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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싶은얘기들

열국지 [列國誌] 352

작성자이준황n|작성시간23.04.15|조회수35 목록 댓글 0

열국지 [列國誌] 352
■ 2부 장강의 영웅들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1장 효산(殽山)에 지다 (7)

 

진문공(晉文公)의 죽음으로 침울하게 가라앉았던 진(晉)나라 조정에 활기가 돌았다.
- 서쪽의 쥐들아, 어서 오라!
태복 곽언(郭偃)의 예언 이후 진(晉)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서쪽의 쥐'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졌다.
물론 진(秦)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그 무렵 선진(先軫)은 더욱 노련하고 치밀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진(晉)나라 군대의 원수다운 관록과 위엄이 전신에 넘쳐흘렀다.
- 산악지대의 싸움에는 융병(戎兵)이 능란하다.
이렇게 판단한 그는 먼저 인근 융족 중 하나인 강융(姜戎)에게 출동령을 내렸다.
강융 수장은 즉각 2천 기마 병력을 보내왔다.이어 각 장수들에게 일일이 임무를 부여했다.
- 선차거(先且居)와 도격(屠擊)은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효산 왼쪽에 가서 매복하라.
- 서영(胥嬰)과 호국거(狐鞠居)는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효산 오른쪽에 가서 매복하라.
- 호사고(狐射姑)와 한자여(韓子與)는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서효산에 가서 수목을 베어 진군(秦軍)의

길을 막아라.- 양홍(梁弘)과 내구(萊駒)는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동효산에 가서 매복하되,

일단 선두 진군(秦軍)을 통과시킨 후 그 뒤를 추격하라.한 치의 빈틈도 없는 그물망 같은 포위작전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각 군을 책임진 장수들이 모두 진문공(晉文公)과 고락을 같이했던

가신단의 아들이라는 점이었다.선차거(先且居)는 선진의 아들이었고, 서영(胥嬰)은 서신의 아들,

호사고(狐射姑)는 호언의 아들, 양홍(梁弘)은 양유미의 아들이었다.
이로 보아 진문공의 죽음을 전후로 진(晉)나라 내부에는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세대 젊은 장수들이 각기 임무를 부여받고 떠나간 데 이어,
선진을 비롯한 조쇠. 난지. 서신. 양처보(陽處父), 선멸(先蔑) 등 원로 장수들은 진양공을 호위하며

강성(絳城)을 출발,효산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대채(大寨)를 내리고 진군(秦軍)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렸다.
이때 진양공(晉襄公)은 상복을 검게 물들여 입고, 허리에는 흰 띠를 둘렀다.
본래 관습대로라면 흰 상복을 입어야 했으나, 전쟁에서 흰색은 불길하다 하여 편법으로

검은 상복을 입은 것이다.이 싸움이 끝난 후 진양공(晉襄公)은 비로소 진문공(晉文公)을 장사 지냈는데,

그때도 역시 검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을 치렀다.
이때부터 진(晉)나라에서는 상을 당하면 검은 상복을 입는 풍속이 시작되었다.
백리시를 대장으로 한 진군(秦軍) 원정대가 활(滑)나라를 멸망시키고 귀국길에 오른 것은 2월 상순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4월 상순,그들은 진(晉). 진(秦)의 국경지대인 민지(澠池)에 당도했다.

진군 원수 선진(先軫)이 예상했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날짜였다.
그러나 백리시(百里視)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활성(滑城)에서 약탈한 전리품을

