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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압록(鴨淥)의 이동으로 본 우리 민족과 만주족(滿洲族)의 역사와 이동에 대한 고찰

작성자동이|작성시간21.02.21|조회수1,121 목록 댓글 0

안녕하셔요. 이번에는 압록의 지명 이동을 통해 우리 역사와 만주족(滿洲族)의 역사의 흐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 할때 예맥에 대해 말합니다.

맥족과 예족을 합쳐 말하는 것인데 후한서 동이전 예전의 내용을 보면 그 특징으로 산과 강을 경계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其俗重山川, 山川各有部界, 不得妄相干涉.

<후한서 동이전 예전> 그 풍속에 산천(山川)을 중히 여기니, 산과 냇가에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 함부로 서로 간섭할 수 없다.

산천이라함은 산과 강을 말하는 것으로 백산으로 부르는 장백산과 압록강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와 여진, 만주족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백산을 영산으로 하며, 수도 앞에는 강이 흐르는 지역에 도읍을 정하는 이러한 풍습은 조선(숙신) 민족의 특징입니다.

女真古肅慎國也本名朱理真訛為女真或以為黑水靺鞨之後而渤海之别族三韓之辰韓方世居混同江之東長白山鴨緑水之源

여진은 옛 숙신국이다. 본래 주리진(조선)이라 불렸는데 와전되서 여진 혹은 흑수말갈의 후예라 불렸다. 발해의 별족과 삼한 중 진한의 방족(方族)이다. 세세토록 혼동강의 동쪽, 장백산, 압록강의 발원지에 살았다.

三朝北盟會編卷三

우리는 이 백산을 태백산, 백두산, 백악산, 백마산, 불함산 이라고 하고 앞에 흐르는 강을 아리수(阿里水)라고 했습니다. 이씨 조선의 수도에도 북쪽에는 백악산(북악산)이 있었으며 수도 앞에 흐르는 강을 아리수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여진, 만주족은 장백산과 압록수(압록강), 혼동강 등이 있었습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마치 평양성을 북한의 평양 위치 하나만 있는 것으로 고정하지만 실제로 중국의 여러 사서에는 수많은 평양성의 지명이 있듯이, 압록강도 현재의 위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위치에 압록의 지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고대 역사의 기록들은 대부분 소실되고 고대 역사서들의 기록이 빈약하므로 그것으로 우리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친연관계를 가지고 있는 만주, 여진, 말갈에 나타난 중국 여러 사료에 기록된 명칭의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중심의 명칭이 장백산과 압록강입니다.

실제 사료를 살펴보면 다양한 위치에 압록수 또는 압록강과 이동했음을 알수 있는 데 우리와 역사적으로 같이 한 여진, 만주족의 흐름인

숙신(肅愼)족 - 읍루(邑婁)족 - 물길(勿吉)/말갈(靺鞨)족 - 여진(女眞)족 - 만주(滿洲)족으로 변천 을 통해 백산과 압록강이 어디에 위치했는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숙신(肅愼)에 대한 고찰

만주족의 뿌리를 살펴보면 스스로 숙신의 후예라고 합니다. 숙신은 조선의 이명으로서 고조선(古朝鮮)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숙신(肅愼)은 식신(息愼), 직신(稷愼)과 같은 뜻으로 '숙신(肅愼)', '조선(朝鮮)'과 '여진(女眞)' 은 모두 만주어로 'Jusen' 주센(조선)으로 발음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만주족과 우리는 같은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숙신에 대해 사서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인데 연나라의 북쪽에 위치했다 하였습니다.

肅愼·燕·毫 吾北土也

『춘추좌전(春秋左傳)』 숙신은 연나라(燕)·호(毫)과 아울러 우리의 북방에 있다.

즉 연나라 북방에 있는 나라를 숙신이라고 하였고, 광의적인 의미로 고조선 전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협의적 개념으로는 부여의 동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읍루의 옛 숙신의 위치를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古肅慎之國也。在夫餘東北千餘里

《후한서》 읍루는 옛 숙신의 나라이다. 부여에서 동북쪽 천여리에 있다.

