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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나눔터

잠언 5:1-6:35 "개미에게서 지혜를 얻으라" 메시지

작성자sol2|작성시간24.12.30|조회수166 목록 댓글 0

개미에게서 지혜를 얻으라

말씀/잠언 5:1-6:35

요절/잠언 6:6

오시범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잘못된 동작을 보여줌으로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사전에는 없고 군대에서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자에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 속담에 ‘By other’s faults wise men correct their own.’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자기 결점을 고친다는 것입니다. 타산지석이 긍정적인 면이라면, 반면교사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하면 안되겠다 생각하고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속담대로 오늘 말씀은 실패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 음려(5:1-23)

1,2절을 보십시오.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오늘도 잠언의 핵심인 지혜를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지혜는 곧 우리에게 구원을 줍니다. 그래서 지혜는 소중합니다. 지혜에 주의하기 위해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음녀. 3절에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는 것 같이 달콤합니다.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워서 사람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말을 합니다. 달콤하고 살살 녹이는 말로 다가오면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결과는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워서 내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놓아 망하게 합니다. 그러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음녀는 흔히 말하는 그런 여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집에서는 무시 받는데, 밖에 나가서 날 인정하는 달콤한 말에 속없는 남자들이 넘어갑니다. 또 세상에서 나를 인정해주는 말, “너는 정말 능력자다. 재밉는 사람이다. 너가 꼭 있어야해!” 이런 달콤한 말에 넘어가 세상으로 가버립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서 적당히 세상을 즐기며 살라는 것도 마치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여인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당장에는 즐거움을 얻을지 모르나 결국 그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언기자는 말합니다.

 

7.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무리 달콤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나를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예 멀리 피해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고 유혹에 빠지게 되면 존영을 잃어버리게 되며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존영은 명예와 쌓아 놓은 업적입니다. 음녀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게 되면 일생동안 쌓아놓은 영광과 모든 업적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보는 일입니다. 한동안 말쑥한 외모와 클린 이미지로 돌풍을 일으키며 유력한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모 도지사까지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여비서를 위력으로 성폭행 한 것이 드러나 결국 그는 일생 쌓아놓은 모든 지위와 명예를 한 순간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서 나락이 가, 철창살 신세를 3년 반 지낸 후 출소했습니다. 물론 아내에게 버림을 받아 이혼까지 당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아주 흔하게 벌어집니다. 또 요즘 청년들을 유혹하는 야동이나, 마약도 대단한 음녀입니다. “마약 한번만 해봐,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 유혹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씀을 버리고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면 수고하며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나중에는 내가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이 차지합니다. 그리고 늙고 쇠약할 때에 후회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여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하면서 탄식합니다. 즉 늙어가지고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그때 말씀을 안 들었는가? 내가 왜 나를 말리는 목자님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탄식하는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많은 무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공동체를 말합니다. 즉 한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많은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말씀도 나누고 주의 일을 섬겼습니다. 이번 성탄 연합 예배때 처럼, 싱얼롱으로도 섬기고, 중창으로도 섬겼습니다. 한마디로 아주 즐거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녀와 같은 세상의 유혹에 빠지면서 그 모든 것을 떠나 살면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고 후회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한 번의 인생이기에 다음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은 너는 아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가 있기 때문에,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삶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예 회개할 기회조차 사라지기 전에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음행을 하다 망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종의 위험표지판으로 세워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 두신 위험 표지판을 보고 파멸이 임하기 전에 생명의 길로 돌아서는 사람이야 말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아예 위험표지판이 잔뜩 서 있는 위험한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15절을 읽겠습니다. “내게 주어진 물을 마시며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사람들은 더 좋은 만족과 달콤한 재미를 찾다가 유혹에 넘어갑니다. 이들의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우물에서 물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게 있는 우물, 내게 주어진 샘에서 물을 잘 마시는 것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는 결혼한 자는 아내와 좋은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만 세상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18)고 했습니다. 아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음녀의 유혹을 이기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이 없는 사람도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함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잠언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면 결혼 생활 잘 지켜라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본래의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즉 세상 즐거움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게 주어진 영적인 기쁨, 신령한 즐거움에서 만족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 안에서 찾는 죄사함의 감동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배우는 기쁨, 배운 말씀을 전하고 나누는 기쁨도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과 함께 주의 일을 하면서 주님을 알아가고 배우는 기쁨도 있습니다(벧전1:8,9). 또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고 고난에 참여하는 기쁨도 있습니다(12:2).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앙공동체에서 누리는 이런 기쁨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너 거기 가서 뭐하니?” 하며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 기쁨은 세상이 알 수 없는 신령한 기쁨이요, 거룩한 즐거움입니다.

