣句余民國(매구여민국)은 매구여국(賣句餘國)으로 句牟客頭(구모액두)는 구모액국(句牟額國)으로 客賢韓(객현한)은 객현한국(客賢汗國)으로 추정됩니다.
즉 12환국 중에 7개의 국명이 실제 문헌 기록에서 존재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있고 또 고조선을 계승한 조선이 있 듯이 이런 국명들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12환국 중에 가장 서쪽에 위치한 수메르와 우르국도 실제로 전해지는 국명입니다.
1) 수메르 문명과의 연계성
서양 문화의 시원인 수메르와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하는 고대 왕조 국가입니다.
수메르(Sumer) 초기 왕조 시기 — 기원전 2500 - 2350년
아카드(Akkad) 왕조(사르곤 시기) – 기원전 2350 – 2150년
우르(Ur) 제3왕조 시기 — 기원전 2100 – 2000년
고-바벨 시기 - 기원전 1900 – 1600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성서학, 고대 셈어, 이집트학, 앗시리아학 등을 공부했고, 수메르어 문법으로 박사학위를 한 수메르어 전문가 조철수 교수에 의하면 수메르어는 한국어처럼 교착어이며, 아울러 전치사가 아닌 조사가 발달해 있다. 동시에 수메르어는 한국어처럼 주어+목적어+동사(SOV) 순서를 갖는다. "지구상에 있는 그 어느 언어보다 수메르어하고 가장 가까운 언어는 한국어이다"라고 조철수 교수는 주장했습니다. 수메르어의 문법,여러가지 문장구조와 한국어를 겸하여서 수사 연구를 해놓았습니다. 불완전명사 ~ 여기, 저기 할 때의 ~기, ~것, ~따름, ~데 등이 수메르어와 똑같습니다. 완전명사는 어지간히 다른나라도 비슷할 수 있는데 불완전명사까지 똑같습니다.
또한 정연종은 수메르어의 많은 부분이 한국어 단어와 유사한 부분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수메르 언어는 한국어와 같은 어근에 접사가 붙는 교착어일 뿐 아니라 60진법을 사용하였고 상투를 틀고 씨름을 즐기며 동이족과 같은 편두와 순장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 집니다.
에리두는 우르(Ur)의 남서쪽으로 7마일 떨어진 고대도시, 수메르 전설에 의하면 에리두는 후에 아카드 인들에 의해 에아로 알려진 수메르 신 엔키에 의해 설립되었다.
『위키백과 에리두』
크레이머S. N. Kramer 박사가 수메르 점토판 해석을 통해 "그들은 안산(천산)을 넘어서 왔다."는 기록을 찾았고 이는 그들이 동방의 지역에서 이동 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우르국(Ur)과 유대인의 선조 아브라함
그리고 환국과 유대인과 관련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연결고리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첫번째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라고 여겨지는 '아브라함' 은 우르국(Ur) 출신임은 이미 기록을 통해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르(아랍어: أور, 히브리어: אור כשדים)는 메소포타미아지역 남부에 수메르문명 시기에 세워진 도시이다.
『위키백과 우르』
Ur Kasdim (Hebrew: אוּר כַּשְׂדִּים ʾūr Kaśdīm), commonly translated as Ur of the Chaldeans, is a city mentioned in the Hebrew Bible as the birthplace of the Israelite and Ishmaelite patriarch Abraham.
일반적으로 칼데아인의 우르로 번역되는 Ur Kasdim은 이스라엘과 이스마엘 족장 아브라함의 출생지로 히브리어 성경에 언급된 도시이다.
『Ur of the Chaldees (우르 칼데아) - 위키피디아』
Ur of the Chaldees - Wikipedia
아브람(당시의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버지인 데라의 집인 갈대아(칼데아) 우르를 떠나 약 909Km가 떨어진 가나안으로 가게 된다.
『개역한글판/창세기 12장』
동이족이 만든 한자의 船(배 선)을 보면 舟(배 주) + 八(여덟 팔) + 口(입 구/사람을 의미)를 보면 노아의 대홍수시기의 살아 남은 8명의 기록으로 이는 성경의 창세기 7장13절에 내용과도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예언하신 말씀대로 150주야에 걸쳐 비가 쏟아졌고 대홍수가 나서 온통 물바다가 되어 사람으로는 노아의 8식구 외에는 살아난 자가 없었다."