또한 숙신은 조선을 의미하는데 옛 숙신(古肅慎)은 그 이전의 숙신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옛 숙신(古肅慎)의 위치를 신시 배달(神市 倍達)의 위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이륵호리산의 태백산과 아리하(아리수)의 지명으로서 근거를 제시합니다.

2. 읍루(挹婁)에 대한 고찰

읍루는 옛 숙신의 위치에 있으며 한나라의 기록인 《후한서》에 따르면 부여에 예속된 속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부여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는 나라가 읍루입니다.

挹婁,古肅慎之國也。在夫餘東北千餘里,東濱大海,南與北沃沮接...自漢兴以後,臣屬夫餘

《후한서》 읍루는 옛 숙신의 나라이다. 부여에서 동북쪽 천여리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닷가에 임하고 남쪽은 북옥저에 접해 있다...한나라 때에 부여에 예속되어 있었다.

또한 읍루는 강이름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압록강의 옛 별칭은 읍루강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읍루의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란고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命令作澡. 然後 容爲河洛, 賜名閼覆祿卽浥婁也.

수계(修禊)를 하도록 명령을 한 뒤에야 (평정된 적들을) 하락(河洛, 동대신족 東大神族)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허용을 하고 이들을 알복록(閼覆祿)이라 불렀는데 즉 읍루(浥婁)이다.

<거란고전> 제10장 ‘압록강의 고금(古今)’ 鴨綠江 古今 편

‘알복록(閼覆祿)’은 즉 ‘압록을 지칭하는 말로서도 읍루(浥婁)라는 이름도 압록(鴨淥)에서 나온것을 알수 있습니다.

(* <거란고전>은 요나라 태조가 발해를 멸망시켜 동란국(東丹國)을 세우고, 동란국의 우차상(右次相)을 지낸 발해 사람인 야율우지(耶律羽之)가 편찬한 사서를 묶은 것으로 추정되는 책입니다.)

또한 압록(鴨淥)의 의미를 지닌 읍루(挹婁)라는 이름은 그 부근에 현재까지도 지명이 남아 있는 강, 아리하(阿里河)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그 자세한 이유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3. 물길(勿吉), 말갈(靺鞨)에 대한 고찰

북위때 부터는 물길(勿吉)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수(隋)나라 이후에는 다시 말갈(靺鞨)이라 부르는데 서로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勿吉, 一曰靺鞨

《북사 물길전》 물길은 일설에 말갈이라 한다.

한편 '말갈(靺鞨)족'이라는 용어에서 '말갈'의 현재 중국어 발음은 'mohe', 즉 '모허' 로서. 고구려의 민족 구성원으로 알려지고 있는 '맥족(貊族)'이라는 말에서의 '맥(貊)'의 중국어 발음이 바로 'mo'로서 맥(貊)과 발음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거란고전>을 보면 말갈에 대해 마한(마간)과 발해는 같은 말을 나타내는 음운이라 하였습니다.

瑪玕 靺鞨 渤海 同聲相承, 珠申 肅愼 朱眞 同音相襲, 傳統自明也矣

마간(瑪玕), 말갈(靺鞨), 발해(渤海)는 같은 말을 나타내는 음운으로 서로 이어졌으며 주신(珠申), 숙신(肅愼), 주진(朱眞)도 같은 음으로 서로 이어져왔다. 이러한 전통은 자명(自明)한 것이다”

<거란고전> 제6장 동대신족 전통칭호 東大神族 傳統稱呼

음운적 연관성에 대해 馬韓에 대해 마한을 마간(汗:칸)으로 읽을수 있으며, 마간에서 말갈로 변형되었고 볼수 있으며

일본에서 韓을 から(가라)라고 합니다. 일본어는 고대 백제어로 추정되므로 이를 마가라에서 말갈로 음운이 변화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최치원 전>을 보면

馬韓則高麗卞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

<삼국사기 최치원 전>‘마한은 고(구)려이고, 변한은 백제이고 진한은 신라이다.’

최치원은 마한을 고구려하고 했습니다. 이는 맥(貊), 마한(馬韓), 말갈(靺鞨)은 같은 어원에서 왔으며, 고구려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말갈의 압록의 위치에 대해서는 연산도, 거란지리지도에서 확인된 압록강의 위치와 고구려 동천왕의 압록원으로의 이동 경로를 통해 서도 확인 할수 있지만 <요사> 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요사>에 보면 요나라 태조가 압록강에서 낚시를 했다고 나옵니다.