수레 가득히 싣고 여유롭게 민지(澠池) 땅으로 들어섰다.
반면 부장 건병(蹇丙)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버지 건숙이 말한 효산(殽山)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민지(澠池)를 출발하기에 앞서 지도를 펼쳐놓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백리시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험준하기로 소문난 효산(殽山)이 나타나오.
나의 부친이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거듭 부탁한 곳이지요.
장군은 전초(前哨)를 늘리고 매사 신중하게 살피시기 바라오."
백리시(百里視)가 깔깔깔 웃으며 건병의 우려에 응대했다.
"우리가 그 동안 천릿길을 달렸으나 나는 한번도 두려워한 일이 없었소이다.
이제 저 효산(殽山)만 넘으면 바로 우리 진(秦)나라 영토로 들어서게 되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나 진배없는데, 새삼 무엇을 염려하리오."
"하지만 내 부친께서 효산(殽山)을 조심하라고 말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을게요.“
"하하하. 우리는 이미 정(鄭)나라로 향할 때 효산 골짜기를 지나왔소.
길이 다소 험하기는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질 않소?그대 부친은 너무 염려가

깊은 것이 병이오."곁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부장 서걸술(西乞術)이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우리 군사가 비록 용맹하지만 조심해서 손해볼 것은 없소.
우리는 진(晉)나라 군사가 매복해 있을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소."
백리시(百里視)는 또 한 번 깔깔깔 웃은 후 두 사람을 조롱했다.
"두 장군은 진(晉)을 너무 무서워하는구려. 내가 앞장서겠소이다.
장군들의 말대로 진(晉)나라 복병이 나타나면 그땐 내가 도맡아서 무찌를 터이니,

두 분 장군은 아무 염려 말고 주변 풍경이나 구경하시오."행군 대열을 다시 조정했다.
전초 부대 아장인 포만자(褒蠻子)가 대장기를 앞세우고 선두에 섰고, 그 뒤로 백리시가

제2대가 되었으며, 서걸술은 제3대, 건병은 제4대가 되어 뒤를 맡았다.
각 부대간의 거리는 1, 2리 정도였다.전초 부대 책임자 포만자(褒蠻子)는 힘이 장사였다.
무기도 80근이 넘는 방천극(方天戟)을 사용했다.
그 방천극을 팔랑개비처럼 돌리다가 느닷없이 상대 목을 베는 것이 포만자의 특기였다.
그는 늘 스스로 천하에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자랑했다.
민지(澠池)를 출발한 지 두 시각쯤 지나서 전초 부대는 동효산에 이르렀다.
높은 봉우리에 기암괴석이 즐비했다. 수목이 우거져 마치 깊은 동굴 속을 지나는 듯했다.
"과연 절경이로다!“포만자(褒蠻子)는 주변을 둘러보며 호기로운 탄성을 내질렀다.
그때 산기슭 저편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일었다.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떼의 병차와 병사들이 달려나왔다.
그 선두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 진(晉)
그러나 포만자(褒蠻子)는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태연한 모습으로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진군(晉軍)의 병차가 지척까지 다가와 포만자 앞에 멈춰섰다.
병차 위에 탄 장수는 포만자의 병차에 꽂혀 있는 대장기를 보더니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네가 진(秦)나라 장수 백리시냐? 우리가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포만자(褒蠻子)는 오히려 되물었다."네 이름은 무엇이냐?“"나는 진(晉)나라 장수 내구(萊駒)다.“
별안간 포만자가 고개를 젖히고 한바탕 웃어댔다."진(晉)나라 선진이나 위주(魏犨) 정도라면

