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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3:1-24:18 "언약을 체결하다." 메시지

작성자sol2|작성시간26.06.09|조회수45 목록 댓글 0

언약을 체결하다

말씀/출애굽기 23:1-24:18

요절/출애굽기 24:7

결혼식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아내와 남편으로 영접하고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예식입니다.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남편과 아내가 되어 부부로 살 수 있지만 결혼을 더욱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 결혼예식을 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고 시내 산에서 언약에 해당되는 십계명과 법규를 받았기에 이제 그 언약대로 살면 될 것 같습니다. 언약예식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혼예식과 같은 언약예식을 행하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도우십니다. 정리하면,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체결한 언약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결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여자의 인품자체가 훌륭한 결혼 지참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신 신부 이스라엘의 인품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신부 이스라엘의 인품(23:1-33)

십계명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법규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삶의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이 갖추어야 할 인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절은 증인이 지켜야 할 법규입니다. 당시 재판을 결정을 하는 것은 증인이었습니다. 증인의 말에 따라 얼마든지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먼저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랑말랑한 동정심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기준으로 하도록 하셨습니다. 또 나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가다가 엎드러짐을 보면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원수의 나귀가 넘어졌으니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좋아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버려두지 말고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기보다 원수를 사랑하고 도와줌으로서 친구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방식입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로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을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방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6년 동안은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그 밭을 묵혀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요즘 말하는 자연농법일까요? 그런 점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곱째 해에는 그 밭에서 뭔가 얻을 것이 나올 것입니다. 즉 땅에는 이전 해 떨어진 씨앗이나 다년생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작물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은 그 자연 발생 수확물을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가져가고, 남은 것은 짐승들도 먹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엿새동안은 일을 하고 일곱 째 날에는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소나 나귀도 쉴 것이며, 네 여종과 자식과 나그네에게 숨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강조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하나님은 이제까지 주신 법규들을 삼가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며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인데, 다시 또 반복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공부할 때, 꼭 시험에 나올만한 것은 빨강 펜으로 밑줄 치고,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나중에는 그것도 부족해서 옆에다 큼지막하게 별표를 해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밑줄 쫙! 치시고 형광펜으로 표시하시고 다시 또 큼지막하게 별표까지 하시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만큼 우상을 숭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보다는 마음이 급합니다. 원하는 것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요즘 시대에는 이것저것 섞는 다원주의 성향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서강대의 한 종교철학교수는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보살 예수라는 책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하나로 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 통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 섞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로 섞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메시지 성경에는 다른 신들은 거들떠보지도 말고 그 이름을 입에 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기독교가 너무 독선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보다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친구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신부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구 사이에서는 그가 다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너는 나 하고만 친구해야 한다.’라고 하면 이 친구 미쳤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 사이가 발전해서 애인이 되고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결혼을 했는데도 자기 신부가 예전의 남친들을 남사친어쩌구 하면서 만나러 돌아다니면 어떨까요? 아무리 쿨한 남자라도 도저히 참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이런 것을 두고 볼 남편들은 없습니다. 예전 연애계 톱스타 부부가 이혼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추측기사들이 떠 돌아다녔습니다. 부부관계를 지키는 첫째는 둘 사이에 다른 것이 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를테면 친구 관계였습니다. 조금 발전된 애인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신부삼아 결혼하고자 하십니다. 사람들은 결혼하려면 이것저것 따지는 조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혼조건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다른 신들의 이름은 입도 뻥끗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신랑되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되신 하나님의 당연한 요구요, 또한 하나님의 신부된 자들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기본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는 유일한 결혼의 조건이요, 또 이때에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습니까? 14-17절에서 하나님은 매년 세 번씩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 절기는 보리 수확의 때에 맞추어서 지키는 무교절입니다. 이때에는 효모를 넣지 않고 만든 딱딱한 보리빵을 먹으면서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명절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하였고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힘으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그들을 하나님 섬기는 삶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은 빈 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빈손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 준비 없이 예배에 나오는 것입니다. 