冬十月戊申,鉤魚於鴨淥江

<요사>(915)겨울 시월 무신일, 압록강에서 고기를 낚았다.

즉 요 태조가 낚시한 위치를 지금의 압록강이라고 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시 압록강은 거란지리지도의 난하를 말하는 것입이며 이는 연산도를 통해서도 확인 할수 있습니다.

4. 여진(女眞)에 대한 고찰

여진(女眞)이라는 명칭은 발해가 요나라에 의해 멸망 당하고 흑수말갈인들이 남하하면서 금대에 이르기까지 발해인과 여러 말갈 후계국인들이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女眞古肅愼國也. 本高麗朱蒙之遺

<남송 서몽신徐夢莘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3권> 여진은 옛 숙신의 나라이고 본래 고구려 주몽의 후예이다.

여진은 고구려, 발해에 대한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발해 멸망 후, 여진과 남은 발해, 고려, 신라의 세력들이 발해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말갈의 변화된 상황을 보여주는 지도가 아래 추리도의 내용입니다.

1) 말갈의 이동

발해가 요나라에 의해 멸망 당하고 흑수말갈인들이 남하하면서 여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말갈지(靺鞨池)는 이를 보여주는 지명입니다.

2) 장백산의 이동

말갈인들이 남하하면서 장백산도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이 위치는 지금의 의무려산(醫巫閭山)으로 추정됩니다. 위쪽에는 백마산(白馬山)이 있는데 이는 이전의 구 장백산으로 볼수 있으며, 대흥안령산맥에 존재하는 또 다른 백산으로 해석할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분명한것은 한민족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백마산(白馬山)도 장백산과 같은 백산으로 인식했다는 기록입니다.

"대표로 ‘白’을 살펴보면 백이(白夷)·백민·백족·백두산·백악산·백산·백마산(白馬山) 등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밝사상(─思想))]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1626

3) 압록강의 이동

난하로 인식되었던 압록강이 말갈인들의 남하하면서 요하(遼河)의 위치로 바뀌었습니다. 이로인해 새로운 위치의 장백산과 압록강이 만들어 졌습니다.

4) 신라의 경계는 압록(현재의 요하)

신라(新羅)의 국경이 요하임을 지도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여진구계 (고려, 신라, 여진, 발해 4속)

말갈이 이동으로 그 지역에 남은 고(구)려인 유민, 신라에서 건너온 신라인, 새로운 여진인, 남은 발해인이 모여 있는 4개의 민족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이 생겼습니다. 즉 이들은 동질의 같은 민족으로 이후 이들에 의해 여러 발해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정안국(938년 ~ 986년), 연파국(975년 ~ 995년), 올야국(995년 ~ ????년), 흥료국(1029년 ~ 1030년) 등이며, 다양한 발해 부흥 운동이 일어 나지만 결국 국가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합니다. 이후에 금나라가 건국되게 되는데

이때 신라에서 건너온 대표적인 인물로 금나라의 시조로 인식되는 신라왕족 출신 김함보이며 이는 금사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金之始祖諱函普, 初從高麗來

『금사(金史)』 금나라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신라)로부터 왔다.

女眞酋長乃新羅人, 號完顔氏

<남송 <홍호>가 기록한 송막기문松漠紀聞> 여진 추장은 신라인으로 호는 완안씨라고 한다.

송막기문에서도 아골타의 완안씨를 신라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함보(金函普)-오아속(烏雅束)-아골타(阿骨打)를 모두 신라계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금의 발음을 한자로 표현한 아이신기요르 애신각라(愛)에 신라라는 내용을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

이후 1115년 완안부(完顔部)의 아골타(阿骨打)가 여진들을 통합하고 대금(大金), 금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이 금나라는 발해를 계승한 국가입니다.

또한 금은 상경회령부로 수도를 이동한 후에 혼동강을 압록강으로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金人謂鴨淥江為混同江

<요사>금나라 사람들은 혼동강을 압록강이라고 했다.

