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고리국과 마한의 강역, 졸본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고리국에 대한 기록은 논형의 동명왕 설화에서 기록에 등장하는 데요.
논형에서는 알에서 태어난 동명이 고리국왕의 핏박으로 인해 탈출 남하하여 졸본으로 이동하여 부여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동명왕이 세운 졸본부여 입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도 동명왕의 졸본부여를 계승한 소서노의 부친(부여왕)을 계승한 것으로 사료에 나옵니다.
또한 고리국(槀離國)을 사서에 탁리국(橐離國), 색리국(索離國 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槀(고) 자를 橐(탁), 索(색) 으로 오기 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 고구려의 명칭 유래
동명왕(고리국 ->졸본) - 부여왕(소서노 부친) - 주몽(동부여 -> 졸본 -> 고구려) 로 계보가 이어 지는 데요.
고리->구려->(고)구려 북한 학계에서는 서기 전 227년 이미 고구려(고리국)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리국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고리국에서 고구려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 했다는 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와 고려가 아니라 고구리와 고리로 불러야 한다” : 주간동아 (donga.com)
즉 고리가 원형이며 이 이후에 고구려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 마한의 강역
두번째로 고리국을 통해 마한의 강역을 알 수 있는 데요. 마한의 54개국에 고리국(古離國)이 등장합니다. 강단사학계는
이는 동명의 고리국이 아니고,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하는 다른 국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주장에 대해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마한을 한반도 남부로 보고 대충 위치를 비정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리국(古離國)은 고리국(槀離國)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당시 이두식 표기가 성행했던 시기이므로
다양한 한자로 표기 했다고 볼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고
두번째로 신라의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은 "마한은 고구려麗이고, 진한(辰韓)은 신라(新羅)다."<삼국사기三國史記> 본기本紀 한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고리국을 통해 마한이 강단사학 처럼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대륙에 까지 걸쳐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3. 고리국과 졸본의 위치
논형과 삼국유사의 동명왕 설화에 의하면 동명왕이 고리국에서 남쪽으로 도망쳐 엄호수를 지나 졸본에 이르러 부여를 세웠다고 나옵니다.
고리국의 위치에 대해 현재 강단 학계는 대해 오늘날 만주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눈강의 동쪽, 쑹화강의 북쪽에 있는 평원 지대로 보는 (오늘날 중국 헤이룽장성의 하얼빈 시 부근) 로 보는데 이는 졸본을 환인 오녀산성을 볼때의 기준입니다. 하지만 문헌 사료적으로 볼때 환인을 졸본으로 비정한 사료가 없다는 것이 이 주장의 문제입니다.
또 다른 의견 리지린 박사의 고조선 연구에 나타는 난하와 시라무렌강 부근으로 비정하는 주장이 있는데, 고구려가 난하 부근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설이 더욱 유력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현도군에 고구려현이 있는데 고구려가 성립되기 전에 부터 있었던 명칭이며, 이것이 고리국의 원형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현재 문헌에서 졸본의 위치를 의무려산 부근으로 보고 있고 이 보다 더 서쪽에서 위치한 현도군의 고구려현이 고리국으로 후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입장은 오순제 박사님의 영상에서 확인 할수 있는데, 보이른 호수의 위치를 고리국의 위치로 보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Kori(고리국) 밑에 고구려 성터 및 유적지가 있다고 하고 있고 손보기 박사님이 연구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영상에서는 여기가 졸본이다. 라고 명확히 얘기하지 않지만 이 또한 고리국에서 남하한 졸본의 위치로도 볼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이 경우 보이른 호수를 동명 설화의 엄호수(奄淲水)로 볼수도 있습니다. (관련 내용 42분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