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옷을 지으라
말씀/출애굽기 28:1-43
요절/출애굽기 28:4
오늘 말씀은 성막에서 사역할 제사장들이 입을 예복에 대한 것입니다. 예복은 그 사람의 신분과 하는 일을 말해줍니다. 예를들어, 소방관들은 불을 끄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옷을 입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방관들이 입는 옷은 불이 잘 붙지 않고 또 열을 차단하기 위해서 옷이 두껍고 무겁습니다. 이 소방관 옷이 멋있다고 그 옷을 입고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는 없습니다. 또 소방관들이 자신들의 옷이 힘들다고 티셔츠 차림에 불을 끄러 출동하면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복장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성막에서 일할 제사장의 옷에도 제사장이 누구이며 또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더 나아가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1-5절은 서론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모세가 택한 것이 아닙니다. 또 실력을 테스트하여 뽑은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그들의 선택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었습니다. 성소를 지으라고 하시고, 그 성소에서 일할 제사장의 역할은 가장 영화롭고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느라 온갖 고생을 겪은 모세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 모세와 함께한 중요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아론은 금송아지 사건에 주동자 역할을 했습니다. 더구나 아론의 두 아들 중에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 일을 잘못해서 죽습니다. 아론이 그동안 전혀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가장 영화로운 대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또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세움을 받은 것이 이들의 실력이나 어떤 자격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9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그러면서 베드로는 분명하게 선포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니.”(고전5:10)라고 했습니다. 곧 있으면 여름 수양회입니다. 우리가 수양회를 통해서 새롭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다른 무엇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2절.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하나님은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론을 폼 나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맡은 제사장의 직분이 영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합니다. 또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그들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가장 아름답고 영화롭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장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고 아름다운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더 나아가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의 직분이 영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 일이 얼마나 영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 일이 얼마나 영화롭고 아름다운 일인지는 그 옷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이 입을 옷은 대제사장이 입을 옷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입게 될 옷은 보통 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대제사장은 여덟 겹의 옷을 입습니다. 일반 제사장은 네 겹의 옷을 입습니다. 대제사장의 옷에 대한 많은 장식과 치장은 대제사장의 역할과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입을 옷을 ‘거룩한 옷’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입을 옷이 거룩하다는 것은 성소라는 거룩한 공간에서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섬기는 예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옷을 짓는 사람도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에게 짓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옷을 지어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 옷을 어떻게 지어야 합니까?
첫째, 에봇
6절. 하나님께서 성막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셨던 것처럼 제사장 예복에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십니다. 에봇의 중요성은 다섯 가지 색깔의 실로 짓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금실과 청색, 자주색 실,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실들은 성막에서 사용되는 휘장을 만드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성막이 세상에서 구별된 것처럼 제사장 옷도 구별되고 차별화되었습니다. 에봇은 앞치마 스타일의 조끼로 에봇의 양쪽 어깨에는 보석이 있었습니다. 그 보석에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새기라고 하셨습니다(9). 군복의 어깨에 붙이는 것을 견장이라고 하는데, 견장에는 계급장을 붙입니다. 또 직책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에봇의 어깨인 견장에 두 보석을 붙여서 이스라엘 열 두 아들의 기념 보석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어깨는 책임과 사명감을 뜻합니다. 결국 대제사장은 이들을 어깨에 메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책임지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도 온 인류를 두 어깨에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책임지고자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깨에 나름대로의 짐을 메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습니다. 자식은 또 자식으로서의 짐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의 짐을 어깨에 메고 삽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하나님이 맡기신 자들을 어깨에 메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청년 대학생들을 도우라는 거룩한 사명을 우리의 어깨에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메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곧 제사장입니다.