빈 손으로 나오지 말고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애통하는 마음과 회개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 예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예배에 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두 번째 절기는 밀을 수확 때에 지키는 맥추절입니다. 이 명절은 무교절을 지킨 후에 7주기가 지난 50일째였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세 번째 절기는 수장절입니다. 이때는 과일을 수확해서 저장할 때입니다. 이때에는 초막을 짓고 명절을 지켰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신 세 명절은 고향방문 명절이 아닙니다. 또 그냥 즐기는 축제도 아닙니다. 특히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는 것은 하나님께 와서 눈도장을 찍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께 보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신 이 세 절기들은 모두 출애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명절을 통해서 자신들을 노예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새롭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옛말에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했습니다. 돌에 새기면 아주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에 새기면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얼마 안가 잊어버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지? 아니면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끼친 것인지? 헷갈려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일 년에 세 번은 하나님께 나와서 한 주일씩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은 심령을 갈아엎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도 수양회를 해도 일 년에 세 번, 일주일씩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항공센터 밥먹성 1일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밥먹성 수양회를 통해, 동역자님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새롭게 하고, 또 새내기들은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새기는 자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20,21.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앞서 보내어 길에서 보호하여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목소리를 청종하고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네 원수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나의 편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서 나를 밀어주고 함께 하시면 이보다 더 든든한 것이 없습니다. 이러려면 주님과 관계성이 좋아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특히 집중해서 들어야 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24,25a.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트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들의 신들을 경배하지 말라고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의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감이 없어서 일까요? 그만큼 이들의 본성이 세상의 욕심에 잡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이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25b,26.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금방 온갖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오늘날도 신자라고 하면서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란을 뒤적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지금 내 마음을 두고 내가 의지하는 것이 바로 내 하나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외에 내가 의지하고 바라는 것이 내가 부숴버려야 할 우상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런 우상들을 마음에 두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욕심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더구나 요즘 온라인시대입니다. 눈으로 금방 금방 결과가 보이고 있고 없고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다보니 금방 비교가 되고 경쟁이 됩니다. 좋은 것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빠른 시대에 복을 그렇게 빨리 빨리 주시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급한데, 내가 세상에서 좀 더 힘을 쓰면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얻을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만을 섬겨서는 경쟁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모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27,28. 지금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관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보따리 난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정착해서 살 수 있는 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얻고자 하는 가나안 땅에는 이미 히위족속이나 가나안 족속들이 성을 쌓고 최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냥 땅을 내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길 때에 왕벌을 앞에 보내셔서 그들을 좇아내겠다고 하십니다. 왕벌은 다른 번역에는 말벌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말벌을 동원해서 그들을 쫓아내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기본적인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를 책임지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할 때, 그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확실한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축복을 어떻게 주시겠다고 하십니까? 29,30. 하나님이 가나안에서 그들을 좇아내시는데 일 년 안에 하지 아니하고 조금씩 쫓아내겠다고 하십니다. 복을 받아도 복 대박이 터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떤 분은 복 벼락을 맞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조금씩 복을 주십니다. 실망이 되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복을 주시되 조금씩 주십니까? 하나님이 째째해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딸려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은 한 번에 가나안 땅을 다 차지하길 원합니다. 한 번에 넓은 땅에 큰 집을 짓고 넓은 농장에서 이것저것 기르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캐리어 하나 끌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이를테면 복 대박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들이 그 넓은 땅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그것이 짐이 되고,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때 전원주택 붐이 크게 일었습니다. 우리 중에서 은퇴하고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붐이 크게 시들었습니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사는 것은 보기에는 참 좋으나 막상 그 정원을 가꾸는 것은 중노동입니다. 잡풀과의 전쟁이고 뽑아내지 않으면 이게 전원주택인지 폐가인지 모를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팔려고 내어놓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시는가? 안 주시는가?에 민감합니다. 복을 주셔도 얼마 만큼 주시는가? 언제 주시는가? 왜 빨리 안주시는가?를 늘 신경 씁니다. 그러나 분명한 첫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이것은 제가 제 자신을 봐도 또 주변의 동역자들을 봐도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는 주시는데 감당할 만큼만 주십니다. 수준에 맞는 만큼 주십니다. 또 우리는 복을 받아도 얼마나 주시는가? 관심을 갖는데, 하나님의 관심은 복의 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조급하지만 하나님은 나보다 더 나를 아시고 내가 감당할 만큼 내게 복을 주십니다. 