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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492

작성자이준황n|작성시간23.08.12|조회수28 목록 댓글 0

열국지 [列國誌] 492
■ 2부 장강의 영웅들 (148)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9장 스승의 스승은 (3)

이듬해인 BC 561년(진도공 12년)
진(晉)나라 동맹국 중 가장 남단에 위치한 오(吳)나라에 변화가 일어났다.
왕을 자처하던 수몽(壽夢)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오나라에는 시호(諡號)제도가 없어서

수몽은 죽은 후에도 그냥 수몽이었다.재위기간은 25년이었다.수몽(壽夢)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장남 제번(諸樊)을 비롯하여 둘째 여제(餘祭), 셋째 여매(餘昧), 그리고 넷째인 계찰(季札)이

바로 그들이다.수몽(壽夢)은 평소 이 4형제 중 막내인 계찰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계찰을 자기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그때마다 계찰(季札)은 번번이 세자자리를

사양했다.이에 수몽(壽夢)은 어쩔 수 없이 장남인 제번을 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에게는 못내 아쉬웠다. 숨을 거두기 전 네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너희 네 형제 중 가장 덕이 높고 인자한 사람은 계찰이다. 계찰이 오나라 군위에 오르면

오나라는 내내 번영할 것이다. 그런데 계찰(季札)은 부득불 세자 되기를 사양했다.
이제 이르노니, 내가 죽은 후에는 세자인 제번이 군위를 이어받고, 제번이 왕의 자리를

내놓을 경우에는 둘째인 여제가 군위를 이어받으라.""그리고 여제는 셋째인 여매에게

군위를 전하고, 여매는 계찰에게 군위를 전하라. 이리하여 마침내 계찰(季札)이 왕이 되면

우리 오나라 사직에 큰 행운이 있을 것이다. 내말을 어기는 자는 불효한자요,

결코 하늘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다."파격적인 유언이었다.세자 제번(諸樊)은 당황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이 계찰을 위한 것임을 알고 결심했다. 아버지 수몽이 죽자 계찰을 불러

자신의 뜻을 밝혔다."형제간의 세습은 나라를 더욱 어지럽힐 뿐이다. 나는 왕에 오르지 않겠다.

네가 군위에 오르라."그러나 계찰 또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는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도 세자 되기를 사양했습니다. 그러하거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금 어찌 군위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왕이 되는 것이 싫습니다.

형님께서 자꾸 권하시면 저는 다른 나라로 달아나겠습니다."
계찰(季札)은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 밭을 갈았다.제번(諸樊)은 하는 수없이,
- 후일 나의 뒤를 이을 사람은 동생 여제다.
이렇게 선포하고, 아버지 수몽의 뒤를 이어 오(吳)나라 왕의 자리에 올랐다.
오왕 수몽이 죽은 다음해, 초공왕도 군위에 오른지 3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 세자 소(昭)가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초강왕(楚康王)이다.
초공왕(楚共王)은 죽기 전 자신의 업적에 대해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신하들을 불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내렸다.- 내가 죽어 관 속에 들어가면 그대들은

나의 시호를 정한 터인데, 나는 재위 내내 덕이 없었고 언릉에서 싸워 군사를 잃어

사직을 욕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내 시호를 영(靈)이나 여(厲)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정하라.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영(靈)'이나 '여(厲)'는 무능하거나 포악한 군주에게 붙이는

시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공왕(楚共王)은 다섯 번이나 물은 끝에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받아냈다.며칠 후 초공왕이 죽자 새로 왕위에 오른 초강왕(楚康王)과 신하들은

한자리에 모여 선왕의 시호를 놓고 의논했다. 공자 낭(囊)이 의견을 내었다.
"선군께서는 재위 동안 공손함으로 일관하셨고, 죽음에 임해서도 자신의 과실을 알고 계셨으니

이보다 더한 공손함은 없을 것이오. 선군의 시호는 '공(共)'이 가장 합당하오."
"그말이 옳소."이렇게 해서 초공왕의 시호는 '초공왕(楚共王)'이 되었다.
초나라의 라이벌인 진(晉)나라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중군 원수 순앵(荀罃)과

하군 좌장 사방(士魴), 대부 위상(魏相) 등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모두 노병(老病)이었다.
진도공(晉悼公)은 이들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고 군제를 재정비하였다. 그는 4군(四軍)을 줄여

3군으로 하고, 각 군에 대한 대장을 새로 임명했다.
그 무렵, 오나라 왕 제번이 이복동생 당(黨)을 시켜 초나라 땅을 침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번(諸樊)은 초공왕이 죽고 초강왕이 새로 군위에 오른틈을 타서 변경을 들이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오히려 오나라 장수 당(黨)은 초군대장 신궁(神弓) 양유기(養由基)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결과는 오나라의 패배.제번(諸樊)은 이에 대한 보복을 하고자 진도공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진도공(晉悼公)은 오나라왕 제번의 청을 받아들여 정나라 향(向)이라는 땅에 12개 나라의

대표들을 소집하고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 칠 일을 의논했다.
이때 진(晉)나라 대표로 참가한 사람은 중군 좌장 범개였다.
범개(范匃)는 사섭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매사 공손하고 일을 바르게 처리하였다.
권력에 대한 욕심도 강하지 않아 이번 중군 원수를 뽑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사양하고

순언(荀偃)을 적극 추천한 바 있었다.
범개(范匃)는 회의를 열고 나서야 오(吳)나라가 초나라 국상을 이용해 싸움을 일으킨 것을 알았다.
- 남의 불행을 틈타 국경을 침범한 것은 부덕한 소행이다. 우리는 오나라를 도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선언하고 오나라 대표인 여제(餘祭)를 회의장에서 퇴장시켰다.
회의가 오나라를 돕지 않기로 결정나자, 각 나라 대표들은 제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범개(范匃)가 일어나 전혀 다른 제안을 했다.
"지난번 초나라가 정나라를 칠 때 진(秦)나라는 초군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바 있습니다.