 

이 기쁨을 알면 20절에 내 아들이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기쁨, 주 안에서 거룩한 감동과 즐거움이 있다면 세상에 나가서 허망한 즐거움을 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튜브에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 연말연시 뭐 합니까? 당연히 친구들을 불러내어, 영화 연속 두 편 때리고, 밥 사먹고, 카페에서 차 마시고, 다시 집콕 하는 친구들을 더 불러내어 술 한 잔 마시고...이게 젊음이고 낭만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듣고 그 많은 시간과 돈이 좀 아까웠습니다. 무엇보다 별로 재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성탄연합예배에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경배 프로그램으로 싱얼롱과 중창과 몽골댄싱과 태권도와 연극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그러므로 내가 아직도 세상의 즐거움, 세상의 기쁨에 자꾸 빠진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나 성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대일 목자가 나를 잘 도와주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심지어 이 공동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내 자신이 내게 주어진 신령한 기쁨, 거룩한 즐거움을 잘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동, 거룩한 즐거움을 잘 누리면 세상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건강이 뭡니까? 건강은 잘 먹고 잘 자면 건강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잘 안 먹고, 잘 안자고, 요즘 건강에 문제가 있네? 라고 하는데 당연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영적인 즐거움을 누리면 세상의 즐거움에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살피시고 계십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악인은 자기 악에 걸리고 죄의 줄에 매입니다. 악인은 스스로 자신이 빠질 구덩이를 파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므로 결국 죽게 됩니다. 미련함으로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즐거움,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기쁨, 말씀이 주는 즐거움, 신앙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나를 즐겁게 하지 않는가?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서 즐거움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나중에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두 번째 실패사례, 보증(6:1-5)

6:1.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여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보증 서 달라는 말을 별로 듣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에는 보증서는 문제가 친척들 간에, 이웃들 간에 아주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어디 취직을 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했고, 또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보증인의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증을 잘 못 섰다가 갑자기 집안이 망하기도 하고, 사업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보증이라는 것은 모든 책임을 같이 진다는 법적인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보증은 보증서준 자의 형편과 나의 형편이 언제나 함께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운명공동체, 경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멍에를 같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증은 잘 되면 다행이지만 빚을 못 같으면 같이 망합니다. 보증이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은 보증 자체를 죄악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보증을 서라는 말씀도 잠언에 있기 때문입니다(17:17; 27:10). 처음 신촌센터는 6명의 목자가 보증을 서서 은행 대출을 받아서 지은 것입니다.

 

그럼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여기서의 보증을 서준 이웃은 신앙공동체, 혹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보증이 아니라 5장에서 음녀와 연결됩니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는 생각과 삶이 전혀 다른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보증을 선다는 것은 그들과 나를 온전히 하나로 여기고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이 다른 자들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자칫하면 함께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돈만 잃고 인생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6:14)라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혹시 보증을 섰다면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웃에게 간청해서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자기 전에 해결할 정도로 미루지 말고 빨리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데도 세상 사람들과 얽혀고 넘어지고 그물에 걸립니다. 왜 그럴까요?