즉 이런 문헌 기록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동이족이 고대로 부터 연결되어 있음을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4. 중국 문헌에 실제 존재하는 환국(桓囯) 황제들의 이름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 於是桓因亦以監羣居于天界掊石發火, 始敎熟食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氏 亦稱安巴堅也. 傳七世年代不可考也.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보내시니, 이때 환인께서 만백성의 우두머리監羣가 되어 천계天界(천산 동방의 환국)에 거주하며 돌을 부딪쳐서 불을 피워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니 이 나라를 환국桓國(밝은나라)이라 했다. 이 환국을 다스리신 분을 ‘천제 환인씨’라 부르고,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불렀다. 환국은 7세를 전했으나, 그 연대는 자세히 살필 수 없다.
『안함로 삼성기(상)』
傳赫胥桓仁. 古是利桓仁, 朱于襄桓仁, 釋提任桓仁, 邱乙利桓仁 至智爲利桓仁 或曰檀仁.
2세 혁서(赫胥) 환인,
3세 고시리 환인,
4세 주우양(朱于襄) 환인,
5세 석제임 환인,
6세 구을리 환인을 이어
7세 지위리 환인에 이르렀는데 환인을 단인이라고도한다.
『원동중 삼성기(하)』
안파견, 혁서, 주우양씨(주양씨)는 3명의 환인은 중국의 기록에도 나타납니다.
먼저 요사습유(遼史拾遺) 기록에는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스스로 초대 환인 안파견(安巴堅)으로 칭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는 요나라가 고대 환인씨의 이름을 쓴다는 것은 이를 계승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太祖大聖大明神烈天皇帝姓耶律氏 諱億字安巴堅歐陽修歸田錄曰契丹安巴堅
태조 대성대명신열천황제의 성씨는 야율씨이다. 휘는 억이며 자는 안파견(安巴堅)이다. 구양수의 귀전록에서 이르기를 거란 안파견이라 한다.
『欽定四庫全書(흠정사고전서) 遼史拾遺 (四庫全書本) 요사습유 (사고전서 본)』
이 처럼 옛 제왕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함이며, 해모수를 단군으로 인식하고, 주몽을 단군의 아들로 칭하는 것과 같이 고대 국가의 제왕을 계승한다는 의미로도 해석 할 수 있습니다.
壇君記云 “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 有産子名曰夫婁.” 今拠此記, 則解慕漱私河伯之女而後産朱蒙.
《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檀君)이 서하(西河)의 하백(河伯)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서 부루(夫婁, 해모수의 아들도 부루)라고 이름했다"고 했다. 지금 이 기록을 상고해 보면 해모수(解慕漱)가 하백(河伯)의 딸과 사사로이 통해서 주몽(朱蒙)을 낳았다고 했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구려조
甲申立, 理十一八. 姓髙名朱蒙. 一作鄒蒙. 壇君之子.
갑신년에 즉위하여 팔년 다스렸고, 성은 고(高)씨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추몽(鄒蒙)라고도 한다. 단군(壇君)의 아들이다.
『삼국유사』 왕력편
또한 장자의 기록을 통해 중국 전국시대의 기록으로 혁서(赫胥) 환인이 존재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馬蹄 夫赫胥氏之時,民居不知所為,行不知所之,含哺而熙,鼓腹而遊,民能以此矣
"상고의 혁서(赫胥) 제왕시대에 백성들은 편안하게 생활하였다. 먹을 것을 입에 물고 즐기고, 배불리 먹고는 근심 걱정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장자莊子』 馬蹄편
중국 진나라때의 기록인 여씨춘추의 내용을 보면 황제 헌원 이전의 인물 주양씨(주우양朱于襄 환인)가 나옵니다.
昔古朱襄氏之治天下也
옛고에 주양씨가 천하를 다스렸다.
『여씨춘추呂氏春秋』
5. 독립운동가들의 환국(桓國)에 대한 인식
독립운동가들의 환국(桓國)에 대한 역사 인식은 어떠했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 23주년 3.1절 선언문에서는 우리 민족은 환국에서 부터 창립되었다고 하고 있으며
한국독립당의 대표이자, 삼균주의”를 만들어 오늘날 헌법의 기초를 만든 임시정부 조소앙 선생은 삼국유사의 첫 꼭대기에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하였읍니다.”라고 했으며 환국(桓國)과 한국(韓國)은 한울, 크다는 뜻으로 같은 뜻(역자의 부동)임을 알렸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소속 주요 독립투사들은 우리역사가 단군도 아니고 그 위 신시 배달국도 아닌, 환인의 환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홍범도, 오동진 장군은 환국의 역사가 기록된 환단고기 출판에 비용을 지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독립운동가들은 환국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 되는 실제하는 역사로 인식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일제에 독립한지 70여년이 흘렀으나 이런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식민통치한 일제 식민사학, 반민족 강단사학의 역사를 따르고 있는 것이 현재 학계의 현실입니다.
이런 많은 증거들로 볼때 환국(桓國)이 누군가 한명에 의해 창작된 국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