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다. 내 어릴 적 긴 골목을 들어서면 아늑하고 포근했던 싸리 울타리의 전경이...비록 낮고 볼품은 없었지만 윗집 아랫집을 구분하기 위해 쳐놓은 싸리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여기 저기 뿌리를 내려 앙증맞게 자라곤 했었다. 그 시절에는 마음을 맑게 하고 자연 속에서 자라는 많은 생명체들과 함께 교감하고 나누면서 사는 기쁨이 그때당시 정서였다. 물론 모든 생활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너무 편리한 세상과는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정서임에는 틀림없었다. 우리가 너무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만 의존하다 보니까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자꾸만 소멸되어 간다. 그리하여 문명의 노예처럼 조금만 문명의 장치가 고장 나도 옴짝 못할 정도가 되고 만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요즘처럼 기계적으로 다 해결되어 편리한 게 과연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정이 고갈되고 사랑이 메마른 세상에서 지금 우리는 심한 외로움과 갈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행복의 기준을 밖에서 끌어 오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안에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잔잔한 행복이 진정 가치 있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그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서 행복해 지는 그런 정서를 말하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 허술하고도 촌스런 울타리를 치고 살면서도 깊은 괴로움과 죽고 싶도록 아픈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담벼락이 높아지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정서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경제의 자유가 없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사회이고 보면 가난해도 서로 나누고 살았던 옛 시절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농촌은 거의가 다 가난하고 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평소에 먹지 못한 귀한 떡이나 음식을 장만하면 담 너머로 떡 접시를 건네어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저녁이면 어느 한 집을 정하여 거기에서 품앗이로 삼도삼고 바느질도 하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싸리 울타리나 얕은 담벼락을 넘어 집에 들곤 했던 때였다. 지금처럼 초인종을 눌러 잠자는 가족들을 깨우거나 열쇠를 채우는 시대와는 달리 밤이고 낮이고 이웃집을 자기 집 드나들듯 편하게 들고 나곤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던 농촌이 농업근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변화되어갔다.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초가집이 사라지고 좁고 꾸불꾸불한 마을길도 넓히고 펴면서 돌로 곱게 쌓아 놓았던 담벼락이 시멘트나 벽돌에 의해 반듯하게 정리 되면서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농토도 경지정리를 하여 경농기로 농사를 지어 먹는 편리한 시절이 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의식구조는 날로 변화되어 젊은이들은 도회로 나가고 힘없고 별 볼 일없는 노인들만이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짓게 되었다.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도시에는 아파트라는 주택구조가 일기 시작했고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살기편한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씩 높은 빌딩들이 생겨나면서 담의 높이도 덩달아 올라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과 몇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세월인데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바뀌면서 우리의 정서는 완전히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높은 담을 쌓으면서부터 이웃과의 교류가 없어지고 담 밖의 세상에는 서로가 관심도 갖지 않기 시작했다. 그 옛날 울타리 너머로 떡 접시를 건네며 내 것 네 것이 없이 터놓고 살았던 시절에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비밀이 없이 지내곤 했었는데 바로 앞 이웃집도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무슨 사람들인지 그 자체가 비밀스런 세상이 되고 말았다. 갈수록 담장의 높이가 올라가면서 관심에서 무관심의 마을로 바뀌고 골목길은 더욱더 삭막해져만 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오직 내 집만 안전하고 아무 일이 없으면 된다는 이기심의 마음이 갖지 못한 자의 범죄 우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높고 우아해진 담을 보고 그 집안에 사는 사람을 특정인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고 상대적인 빈곤 속에서 물질만능의 사고방식만 갖게 된 것이다.
고급승용차와 특이한 옷차림으로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명품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보는 누리지 못한 자의 갈등구조는 더욱더 심각해져만 간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담 안의 세계를부러워 한다. 반면에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은 노출을 꺼려하고 더욱더 많은 비밀을 갖고 낮선 사람하고는 얼굴을 맞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허욕의 덩어리인 모양이다. "자기가 소유한 것을 가장 풍요로운 자산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이 세상을 다 가지고 있어도 불행한 인간이다"라고 갈파한 그리스의 철학자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다.
많이 쌓아놓고 불안해하고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사느니 차라리 내 어렸을 적 싸리 울타리를 넘나들던 그 시절의 편안한 안정이 그래도 나는 그립다. 적어도 그 때는 많이 가져 불안하거나 가슴조이며 지켜야 하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웃의 아픔을 곧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서로 염려하고 서로 그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던 인정이 있던 때였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인가. 지금처럼 승용차가 흔하지 않던 시대라 어쩌다 마을입구에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보이면 어린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 뛰어다녔고 그 승용차는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먼지 뿌리며 동구 밖으로 사라져버리곤 해도 그걸 갖고자 욕심을 부리거나 탐하지 않았었다. 다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즈음이면 밭 매던 아낙네들의 소쿠리에 담아 오는 푸성귀와 오이 호박 등의 푸짐한 먹거리를 보며 행복해 하고, 그걸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던 정서였었다. 그처럼 그 시절의 사람들은 오히려 단순한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가족과의 갈등도 아주 가볍거나 거의 없었다.