신자의 공통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너무 마음이 착한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목자의 심정이 넘칩니다. 나쁘게 말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샘물이 흘러넘치고 도랑물이 거리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운 소리, 힘든 소리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받아주다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노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절할 줄 아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의 부탁은 물론이지만 심지어 목자인 제가 하는 부탁도 무조건 다 들어주면 안 됩니다. 동역자라고 목자라도 다 들어주는 것, 꼭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많이 들어주시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약점중의 하나가 마음이 순하고 착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증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선까지 도울 것은 돕지만 아닌 것은 멈추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연합된 상황이나, 또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아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도 그것이 나를 지키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셋째사례, 게으른 자(6-11)

6절을 읽겠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흔히 부지런하게 살라는 것을 가르칠 때, 많이 인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게으른 자는 누구를 말할까요? 또 그 작은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우라는 것일까요? 7절을 보면,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고 없고 통치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즉 내 행동은 나 스스로 자립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내가 필요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도 누가 강요하고 명령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목자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주변에서 안 하면 안 되게 협박해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누가 내게 방향을 주지 않아도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일까요? 8절을 읽겠습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여름 동안 양식을 장만하고 추수철에 먹이를 모아 겨울을 날 준비를 합니다. 지금 겨울인데 개미가 안 보입니다. 어디 가 있습니까? 땅속에 들어갔고, 나무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굶어죽지 않습니다. 봄 되면 살이 통통해져서 다 기어 나옵니다. 왜죠? 여름에 열심히 끓어 모아서 양식을 저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개미는 스스로 장래를 준비하는 일을 위해 성실히 일합니다. 우리는 이 개미를 보고 지혜를 얻어야합니다. 어떤 지혜를 얻어야 할까요? 우리도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지금 현재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좋은 것이 끝이 아닙니다. 지금은 장래의 영광을 위해 준비하는 때로 알고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준비에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래는 노후 준비가 아니라, 인생의 죽음이후를 말합니다. 영원한 삶을 말합니다. 신자는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순례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게으른 자는 잠이 많은 자가 아닙니다. 게으른 자는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의 살만한 것으로 만족한 가운데 내일을 준비하는 일에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들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지 하면.”(10)합니다. 게으른 자의 특징은 분명히 해야 될 일을 압니다.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영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미루는 것입니다. 좀 더 누워 있다가 나중에 하자. 하며 자꾸 자꾸 미루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의 편안함에서 자꾸 안주하고 뒹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공부 하러 가야 하는데...” 하면서 미루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게 가면 안되는데...” 하면서 늦는 것입니다. 이것이 게으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11)고 했습니다. 계속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게으르게 살면 당장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거둘 것이 없습니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됩니다. 인생의 장래를 준비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면 영적으로 궁핍하게 되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일을 열심히 준비하는 개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요즘 노후 준비에 다들 관심이 많습니다. 100세 시대라 노년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노후준비는 열심히 하면서 영원한 삶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준비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준비를 자꾸 미루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당장 열심히 준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준비하는 것에 소홀하고 게으르게 산다고 해서 당장 내가 궁핍해지고, 헤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럭저럭 살만 합니다. 그래서 자꾸 뒤로 미룹니다. 말씀공부 한 두 번 안 한다고 해서 뭐 달라질게 있어?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 한다고 해서 엄청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게으름들이 하나 둘 쌓이게 되면 돌이키기 힘들게 됩니다. 개미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살고자 자기 스스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를 위해 계속해서 부지런히 열심히 내일을 준비합니다. 우리는 이런 개미에게서 배워서 부지런히 내일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에 얻을 영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오늘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혹시 수포자를 아십니까? 수학 포기자입니다. 수포자는 미분 적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적분이 뭡니까? 하루 하루를 쌓아서 일 년이 되는 것이 적분입니다. 쌓아서 이루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하루 하루를 쌓아가는 것이 인생 적분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미분은 나누는 것입니다. 일년을 나누면 하루입니다. 하루가 내게 소중한 이유가 이것이 쌓여서 일년이 되고, 십년이 되고 영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허투루 살면 내일은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내일부터 잘 하자. 하게 됩니다. 다이어트 실패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까지만 많이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될까요? 미루면 안 됩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내일을 부지런히 꾸준하게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어떻게 될까요?

