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사료에 나타난 동이(東夷)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중국은 한족 중심의 화하(華夏) 역사관에서 벗어나 동이(東夷)의 역사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중국의 역사와 문화 영역으로 동이를 적극적으로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동이의 중심지인 산동성 지역에 동이문화박물관을 만들어 공식적으로 동이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임을 적극 홍보하고 있죠.
중국의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은 중국 대륙에 있는 동이(東夷)는 우리 한민족을 칭하는 '동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이런 중국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시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중화삼조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고대 인물들을 살펴보면 모두 동이(東夷)계 인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우리는 아무련 관련이 없는 것 일까요?
이번에는 동이(東夷)에 대한 사료와 역사적 내용들에 대해 다루어 볼까 합니다.
1. 동이(東夷) 개념과 이동의 기록
한자의 의미를 풀어 기록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동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唯東夷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孔子曰:「道不行, 欲之九夷, 乘桴浮於海. 有以也. 去芉切」.
동이(東夷)는 대(大)가 의부이니, 대인(大人)이라는 의미이다. 이(夷)의 습속은 어진데 어진 자는 장수하므로 죽지 않는 군자(君子)가 있는 나라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띄워서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의 나라에 가고자 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第四上」
東方有君子之國.
동방(東方)에는 군자(君子)의 나라가 있다.
『회남자(淮南子)』「卷四」 墜形訓,
동이(東夷)는 주(周)나라 때 생긴 개념으로 주나라 동쪽 해안가의 이족(夷)을 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원래 뜻은 동방의 큰 사람, 군자를 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동쪽의 오랑캐라는 비하 의미로 변질되었죠. 이는 전국시대, 진한 교체시기 이후에 화(華)와 이(夷)가 서로 분리되고 만리장성으로 경계가 나뉘어지면서 점점 동쪽의 오랑캐라는 비칭의 의미가 된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전국시대의 사료 기록을 보면 동이(東夷)와 관련된 고죽(孤竹), 산융(山戎), 영지(令支),예맥(穢貉), 조선(朝鮮) 등을 계속 공격하여 멸망시키거나 중원 밖으로 밀어 내는 기록들이 등장합니다.
제나라는 고죽, 산융, 영지를 공격하여 쫒아 내는 기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北至於孤竹·山戎·穢貉
(제환공이)북쪽으로는 고죽·산융·예맥에 이르렀으며...
『관자(管子)』
北伐山戎, 制泠支, 斬孤竹, 而九夷始聽, 海濱諸侯莫不來服.
(제환공이)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정벌하여 영지(泠支)를 제압하고 고죽(孤竹)의 군주를 참하자 구이(九夷)가 비로소 명령을 따랐다.
『관자(管子)』
산융과 영지, 고죽을 제합하자 구이(九夷)가 비로소 명령을 따랐다는 것은 이들이 다 동이족(族)의 일파라는 것입니다.
孔鼂云: 山戎亦東北夷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산융(山戎)은 동북쪽 이(夷)이다.
『일주서(逸周書)』
孔鼂云: 孤竹, 東北狄.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고죽(孤竹)은 동북쪽 적(狄)이다.
『일주서(逸周書)』
孔鼂云: 不令支, 皆東北夷.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불령지(不令支)는 모두 동북쪽 이(夷)이다.
『일주서(逸周書)』
사료에서는 이들을 동쪽, 동북쪽에 있는 적(狄) 또는 이(夷)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명수문비사(皇明修文備史)』의 「구변고(九邊考)」는 고죽국(孤竹國)을 조선(朝鮮)과 함께 동이(東夷)족’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비족 모용은 비문에도 고죽이 조선을 계승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산융(山戎), 영지(令支), 고죽(孤竹) 등이 모두 동이의 국가인 것 입니다.
朝鮮建國孤竹爲君
조선(朝鮮)이 건국되고 고죽(孤竹)이 임금(君)이 되었다.
『두로공신도비(豆盧公神道碑)』 (모용은 비문)
服虔云 : 山戎蓋今鮮卑 按, 胡廣云 : 「鮮卑, 東胡別種.」
복건이 말하길 산융(山戎)은 모두 지금의 선비(鮮卑)이다. 호광이 말하길 선비(鮮卑)는 동호(東胡)의 별종(別種)이다.
『사기史記』 「흉노열전匈奴列傳」
또한 연나라는 동호(조선)를 공격하여 중원 밖으로 쫒아내고 있습니다.
