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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역사 논문 소개

<후한서/군국지> 요동군 주석의 `3600 리`

작성자덕림석|작성시간22.10.09|조회수406 목록 댓글 6

아래는 서기 500 년 전후 쯤 간행되었다는 <후한서/군국지>의 요동군 주석이다.

 

遼東郡 秦置 洛陽東北三千六百里(一)...

(一)魏氏春秋曰 縣北有小水 南流入海 句麗別種 因名之水小水貊

 

그런데,

닉네임 수구리는 위 기록의 3600 리는 1000 리가 부풀려진 것이고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요동군까지는 정확하게 2600 리였다고 한다.

 

사실 낙양에서 요동군까지 2600 리건 3600 리건 직접 걷지 않고서는 믿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기록과 자료들을 교차.검증하면 몇 리 떨어진 곳이 옳고 그 위치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 <지리도> 탁본, 1137 년 송인 황상이 각석함.

 

위 <지리도>에 표시한 적색 사각 실선 지역을 확대하면 아래와 같다.

 

그러면,

위와 같은 1137 년 각석한 탁본에 보이는 송.거란 시기의 요동과 전.후한 시기의 요동 위치가 같을까?

당연히 같다.

왜?

전.후한 시기의 대요수.염난수는 당연히 송.거란 시기에도 흘렀고 주변의 주.군.현 지명도 개칭은 일부 있을지언정 그 기본적인  설치 구조.틀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그 요동군으로는 아래와 같이 대요수와 염난수가 흘러든다고 설명한 문헌이 서기 80 년 쯤 간행된 <한서/지리지>다.

 

요동군 ... 望平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 莽曰長說....

현토군 ... 西蓋馬 馬眥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行二千一百里 莽曰玄兎亭

 

즉 낙양에서 동북 방향으로 3600 리 혹 2600 리 떨어진 곳으로 1250 리 길이의 대요수와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흘러야 한다.

 

물론 전한 시기의 대요수.염난수는 후한 시기에도 흘렀고 송.거란 시기에도 마땅히 흘렀다.

또 대요수와 염난수 길이도 부풀려졌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대요수와 염난수가 흐르는 그 요동군은 지금의 어느 지역에 설치되었을까?

 

꼴꼴난 저 문제를 정확하게 풀기 위해서는 요동군은 물론이고 요동군의 서쪽에 설치된 요서.우북평.어양.광양.상곡 등 5 개 군의 지형과 지세 및 속현 상황에 대해서도 검증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단정하는 요동군 위치는 아래 추정도와 같으니 참조하여 반론하려면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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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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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수구리 | 작성시간 22.10.09 사마천 사기는 BC 91년에 작성된 사서로
    위만조선 한사군 설치의 당대 기록으로 1차사료입니다(흉노열전도 마찬가지고)
    후한서는 서기 4백년 중반에 작성된 사서이니 한사군이 설치되고 나서 500년이 지난 후대 기록이고요

    당대 기록인 사마천 사기를 무시하고 500년 지난 후대 기록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1차 사료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역사 문헌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무시하는 주장입니다

    사마천 사기에 1천여리로 표현된 내용을
    500년 지나서 작성된 후한서 내용인 2천리는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후한서가 1천여리를 2천여리로 부푸려서 기록된 것으로 판단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수구리 | 작성시간 22.10.09 >>>> BC 91년 완성된 사마천 사기(史記) 卷百十 「흉노열전(匈奴列傳)」

    그 후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호(동호, 고조선)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고조선)은 1천여 리나 물러갔다
    연나라 역시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에
    군을 설치하여 호(동호, 고조선)을 방어했다.

    [원문] 其後燕有賢將秦開, 為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 漁陽, 右北平, 遼西, 遼東郡以拒胡.
  • 답댓글 작성자수구리 | 작성시간 22.10.09 >>>> 정사 삼국지 동이열전에 서기 400년 중반에 추가된 위략 내용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원문]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주) 정사 삼국지 동이열전의 위략의 내용이 1천여리 부풀려졌고 부풀려진 2천여리로
    후한서 군국지에서 낙양에서 요동군까지 거리를 3600리로 정했으니 실제는 2600리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수구리 | 작성시간 22.10.09 마지막으로 BC 108년 요동군 낙랑군의 위치는
    서기 1000년 이후에 작성된 지도에서 위치를 찾는 것은 절대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1천년에서 1천 5백년 이후에 작성된 지도로 BC108년의 요동군 위치를 찾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로 보셔도 됩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지명 위치를 북쪽으로 1천여리 이동 시켰고
    당나라가 멸망하고 5대 10국의 연나라 수도가 북경지역이었는데
    서기 900년의 5대 10국의 연나라를 기원전 200년경의 전국시대 연나라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연나라 도성 계가 하북성 중부 거록현에서 북경시 계주구로 북쪽으로 1천리 이동했습니다
    하북성 거록현의 계는 BC 200년 경의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이고요
    북경시 계주구의 계는 당나라 멸망후 AD 900년 경의 5대 10국 시대 연나라 도성입니다)
  • 작성자덕림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9 헐!
    한심한 댓글 길게도 달았군.

    낙양에서 요동군까지 3600 리라는 <후/지> 주석은 1000 여 리가 부풀려진 것이고 그 근거가 동호가 1000 여 리 물러났다는 기록이라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또 당 시기 지명이 북쪽으로 1000 여 리 이동되었다고?
    또한 낙랑.요동군 위치를 송 대 지도에서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 작자 대체 뭔 정신으로 주절거리지?
    너무 무식하고 멍청하여 상대할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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