 

12-19절은 게으르게 살 때에 찾아오는 악한 모습을 말합니다. 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불량하고 악한 자는 곧 게으른 자입니다. 그들은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이는 게으름을 자꾸 핑계되고 거짓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원래 나쁜 짓은 남몰래 가만히 하려고 눈짓 발짓으로 신호합니다. 구부러진 말이 못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좀 게을렀는데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마음까지 부패해버립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이게 점점 쌓이다 보니까 완전히 부패한 마음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게으르게 살아도 평소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조금씩 조금씩 악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재앙이 내립니다. 범행을 하는 사람들은 다 문제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일을 저지릅니다. 불륜을 저지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 들통 나서 패가망신을 당합니다. 게으르게 산 결과도 반드시 임합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부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라고 했습니다.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목록을 보면 눈에서부터 혀로 손발 그리고 마음까지 차례대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입을 주신 것은 그것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온 몸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욕망대로 사는 일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눈도 혀도 손도 발도 그 마음도...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게으르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부터 나는 악하게 살겠다. 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양심도 있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도 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가지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 일을 소홀히 하게 되면, 게으르게 살게 됩니다. 점점 더 영적인 소원도 잃어버리고 마음의 기쁨도 잃어버리고, 세상 음녀의 유혹에 빠져 버리고, 그러다 게으른 삶이 반복되어 17-19절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로마서 12:11절은 말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성경 곳곳에서는 이 영적인 게으름에 대해 심각한 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21절을 읽겠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우리가 영적인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깊이 간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목에 매는 목걸이처럼 항상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때 말씀이 나의 등불이 되어 나를 어둠에서 깨어나게 하고 또 나의 갈 길을 인도합니다. 24.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유혹에서 나를 빠지지 않게 보호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씀을 가까이 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그의 아름다움은앞의 실패사례에서 나온 음녀, 보증 서는 것, 게으름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의 공통점은 당장에는 달콤하고 재미있고 쉽고 편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넘어갑니다. 안 좋아 보이는데, 넘어가겠습니까? 듣기 싫은데 듣겠습니까? 좋아 보이니까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악한 것인지를 알았으니 그 죄악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런 것들에 빠지게 되면 나중에 한 조각 떡만 남게 됩니다. 생명을 사냥 당합니다(26). 27,28. 가슴에 불을 품으면 먼저 그 사람의 옷이 탈 것이고, 뜨겁게 달궈진 숯불을 맨발로 밟고 선다면 그 발이 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런 것들을 따르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했다면 동정을 받겠지만 처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 내가 게으름에 빠져 사는 것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심판 날에 파멸과 몰락을 당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은 냉정합니다.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습니다.

 

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여기서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달콤한 여인의 말에 넘어가는 자요,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서주는 자요, 또 영적인 일에 게으른 자입니다. 세상에 이런 자들을 능력자요, 세상을 잘 사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지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자기 소신이 뚜렷하고 세상을 잘 사는 것 같아도, 성경은 이들을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죠?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뻔 한데도, 그런 길을 가기 때문에 성경은 이런 사람을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는데도 자기 고집대로 사는 것입니다. 도로 표지판에 막힌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이런 표지판을 보면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차를 몰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웬걸 막혔네. 합니다. 이런 사람 의외로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그 어리석음 때문에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됩니다.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복수를 당하듯이 결국은 그 죄의 결과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우리에게 음녀에게, 보증에서, 또 영적 게으름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며 내일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똑똑한 삶입니다. 우리가 무식하고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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