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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싶은얘기들

프로이센 정복

작성자이준황n|작성시간19.07.21|조회수38 목록 댓글 1


1806년 9월 11일 오전 6시, 나폴레옹은 참모 콜랭쿠르 장군을 불렀다. 그는 매우 창의적인데다 나폴

레옹에게도 위축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 나폴레옹은 콜랭쿠르의 의

견을 받아들여 몇 차례 중요한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일찍이 그의 그릇을 알아보고 사

단장에 임명한 뒤 황실 마사(馬事) 책임을 맡겼다. 나폴레옹은 필기장과 펜을 들고 다가온 콜렝쿠르

에게 속사포처럼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휘 전차로 사용할 무개마차를 준비한 뒤 기마병 60명을

먼저 독일로 출발시키라는 명령이었다.


나폴레옹은 독일의 뷔르츠부르크에 사령부를 설치한 뒤 밤베르크로 이동할 계획이다. 프로이센과 러

시아는 영국의 사주와 자금지원을 받아 다시 프랑스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밤베르

크를 선점하고 있다가 두 나라 군대가 합류하기 전에 각개격파한 뒤, 프로이센 왕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를 추격하여 일거에 베를린을 점령할 계획이다. 영국과 러시아와 프로이센 가운데 나폴레옹이

공격할 수 있는 나라는 프로이센뿐이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의 치밀한 지시는 콜랭쿠르의 메모를

통해 정확하게 각 예하부대에 전달되었다.



1806년 9월 25일, 나폴레옹은 파리를 출발하여 9월 28일 오전 7시 마인츠에 도착했다. 16만 5천 명의

프랑스군이 밤베르크 주위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군은 밤베르크에서 가까운 예나 근처에 집

결해 있었다. 프로이센군은 곧 마인계곡을 거쳐 라인강으로 나올 것이다. 나폴레옹은 곳곳에서 올라

오는 첩보를 종합하여 각자의 군단을 이끌고 있는 5명의 원수들에게 수시로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1

0월 1일, 나폴레옹은 최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뷔르츠부르크로 출발하여 10월 2일 오후 10

시 그곳에 도착했다. 나폴레옹이 대공의 궁전으로 들어가자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뷔르템베르크 왕,

독일의 왕자들이 그를 영접했다.


1806년 10월 12일 정오, 나폴레옹은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는 예나에 도착했다. 나폴레옹은 바이마

르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란트그라펜베르크 고지를 바라보았다. 고지는 말을 타고는 올라갈

수 없는 까마득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때 한 장교가 늙은 사제를 데려왔다. 사제는 란트그라

펜베르크 고지로 올라갈 수 있는 오솔길을 알고 있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공병대 장교를 불러 사제를

따라가 란트그라펜베르크 고지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라고 명했다. 이어 포병대장을 불러란트그라펜

베르크 고지에 포대를 설치하라고 명했다. 프로이센군은 바이마르 평원을 가로질러 예나로 진격해올

것이고, 험준한 란트그라펜베르크 고지에 포대가 설치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었다. 포

대 설치가 끝나고 고지에 야영장이 마련되자 나폴레옹은 장병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 틈에서 잠

자리에 들었다.




10월 13일 오전 3시, 나폴레옹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장병들은 상굿도 깊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날이 밝으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과 브라운슈바이크 원수가 이끄는

15만 대병이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고지 아래서는 다부 원수와 베르나도트 장군이 이끄는 6만 병

력이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나폴레옹은 란트그라펜베르크 고지 정상에서 직접 포사격을 지휘할

계획이다. 오전 9시가 되자 프로이센군이 바이마르 평원을 새까맣게 뒤덮은 채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포사격은 부정확하여 프랑스군의 머리 위를 지나 까마득한 곳에 떨어졌다. 프랑스 포

병대가 700문의 대포를 일제히 발사하기 시작했다. 잘 조준된 대포는 정확하게 프로이센군의 한복판

에서 작렬했다. 포사격이 끝나자 프랑스 기병과 보병이 일제히 진격하여 살아남은 프로이센 군사들

을 정리했다. 오후 2시가 되자 프로이센의 15만 대병은 절룩거리며 도망가는 몇 천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10월 15일 오전 10시, 나폴레옹은 무개 사륜마차를 타고 예나 거리로 나섰다. 거리마다 부상병들이

치료를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마차에서 내려 부상병들의 손을 잡으며 노고를 치하

하고 일일이 소속과 이름을 물었다. 그들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할 작정이었다. 나폴레옹은

한 번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기 때문에 따로 기록할 필요는 없었다. 나폴레옹은 바이마르에 도착하

여 공작의 성에 머물렀다. 곧 프로이센 왕의 사절이 도착하여 왕의 휴전 제의를 전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자는 수작임을 간파하고 휴전 제의를 단호히 거절한 뒤, 계속 베

를린으로 진격할 것이라고 알렸다.



1806년 10월 26일 오후 다부 원수는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 뮈라 원수는 슈테틴에 입성했다. 10

월 27일 오후 2시, 나폴레옹은 2만 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베를린에 입성했다. 앞서 나폴레옹은 프랑

스군의 재정총감 다뤼 원수에게 베를린에서 발견되는 모든 재화를 압수하여 대군의 재정으로 활용하

라고 지시했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궁전에 자리를 잡자 왕이 보낸 특사가

찾아왔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다른 지역에 머물면서 재차 휴전을 제의해온 것이다. 특사는 러시아

군이 이미 프로이센의 영토에 도착해 있지만, 나폴레옹이 휴전에 동의하면 프로이센 왕은 그들을 러

시아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군은 내가 싸워 이겨서 직접 돌려보내겠소.”

나폴레옹은 이번에도 휴전 요청을 거절하고 즉시 항복하라고 요구했다.


프로이센 왕이 항복을 거부하는 가운데 러시아군 12만 병력이 베를린을 향해 진군해오고 있다는 보

고가 올라왔다. 나폴레옹은 모르티에 원수에게 장병을 충분히 보충하라고 명했다. 파리에서는 영국

이 유럽의 모든 항구들에 봉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탈레랑은 프로이센을 점령

한 지금이 영국을 칠 적기라고 주장했다. 1806년 11월 21일, 나폴레옹은 영국의 조치에 맞서 대륙봉

쇄령을 선포했다. 대륙의 모든 나라에 영국과 일체의 교신과 통상거래 중지를 명한 것이다. 또한 대

륙에 거주하는 모든 영국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모든 국가의 결속

만이 영국의 항복을 이끌어낼 터였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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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서우철 | 작성시간 19.07.22 1시간 안밖의 거리로 한국식품을 (H 마트) 사기위해 자주 들러든 보스톤에 주말 1박2일의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대학가 까지 줄비한 고풍스런 도시모습이 그대로 풍겨오는 찰스강의 자동차 유람(육지와 강을 드나드는 관광버스)도 하며 먹거리 나들이 였습니다. 지사 주재시 맛 들인 이란 식당도 찾아 양고기 구이도 잊지않고 찾았습니다. 금주말 캠핑 1박2일만 끝내면 집으로 가는 일정이 금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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