둘째, 판결흉패
15-20절은 판결흉패에 대한 것입니다. 흉패는 에봇처럼 여러 색상의 실로 만들어 에봇에 고정하여 대세장의 가슴에 거는 장식품입니다. 하나님은 12개의 보석을 금테로 싸고 흉패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하나씩 도장을 파듯이 새겨 넣으라고 하셨습니다(21). 이 판결흉패는 앞치마 같은 에봇에 붙이고 그 뒤에 주머니같이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30절에 보면, 그 안에 우림과 둠빔을 두라고 하셨습니다.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둠빔은 완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비춰 완전하게 깨닫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제사장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한 다음에 우림과 둠빕 중에 하나를 꺼내 하나님의 뜻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의 이름이 판결흉패입니다. 새번역성경은 ‘판결 가슴받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판결흉패에 붙은 열두 개의 보석에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깨에 메는 것이 책임감을 의미한다면 가슴에 붙이는 것은 사랑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어깨에 멜 뿐만 아니라, 가슴에 품고 나아갑니다. 어깨에 메는 책임만을 강조할 때, 그것은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됩니다. 제대로 감당하려면 마음에 품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실 때에 어깨에 모든 사람의 죄를 지셨을 뿐만 아니라, 가슴에 품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가운데서도 자기를 못박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시대 대제사장인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들을 어깨에 메는 무거운 짐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자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곧 대제사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열두 지파의 이름을 나무판자나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 지파 한 지파를 나무판자대기나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과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제가 두 딸을 키워보니 내가 낳은 자식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부지의 다 큰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역할, 목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담이 되고, 돌멩이나 납덩이로 여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보석과 같이 여기고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또 제사장의 판결흉패에 붙어 있는 보석이 빛나는 자랑인 것처럼, 내가 가슴에 품고 돕는 그 사람이 곧 나의 자랑이요, 나의 가장 보배로운 보석입니다. 올해 학생조상들을 세우고자 하는 기도제목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새내기 몇몇 양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항공대 새내기가 대략 천 명정도 라고 한다면 그 천명 중에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양들입니다. 얼마나 귀한 분들입니까? 이들이야말로 보석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청년대학생들을 납덩이가 아니라, 남보석, 홍보석같이 여기고, 이들을 어깨에 멜 뿐만 아니라,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함으로 우리가 빛나는 열 두 보석을 가슴에 단 대제사장으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겉옷. 31절 하나님은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자의 옷 중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부분이 이 청색 겉옷입니다. 이 청색 겉옷을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역할은 결국 하나님의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하셨지만, 그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그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주제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름수양회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새겨지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제사장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32절을 보면, 겉옷의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같이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옷은 원피스입니다. 통으로 짜서 머리부터 입는 스웨터나 티셔츠 보면 목 부분을 잘 뜯어지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부분을 갑옷 깃처럼 단단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혹 실수라도 찢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옷을 찢는 것은 애통함, 슬픔, 절망, 탄식을 뜻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그런 애통함과 슬픔이나 절망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예가 레위기에 나옵니다. 아론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쓰는 불을 함부로 하다가 벌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졸지에 두 아들을 잃은 아론의 슬픔과 비통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아론에게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레10:16). 제사장도 어렵고 슬픈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을 돕다보면 절망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어떤 가운데서도 자기감정에 휘말리거나 절망에 빠져서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책임지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지도자의 사명,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35절. 겉옷을 두 번째 특징은 옷 가장 자리에 금방울을 달라는 것입니다.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면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석류는 아름다움과 풍요와 다산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왜 금방울을 달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 딸랑 딸랑 재롱부리라는 것일까요? 이 금방울 소리는 제사장 자신이 듣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가 홀로 하나님을 섬길 때 딸랑딸랑 금방울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대제상은 아! 내가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스스로 일깨우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책 제목중에 ‘혼자 있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책이 있습니다. 누가 곁에 있을 때에 우리는 제대로 합니다. 아니 제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 내가 뭐하는지 누가 압니까?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에 유혹을 잘 받습니다. 죄에 잘 넘어집니다. 그런데 혼자 있는 나를 누가 깨우쳐 줍니까? 제사장은 금방울 소리가 깨우쳐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혼자 있는 나를 일깨워주는 금방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가 들어야 할 금방울 소리는 말씀이 깨우치는 내면의 소리이기도 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심령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 패
36,37절.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관은 일종의 모자입니다. 관의 정면에 매는 패는 군인으로 하면 계급장이요, 일종의 마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이 쓰는 관의 정면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결은 성스럽고 깨끗함을 말합니다. 이 관을 쓰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의 직분이 매우 성스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성결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머리에 이런 띠를 띤다는 것은 제사장은 그 무엇보다 ‘여호와께 성결’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보석을 단 에봇을 입고 폼을 다 잡아도 성결하지 않으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결해야 달리 말하면 거룩해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지내셨지만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깨끗합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새롭게 예수님께 나아가서 깨끗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깨끗함을 지키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영적인 순결함, 탁월한 도덕성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고, 우리가 드리는 헌신을 받으십니다.
39-43절은 이외에도 대제사장에게 필요한 속옷이나 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한 사람의 대제사장을 위해서 온갖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만큼 대제사장의 직분은 고귀한 것입니다.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일반 제사장이 쓰는 옷은 대제사장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치장과 옷을 아론과 아론의 아들에게 입하고 그들을 제사장으로 기름 부어 위임하라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혹자는 대제사장의 옷을 보고, 에봇이나 띠나 판결흉패나 머리에 띠는 관을 보면, 움직이는 광고판 같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광고하겠습니까? 그것은 나 너희들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대제사장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이, 이미지가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