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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역사 논문 소개

랑케실증주의와 한국실증주의사학(임종권)

작성자풍류|작성시간21.01.18|조회수243 목록 댓글 0

  고대 시대부터 역사 기록은 민족과 문화의 기원이나 통치자의 치적에 중점을두었다. 따라서 고대의 역사서술은 대개 신화나 혹은 영웅담을 담은 서사시등 문학 형태를 띠거나 혹은 기록자의 자의적인 여러 방식으로 기록되어 왔다. 이러한 과거 역사 기록들은 일정한 틀이나 원칙이 정해지지 않았고 정확하지않은 사료나 자료나 혹은 개인의 기억과 상상에 의해 꾸며진 것들이 많았다.

이 같은 역사 기록 방식은 기록자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치우진 점이 많아 객관성과 사실성이 결여되어 과학적이지 못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1차적으로 고대 여러 기록물들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이를 고증하여 사료적 가치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19세기 독일 역사가 레오폴드 폰 랑케에 이르러서야 역사는 사료와 문헌들의 엄격한 고증을 거쳐 사실적인 기록으로 판명된 자료만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근대의 과학적 역사기록

방식이 실증주의라고 불린다.

  근대 과학적인 역사학의 시초인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은 1886년 랑케의제자 리스가 일본 도쿄제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동양 최초로 일본에 전해졌다. 이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정책을 통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선을 식민화하고 아시아 전체를 향해 자국 패권을 확대해 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유럽 열강들도 이미 아프리카, 북, 남미 대륙에 이어 인

도와 동남아시아를 등 식민지화 하는 등 제국주의 패권을 중국과 조선 증 극동에까지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도 서구 열강의 식민정책과 제국주의 패권 확대에 발맞춰 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일제는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동양에서 가장 우위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일제는 근대 역사학인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에 적용했을 때 일본이 동양에서 가장 우월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 들어난다는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일제 역사가들은 새로운 ‘일제식 실증주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근대 역사학은 식민지 시기 바로 이들 일제 역사가들로부터 제국주의 이념에 맞춰 왜곡된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의 이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근대 역사학의 시초이며 동시에 근본적인 토대인 실증주의 역사학은 어떻게 한국 역사학계에 수용되었고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 왔으며 따라서 한국의 실증주의 역사학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본질적 역사관은 무엇인가. 이것을 밝히는 것이 이 논문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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