이는 중원의 단합을 깨뜨리는 일이요, 배신행위입니다. 결코 용서할 수 없소.
기왕 우리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진(秦)나라를 응징하여 중원의 평화를 공고히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좋은 생각입니다."진(晉)나라와 가장 사이가 가까운 송(宋)나라 대표가 동의했다.
이쯤되면 다른나라 대표들도 대놓고 반대할 수가 없었다. 각 나라 대표들은 데리고온

군대를 정돈하여 진(秦)나라를 향해 쳐들어갔다.
범개(范匃)는 재빨리 도성으로 돌아가 진도공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그렇지 않아도 진경공(秦景公)

의 행위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던 진도공은 중군 원수 순언에게 진(秦)나라 토벌의 명을 내렸다.
순언(荀偃)으로서는 원수에 오른 후 첫 출정이었다.
중군을 비롯해 상, 하군 모두 진격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12개국 연합군이 가세했으니

그 위세는 가히 태산을 뒤엎을 만했다.그들은 경수를 건너 역림 땅까지 쳐들어갔다.

역림은 진(秦)나라 땅으로, 지금의 섬서성 함양 북편에 위치해 있다.
이쯤되면 진(秦)나라로서는 겁을 먹고 화친 사절단을 보내올 만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경수 상류쪽에 군대를 주둔시켜

강물에 독을 뿌렸다. 이로 인해 진(晉)나라 연합군 병사들 다수가 죽었다.
"이자들이 무엇을 믿고 이리도 발칙하게 구는가?"중군 원수 순언(荀偃)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자신의 체면이 땅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군을 모아놓고 명을 내렸다.
"모든 군사는 내일 새벽닭이 울면 병차에 말을 매고, 우물을 묻고, 부뚜막을 헐어 없애고 공격하라."
한 장수가 물었다."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면 좋겠습니까?"순언(荀偃)이 대답했다.
"그런 것은 따질 필요 없다. 다만, 내가 가는 방향만 바라보고 따라오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대답 하나가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하군 대장 난염(欒黶)은 전 원수 난서의 아들이다.

지난번 인사 발령때 당연히 자신이 중군 원수 자리에 오를 줄 알았다.

가문의 권세로 보나 서열로 보나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잘것 없다고 생각한 순언(荀偃)이 중군 원수가 되고, 진나라 제일의 권문인 자신은

하군대장에 그대로 유임된 것이었다.이때부터 그는 순언을 못마땅히 여기며 늘 깔보았다.

귀족들 간에 경쟁의식이 싹튼 것이라고나 할까.난염(欒黶)은 순언의 명령을 듣자 코방귀를 뀌었다.
"싸움이란 모든 장수가 모여 서로 의논한 뒤 계책을 정해야 하는 것이거늘, 언제 우리 진(晉)나라에

이런 주먹구구식 명령이 있었던가.
그런 식이라면 나는 하군 대장이니 나의 군사는 당연히 내가 가는 곳을 따라야 할것이다. 좋다.

나는 말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겠다."동쪽으로 향하겠다는 것은 곧 강성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난염(欒黶)은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병차대를 동쪽으로 돌려 경수를 건너 회군하고 말았다.
이때 하군 좌장은 진도공의 신임이 두터운 위강(魏絳)이었다.
난염의 회군에 당황한 순언은 얼른 측근 부하를 보내 위강의 뜻을 살펴오게 했다.
난염이 돌아갔다 해도 좌장인 그가 남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순언의 측근 부하가 위강(魏絳)에게 가서 물었다."장군께서는 원수의 명령에 따르시렵니까?"
위강이 대답했다."원수께서는 대장의 명령을 따르라 하셨소.

나는 난염의 직속 부하이니, 나의 대장인 난염을 따르지 않을 수 없소."
그러고는 역시 자신의 소속 군사를 거느리고 경수를 건너 회군했다.
이 보고를 받은 순언(荀偃)은 우울했다.곰곰이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각 군대장을 무시하고

멋대로 명령을 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실수를 하였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대로 싸웠다가는 진(秦)나라에 크게 패할 것이 틀림없다."
그는 탄식하고 각 나라 대표들을 불러 회군 명령을 내렸다.
자신도 중군을 거느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은 없었다.이로 미루어볼 때,

이 무렵의 진(晉)나라 내부 상황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다른 질서 체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라의 모든 일이 군주나 공실보다는 각 문벌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갔다고나 할까.

이번 사건은 이런 현상을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例)라고 할 수 있었다.

49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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