한마디로 축복을 감당할 만큼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 복을 주실 때에 그 복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 그의 삶과 신앙에 후퇴나 시험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졸업하더니 취업하더니 결혼하더니 시험에 패스하더니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더라 하면 곤란합니다. 그렇지 않고 축복을 받더니 오히려 더 주님을 사랑하더라. 해야 주님의 축복이 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게 있는 것에 대해서 조급해 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복을 아직 못 받았다고 불안해 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 섭섭해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그동안 잘 감당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요구하기 전에 내가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때에 늘 우리를 축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도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할 만큼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또 다시 이방신들과 언약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32). 벌써 오늘 말씀만 세 번째입니다. 아무래도 바람둥이 신부감을 데리고 살 생각을 하시니 염려가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여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신부가 되기 위한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신부가 되는 결혼의 조건은 오직 신부의 인품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인품은 바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준비를 마치신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의 결혼식을 진행하십니다. 24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결혼식의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결혼이 가장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24:1. 결혼식을 위해서 먼저 신부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신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70인의 장로들이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멀리서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결혼식에 필요한 혼인서약내용을 말씀하십니다.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결혼식 주례에서 신랑, 신부에게 묻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언제 어디서나 신랑과 신부가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까?” 그때 글쎄요. 꼭 그래야 합니까?” 라고 대답하면 결혼 못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결혼이 성사됩니다. 지금 모세도 결혼식을 집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모든 율례들을 다 준행하겠습니까?” 특히 축복의 때나 역경의 때나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나 얻지 못했을 때나 마음을 이방신들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겠습니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로서 결혼서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를 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사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언약의 말씀, 십계명과 법규를 주심으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도록 분명한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언약예식을 행하게 하셨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식입니다. 이제 결혼서약이 이루어졌으니 이 약속을 굳게 하는 예물교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예물교환은 반지가 아니라, 번제와 화목제입니다. 모세는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번제는 재물을 태워서 그 연기가 하늘에 올라가면서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연결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재물로 드린 소의 넓적 다리를 남겨서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나눠 먹으며 친교를 나눕니다. 번제가 수직관계라면 화목제는 수평관계를 위한 것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모세는 이번에는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서를 낭독했을 때, 백성들은 그대로 다 준행하겠다고 또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양푼에 담았던 피의 반을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말합니다. 먼저 모세가 피를 단에 뿌린 것은 하나님께 뿌린 것을 상징합니다. 즉 피를 하나님과 백성들이 나눠 가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 언약이 피로 맺어진 것을 상징합니다. 즉 언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동물의 피를 뿌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 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확증해 주는 피 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언약을 어겼을 때, 피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것이요, 또 서로 피를 나눠가짐으로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피를 나눈 혈맹관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폐백을 할 때에 서로 잔을 나눠 마심으로 서로 부부가 되었음을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의 언약을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았습니다. 신랑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며 바람을 피우므로 결혼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 언약을 세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2:20) 우리는 동물의 피가 아닌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자격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신부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입니다. 즉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새 언약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키는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를 붙들고 살아갈 때 강해질 수 있고,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9,10. 이제 결혼식을 마쳤으니 피로연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다른 지도자들을 다 시내산으로 초청하십니다. 그들은 감히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발아래만 봐도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였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셔서,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식을 한 피로연을 한 것입니다. 어떤 메뉴가 나왔을까요? 메뉴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장치 우리가 누리게 될 천국잔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식 피로연까지 마친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십계명 돌판을 주겠다고 부르셨습니다. 이를테면 결혼서약 문서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6일을 기다린 후에 7일째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은 준비기간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산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결혼식인 언약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결혼식을 한 신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기를 결혼이란 한 자루의 가위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사이에 무엇이 끼어드는 사람을 항상 벌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무엇이 끼어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신부다운 인품을 갖추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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