지금은 그 시절의 정겨운 모습은 사라지고, 시멘트 문명 이기에 추억에 젖은 가슴은 메말라 버렸고 세월에 할퀸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명의 이기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문화도 함께 공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울 성북구 한 동네에서 담을 헐어내고 그 공간에 나무와 돌이 어우러진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한다. 덕분에 비좁은 골목도 넓어져 주차 공간 문제로 이웃과 싸우는 일도 없어지고, 대화의 물고가 트였고 주민끼리 단합도 잘 된다고들 한다. 앞으로는 공공기관, 학교 ,아파트등도 담장을 헐어내어 모든 것이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의 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 프란치스코의 말을 빌리자면 가난은 우리 자신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리는 길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경제적 위기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내 이웃들에게 그 옛날 울타리 너머로 나누웠던 작은 정성과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삶이 자신을 들어 올리는 행위라는 뜻일 것이다. 삶의 질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것은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가 나누며 사는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정스런 울타리 문화가 지금 현실에서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요즘처럼 기계적으로 다 해결되어 편리한 게 과연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정이 고갈되고 사랑이 메마른 세상에서 지금 우리는 심한 외로움과 갈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행복의 기준을 밖에서 끌어 오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안에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잔잔한 행복이 진정 가치 있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그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서 행복해 지는 그런 정서를 말하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 허술하고도 촌스런 울타리를 치고 살면서도 깊은 괴로움과 죽고 싶도록 아픈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담벼락이 높아지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정서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경제의 자유가 없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사회이고 보면 가난해도 서로 나누고 살았던 옛 시절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농촌은 거의가 다 가난하고 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평소에 먹지 못한 귀한 떡이나 음식을 장만하면 담 너머로 떡 접시를 건네어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저녁이면 어느 한 집을 정하여 거기에서 품앗이로 삼도삼고 바느질도 하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싸리 울타리나 얕은 담벼락을 넘어 집에 들곤 했던 때였다. 지금처럼 초인종을 눌러 잠자는 가족들을 깨우거나 열쇠를 채우는 시대와는 달리 밤이고 낮이고 이웃집을 자기 집 드나들듯 편하게 들고 나곤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던 농촌이 농업근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변화되어갔다.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초가집이 사라지고 좁고 꾸불꾸불한 마을길도 넓히고 펴면서 돌로 곱게 쌓아 놓았던 담벼락이 시멘트나 벽돌에 의해 반듯하게 정리 되면서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농토도 경지정리를 하여 경농기로 농사를 지어 먹는 편리한 시절이 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의식구조는 날로 변화되어 젊은이들은 도회로 나가고 힘없고 별 볼 일없는 노인들만이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짓게 되었다.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도시에는 아파트라는 주택구조가 일기 시작했고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살기편한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씩 높은 빌딩들이 생겨나면서 담의 높이도 덩달아 올라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과 몇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세월인데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바뀌면서 우리의 정서는 완전히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높은 담을 쌓으면서부터 이웃과의 교류가 없어지고 담 밖의 세상에는 서로가 관심도 갖지 않기 시작했다. 그 옛날 울타리 너머로 떡 접시를 건네며 내 것 네 것이 없이 터놓고 살았던 시절에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비밀이 없이 지내곤 했었는데 바로 앞 이웃집도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무슨 사람들인지 그 자체가 비밀스런 세상이 되고 말았다. 갈수록 담장의 높이가 올라가면서 관심에서 무관심의 마을로 바뀌고 골목길은 더욱더 삭막해져만 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오직 내 집만 안전하고 아무 일이 없으면 된다는 이기심의 마음이 갖지 못한 자의 범죄 우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높고 우아해진 담을 보고 그 집안에 사는 사람을 특정인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고 상대적인 빈곤 속에서 물질만능의 사고방식만 갖게 된 것이다.
고급승용차와 특이한 옷차림으로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명품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보는 누리지 못한 자의 갈등구조는 더욱더 심각해져만 간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담 안의 세계를부러워 한다. 반면에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은 노출을 꺼려하고 더욱더 많은 비밀을 갖고 낮선 사람하고는 얼굴을 맞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허욕의 덩어리인 모양이다. "자기가 소유한 것을 가장 풍요로운 자산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이 세상을 다 가지고 있어도 불행한 인간이다"라고 갈파한 그리스의 철학자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다.
많이 쌓아놓고 불안해하고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사느니 차라리 내 어렸을 적 싸리 울타리를 넘나들던 그 시절의 편안한 안정이 그래도 나는 그립다. 적어도 그 때는 많이 가져 불안하거나 가슴조이며 지켜야 하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웃의 아픔을 곧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서로 염려하고 서로 그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던 인정이 있던 때였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인가. 지금처럼 승용차가 흔하지 않던 시대라 어쩌다 마을입구에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보이면 어린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 뛰어다녔고 그 승용차는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먼지 뿌리며 동구 밖으로 사라져버리곤 해도 그걸 갖고자 욕심을 부리거나 탐하지 않았었다. 다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즈음이면 밭 매던 아낙네들의 소쿠리에 담아 오는 푸성귀와 오이 호박 등의 푸짐한 먹거리를 보며 행복해 하고, 그걸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던 정서였었다. 그처럼 그 시절의 사람들은 오히려 단순한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가족과의 갈등도 아주 가볍거나 거의 없었다.
지금은 그 시절의 정겨운 모습은 사라지고, 시멘트 문명 이기에 추억에 젖은 가슴은 메말라 버렸고 세월에 할퀸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명의 이기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문화도 함께 공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울 성북구 한 동네에서 담을 헐어내고 그 공간에 나무와 돌이 어우러진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한다. 덕분에 비좁은 골목도 넓어져 주차 공간 문제로 이웃과 싸우는 일도 없어지고, 대화의 물고가 트였고 주민끼리 단합도 잘 된다고들 한다. 앞으로는 공공기관, 학교 ,아파트등도 담장을 헐어내어 모든 것이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의 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 프란치스코의 말을 빌리자면 가난은 우리 자신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리는 길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경제적 위기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내 이웃들에게 그 옛날 울타리 너머로 나누웠던 작은 정성과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삶이 자신을 들어 올리는 행위라는 뜻일 것이다. 삶의 질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것은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가 나누며 사는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정스런 울타리 문화가 지금 현실에서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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