燕北有東胡 ... 其後燕有賢將秦開,為質於胡,胡甚信之。歸而襲破走東胡,東胡卻千餘里
연燕의 북쪽에는 동호가 있었는데... 그 이후에 연나라의 현명한 장수 진개(秦開)가 있었다. 호가 그를 인질(질)로 삼았으나 호가 그를 심히(심) 신뢰하였다. 돌려보냈으나 엄습하며(습) 물리쳐서(파) 동호를 달아나게 했다. 동호는 천리를 퇴각하였다.
『사기史記』 「흉노열전匈奴列傳」
燕乃遣將秦開 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연燕은 장군 진개(秦開)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위략魏略』
이런 기록들은 전국시대에 동이족들을 공격하여 동쪽으로 계속 밀어내는 기록들입니다. 그리고 진나라 시기에 만리장성을 쌓아 화(華)와 이(夷)를 장성으로 경계하여 구분하게 된 것입니다. 즉 원래 동이족의 시작은 중국 대륙 동쪽에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기록에도 학계에서는 중원에 있는 동이(東夷)와 조선(朝鮮)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남자(淮南子)와 양서(梁書)에서는 조선(朝鮮)이 바로 동이(東夷)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朝鮮, 東夷. 東方有大人之國也.
조선(朝鮮)은 동이(東夷)이다. 동방에는 대인의 나라가 있다.”라고 하였다.
『회남자(淮南子)』
東夷之國, 朝鮮爲大, 得箕子之化, 其器物猶有禮樂云.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 중에서 조선(朝鮮)이 제일 강대하였는데, 기자(箕子)의 교화를 입어 그 文物이 禮樂에 합당하였다고 한다.
『양서(梁書)』「동이열전(東夷列傳)」
회남자는 조선(朝鮮)이 동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서에는 동이의 여러 나라중에 조선(朝鮮)이 제일 강대하다고 하면서 또한 조선(朝鮮)을 동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箕子)는 은나라~주나라 시기의 인물로서 당시 동이(東夷)의 위치에 대한 개념은 주나라의 동쪽의 산동성과 안휘성, 절강성 등의 중국 동쪽 해안쪽에 거주하는 9개의 동이족 구이(九夷)를 칭하는 말이였습니다. 즉 주나라의 동쪽에 있는 동이(東夷) 중에 가장 강대한 나라가 조선, 즉 단군조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학계는 이런 분명한 사료들의 기록에도 중국 대륙의 '동이'와 우리 민족을 칭하는 '동이'는 전혀 관련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이(九夷) 중에 조선(朝鮮)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2. 구이(九夷) 중에 우이(嵎夷)가 단군조선(檀君朝鮮)이다.
사료에는 구이(九夷)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曰畎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故孔子欲居九夷也.
이夷에는 아홉 종류가 있으니, 견이(畎夷)·우이(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도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그런데 우이(于夷, 嵎夷)가 바로 단군조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조선을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로 해석했는데, 사기의 여러 주석서를 보면 '우이'가 바로 태양이 뜨는 곳인 양명지곡(陽明之谷)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孔安國曰 : 東表之地稱嵎夷. 日出於暘谷.
공안국(孔安國)이 말했다. “동쪽 끝을 우이(嵎夷)라고 한다. 태양은 양곡(暘谷)에서 떠오른다.
『사기집해(史記集解))』「오제본기」
堯命羲仲理東方靑州嵎夷之地, 日所出處, 名曰陽明之谷.
요(堯)가 희중에게 명하여 동방의 청주 우이(嵎夷)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으니, 태양이 뜨는 곳을 양명지곡(陽明之谷)이라 불렀다.
『사기정의(史記正義)』「오제본기」
그리고 중국의 백도백과에서는 우이가 교동반도(胶东半岛:산동성 지역) 동부의 청주(青州) 지역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嵎夷文化起源于上古尧帝时期活动地域在古代青州东部滨海地区,即今胶东半岛东部地区。
『중국 백도백과(百度百科)』「우이(嵎夷)」
우이(嵎夷)는 산동성 지역에 있던 동이족으로서 이는 단군조선의 강역이 산동성 청주(青州)지역까지 미쳤음을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양서(梁書) 동이열전에 기록된 그 아홉 동이족 구이(九夷) 중에 가장 강성한 국가가 바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인 것입니다.