장난삼아 한번 싸워보겠지만, 너 같은 이름도 없는 졸개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가서 선진(先軫)을 데려오든지, 아니면 길을 방해하지 말고 비키도록 하라!"
자신을 똥강아지 대하는 듯하는 포만자(褒蠻子)의 태도에 내구(萊駒)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놈!"내구(萊駒)는 병차를 몰아 창으로 포만자의 가슴을 힘껏 찔렀다.
그러나 포만자는 가볍게 창끝을 피하면서 방천극을 높이 들어 내구(萊駒)를 내리쳤다.
내구(萊駒)는 급히 몸을 피했다.80근 방천극이 병차를 때렸다.
그 바람에 형목(衡木)이 두 조각으로 부서졌다.내구(萊駒)가 기겁하여 자신도 모르게 감탄한다.
"과연 백리시의 용맹은 소문대로 대단하구나!“포만자(褒蠻子)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어댔다.
"우리 원수가 어찌 이름도 없는 졸개와 싸우겠느냐. 나는 백리시 대장의 부하인 포만자다."
내구(萊駒)는 또 한 번 놀랐다.
일개 아장의 무용(武勇)이 이 정도라면 대장인 백리시(百里視)는 얼마나 무서운 장수일까.
내구(萊駒)는 얼른 몸을 움츠리며 외쳤다.
"내가 너희들을 통과시켜줄 테니 너는 우리 군사를 해치지 마라.“
그러고는 재빨리 병차를 돌려 병사들과 함께 산기슭 저편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진(晉)나라 원수 선진(先軫)의 계략임을 포만자(褒蠻子)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는 한껏 내구(萊駒)를 비웃은 후 제2대로 뒤따라오는 백리시에게 부하를 보냈다.
- 약간의 진군(晉軍)이 매복하고 있었으나, 소장이 겁주어 쫓아버렸습니다. 대장은 속히 오셔서

효산(殽山)을 넘으십시오.보고를 받은 백리시(百里視)는 크게 기뻐했다."과연 포만자다!“
그는 서걸술, 건병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동효산을 바라보고 행군했다.
동효산 계곡 초입에서 부터 다시 5리쯤 갔을 때였다.별안간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부터 앞으로 30리 길은 효산(殽山)에서도 가장 험난한 곳이었다.
백리시(百里視)가 병사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포만자(褒蠻子)가 먼저 간 것을 보니 복병은 없는 게 분명하다. 전군은 투구와 갑옷을 벗어라.“
말고삐도 풀었다. 병차를 분해해서 떠메기도 하고, 서로 끌고 밀기도 했다.
세 걸음 옮겨놓으면 두 번 넘어졌다.행군이라기보다는 기어간다고 해야 옳을 정도였다.
대열을 갖춘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백리시가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탄식을 했다.
"정(鄭)나라로 향할 때는 힘든 줄 몰랐는데, 지금 고국으로 돌아가려 하니 효산(殽山)은

참으로 험한 곳이로구나. 두 번 다시 올 곳이 아니로다!"
그랬다.그들은 불과 넉 달 전에 이곳을 지났었다.그때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효산(殽山)을 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정나라를 쳐서 이기고 돌아온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매복에 대한 염려도 없었다.짐도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효산을 지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무엇보다도 천릿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람도, 말도 지친 상태다.정(鄭)나라를 쳐서 이기기는 커녕 신정(新鄭)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고작 활(滑)나라를 쳤을 뿐이다.돌아가면 진목공(秦穆公)으로 부터 어떤 질책을 받을지 모른다.
유일한 희망은 활성(滑城)에서 약탈한 전리품과 포로들이다.
그런데 그 전리품이 또 하나의 고달픔이었다. 수레에 싣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았다.
병사들은 무기 대신 짐을 짊어져야 했다.게다가 언제 어디서 진(晉)나라 복병이 급습해올지 몰랐다.
극심한 불안감에 마음놓고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어찌 넉 달 전과 같은 상황일 수 있으랴.
진군(秦軍)은 겨우 상천제(上天梯)에 올랐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길은 더욱 험하고 좁아졌다.그렇게 얼마쯤 갔을 때였다.
문득 어디선가 북소리와 적(笛)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모두들 겁에 질려 사방을 둘러보는 중에 뒤편에서 한 병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진(晉)나라 군대가 우리를 뒤쫓아옵니다.“백리시(百里視)가 군사들을 향해 외쳐댔다.
"산이 워낙 험하여 우리도 나가기 힘들지만 저들도 따라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앞에 복병이 있느냐는 것뿐이다.
뒤따라 오는 적은 두려워할 것 없으니, 모든 군사는 힘을 내어 전진하라!"
그러고는 다시 건병(蹇丙)에게 지시했다."장군은 앞서가시오. 뒤따라오는 적은 내가 막겠소."

35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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