6) 만주(滿洲)

원래 만주(滿洲)의 지명이 이곳에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1586년 후금(後金)과 청(淸)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가 여진족의 세 부족을 통합하고 연합된 부족의 이름을 여진족에서 만주족으로 바꾸었습니다.

7)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

요나라의 동경요양부의 위치이며, 당시에는 난하 동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거란 요나라는 동경도에 있는 영강주(寧江州)를 통해 생여진을 견제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초기의 생여진의 위치에서 발해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다시 북쪽의 생여진과 남쪽의 숙여진으로 나뉘게 되며 이후에 아골타에 의해 금나라가 건국되게 됩니다.

5. 만주(滿洲)에 대한 고찰

금나라 멸망 이후에 몽골이 지배하면서 여진의 무리들은 지금의 동북지역 흑룡강, 송화강 쪽으로 이동하였으며, 건주여진(建洲女眞), 해서여진(海西女眞), 야인여진(野人女眞)으로 세개의 여진으로 나뉘고 압록강과 여진, 말갈의 지명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런 여진인들의 이동으로 인해 조선 세조때(世祖, 1417년 ~ 1468년) 동국지도를 보면 압록강을 비롯하여 여진과 관련된 지명들이 조선 북쪽으로 이동하였으며, 이 후에 아이신기요르 누르하치(愛新覺羅 努爾哈赤)에 의해 후금(後金)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리장성 북쪽에 있던 장백산도 조선시대 들어서 한반도 내로 이동하게 되며, 조선후기에 들어 백두산의 위치로 인식되게 됩니다.

숙신(肅愼)족 - 읍루(邑婁)족 - 물길(勿吉)/말갈(靺鞨)족 - 여진(女眞)족 - 만주(滿洲)족으로 이동을 통해 백산과 압록강의 위치들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은 이동의 루트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와 만주족의 이동 루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6. 압록수(鴨淥)과 아리수(阿里水)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압록수(鴨淥)와 아리수(阿里水, 阿利水)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와 만주족의 수도 자리를 위치해 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사성에 대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압록과 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셨습니다.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의 비에 지금의 압록강을 아리수(阿利水)라 하였음을 보고 압록의 이름이 아리(阿利)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원래 압록은 크다는 뜻의 고대어 ‘아리’, ‘오리’의 이두문으로, 아리(阿里) 또는 압록(鴨綠)으로 표기하였다. 고대에는 지금의 압록강뿐만 아니라 요하, 송하강, 흑룡강 등도 압록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여기서 상기해 둘 필요가 있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그러면 압록(鴨綠, 鴨淥)과 아리(阿里, 阿利)는 그의미가 같다고 하였는데, 그 시원은 어디에서 출발하였을 까요?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의 시조인 성녀(聖女) 알랑 고아에 관해서 『몽골비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랑고아의 아버지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사냥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아름다운 여인 바르고진을

아리오손(Arig-Usun : 청결한 강이라는 뜻)에서 만나 알랑 고아를 낳습니다.

아리오손(Arig-Usun)은 고대의 아리수(阿里水)로 추정되는 강입니다. 이를 바이칼호수의 옛이름으로도 생각합니다.

바이칼 호수에는 에벤키족이라는 부족이 있는데, 생김새는 우리와 똑 같고 아직도 '아리랑', '쓰리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강덕기 외국어대 러시아어과 교수는 에벤키어와 우리말의 기원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발표했습니다. 우실하 항공대 교수는 우리의 전통민요 ‘아리랑’의 노랫말에 나오는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란 말이 현재 어원커족의 어휘에 살아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여기에 언어학적 분석은 물론 어원커족의 장례 습속까지 분석하여 ‘아리랑’이란 말의 기원이 동일하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어원커족은 러시아에서 에벤키족이라 불린다. 그들이 고대에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 대흥안령 자락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설도 있다. 바이칼 호수 가까운 곳에 사는 소수민족 에벤키족은 지금도 ‘아리랑’과 쓰리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들 언어인 에벤키어에서 아리랑은 맞이하다, 영접하다 또는 이별이나 슬픔을 참고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아리랑 하면 떠오르는 '한'의 정서에 가장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아리랑·쓰리랑’ 미란 말은 바이칼 소수민족 에벤키족에게 지금도 남아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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