그리고 동이는 고대로 부터 우리 민족을 칭하는 말이였습니다.
3. 사료에 기록된 동이(東夷)는 우리 민족을 말한다.
그렇다면 사료에 기록된 동이에 대한 여러 내용들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非濱之東, 夷·穢之鄕, 高注: 東方曰夷, 穢, 夷國名.
비빈(非濱)의 동쪽은 이(夷)와 예(穢)의 고향으로 고유(高誘)가 말하였다. "동쪽을 이(夷)라고 한다. 예(穢)는 이(夷)의 나라 이름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卷第二十」恃君覽第八 恃君
=> 예를 동이로 칭함
孔鼂云: 穢, 韓穢, 東夷別種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예(穢)는 한예(韓穢)로 동이(東夷)의 별종(別種)이다"
『일주서(逸周書)』「卷第七」王會解 第五十九
=> 예를 동이로 칭함
眞番·臨屯 【索隱】東夷小國, 後以爲郡
진번(眞番)·임둔(臨屯) 응소가 말하길 동이의 소국이다. 이후에 군으로 삼았다.
『사기(史記)』「조선열전(朝鮮列傳)」 고조선(古朝鮮)
=> 고조선의 제후국인 진번과 임둔을 동이로 칭함
漢梗於北狄, 隋不能服東夷
한(漢)은 북쪽 오랑캐[北狄]에 막히었고, 수(隋)는 동이(東夷)를 정복하지 못했으며...
『원사(元史)』「卷58」 志10 地理1
=> 고구려를 동이로 칭함
〈元豊〉六年, 徽卒, 在位三十八年, 治尚仁恕, 為東夷良主
〈원풍(元豊)〉 6년(1083)에 〈고려왕〉 왕휘(王徽, 문종)가 죽었는데, 재위는 38년이고, 어질고 너그럽게 다스려 동이(東夷)의 훌륭한 임금이다.
『송사(宋史)』「卷487」 列傳246
=> 고려를 동이로 칭함
禮部移咨曰, “欽奉聖旨, ‘高麗隔海限江, 風殊俗異, 以夷夏論之, 本等東夷, 實非中國所治.
“황제의 명령을 받들건대, ‘고려는 〈명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으로 경계를 삼아, 풍습이 다르고 습속도 다르다. 중국과 오랑캐로써 말을 하자면, 본래 그들은 동이(東夷)로서 실제로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고려사(高麗史)』「卷一百三十六」 列傳 卷第四十九
=>고려를 동이로 칭함
東夷之號, 惟朝鮮之稱最美, 且其來遠矣. 宜更其國號曰朝鮮.
동이(東夷)의 이름은 오직 조선(朝鮮)이라는 칭호가 가장 아름답고 또한 그 유래도 오래되었다. 마땅히 그 국호를 고쳐 조선(朝鮮)이라고 하라.
『명실록(明實錄)』「太祖高皇帝實錄」卷223
=>조선을 동이로 칭함
立國號曰朝鮮。 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濊與貊, 皆檀君之理。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 「154권」, 지리지 평안도 평양부
이런 기록들을 통해서도 동이(東夷)는 예로 부터 우리민족을 이루는 국가들을 칭하는 말이였습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동이(東夷)의 가장 강성한 중심세력이며 이 이후에 예맥,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옥저등의 여러 열국들로 나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황명수문비사(皇明修文備史)』에는 동이(東夷)의 국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東夷郎九夷之地 所謂 献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是也
동이는 곧 구이의 땅이다. 일컬기를 헌이, 우이, 방이, 황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 이다.
後爲 朝鮮, 高句麗, 女眞, 挹婁, 新羅, 百濟, 伏餘, 東胡, 烏桓, 鮮卑, 渤海, 沃沮, 三韓, 濊貊
후에 조선, 고구려, 여진, 읍루, 신라, 백제, 부여, 동호, 오환, 선비, 말갈, 옥저, 삼한, 예맥,
日霫, 安定, 樂浪, 玄菟, 眞番, 臨屯, 帶方, 肅慎, 靺鞨, 勿吉, 高麗, 北貉, 契丹, 孤竹, 等國
일습, 안정, 낙랑, 현도, 진번, 임둔, 대방, 숙신, 말갈, 물길, 고려, 북맥, 거란, 고죽 등의 나라이다.
『황명수문비사(皇明修文備史)』 (명나라 시기 편찬 - 북경대 도서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