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620
■ 2부 장강의 영웅들 (276)
제10권 오월춘추
제 35장 신포서(申包胥)의 피눈물 (8)
- 본국으로 돌아간다! 오자서(伍子胥)와 손무(孫武)는 회군길에 올랐다.
영성(郢城)을 떠나기 전 오(吳)나라 군사들은 초나라 왕궁에 있는 보화와 비단등을 몽땅 내어 수레에
실었다. 아울러 국경지대에 있는 초(楚)나라 백성 1만여 호를 오나라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오(吳)나라는 땅에 비해 인구가 현저히 부족했다.늘 농사 짓는 데 애를 먹었다. 따라서 이런 식의
대규모 강제 이주는 인구를 늘려야 하는 오나라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편 중의 하나였다.
오자서와 손무는 각기 두갈래 길로 나누어 귀환했다.
손무(孫武)는 수로를 따라 오성으로 향했고, 오자서(伍子胥)는 예장 땅을 경유하는 육로를 선택했다.
오자서(伍子胥)가 선택한 육로는 10여 년 전 그가 오(吳)나라로 망명하던 때의 바로 그 길이었다.
그때는 초군에게 쫓기느라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얗게 셀 만큼 초조와 불안에 시달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정복자로서의 여유와 감상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눈에 익은 풍경을 볼 때마다 오자서(伍子胥)는 망명 당시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동고공(東杲公).....!'자신을 도와준 첫 은인이었다.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오자서가 있었을까.
오자서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역양산(歷陽山)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고 싶다.'
그러나 동고공이 살던 역양산 골짜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고공(東杲公)이 살던 모옥은 불타버렸는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사람의 그림자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어디로 갔을까.'
그는 혹시나 하여 사람을 용동산(龍洞山)으로 보내어 황보눌(皇甫訥)의 소식을 알아오게 했다.
용동산으로 갔던 사람이 돌아와 고했다."황보눌(皇甫訥)의 종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자서는 탄식했다."고고한 분들이로다!"
오자서(伍子胥)는 동고공이 살던 집터에 두 번 절을 올리고 역양산을 내려왔다.
이번에는 소관(昭關)으로 향했다.지난날과 달리 소관에는 파수 보는 초(楚)나라 군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 가슴 조이던 일을 생각하니 새삼스레 분노가 솟았다.
오자서(伍子胥)는 군사들을 시켜 소관을 불태워버렸다.다시 율양(慄陽) 땅 뇌수가로 갔다.
세월이 흘렀건만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오자서(伍子胥)는 뇌수 강변에 서서 굽이치는
물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내가 지난날 배가 고파 이곳에서 빨래하는 여자에게 밥을
구걸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여자는 내게 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강물 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때 내가 바위에다 글을 지어 써넣은 것이 있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구나."
오자서(伍子胥)는 기억을 되살려 바위를 찾아 덮어놓았던 흙을 쓸어 치웠다.
바위에는 지난날에 쓴 글자가 완연히 남아 있었다. 감개에 젖은 오자서는 그 여인에게
은혜를 갚고자 했다.그러나 그는 여인의 집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천금을 푸대자루에 넣어
뇌수(瀨水) 강물에 던져넣으며 외쳤다.
"빨래하던 여인이여, 만일 영혼이 있다면 내가 그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알아주기 바라오."
오자서(伍子胥)가 그 곳을 떠나 한 마장쯤 갔을 때였다.길가에 한 노파가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오(吳)나라 군사들을 보고 대뜸 통곡하기 시작했다. 군졸 하나가 노파에게 다가가
우는 까닭을 물었다."노파는 어찌하여 우리를 보고 우는 게요?"
노파가 눈물을 씻으며 곡절을 얘기했다."나는 팔자가 기박하여 딸과 단둘이서 살았었소.
내 딸은 서른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았지요. 그런데 10여 년 전에 내 딸이 뇌수(瀨水)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도망자인 듯한 한 나그네에게 밥을 대접했다오."
"딸은 이 사실이 알려질까 염려하여 결국 뇌수(瀨水)에 몸을 던져 죽었지요. 그 후에 들으니
그 나그네가 초나라의 망명객인 오자서(伍子胥)장군이라고 합디다. 그런데 이번에 오자서 장군이
초(楚)나라를 크게 무찌르고 돌아오는 중이라는데, 내 딸은 이 기쁜 소식을 알기나 할려는지....
그대들을 보니 딸이 생각나서 눈물이 절로 나는구려."군졸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들의 대장이 바로 오자서(伍子胥) 장군입니다. 이번에 따님에게 보답하려고 이 곳을 찾았으나
집을 알지 못하여 결국 천금을 뇌수(瀨水) 강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노파는 어서 가서
그 천금을 건지시오."그 얘기를 들은 노파는 황급히 뇌수가로 가서 오자서가 던져 넣은
천금을 건져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뇌수가를 '투금뢰(投金瀨)'라고 불렀다.
손무(孫武)는 장강의 빠른 물살을 타고 10여 일 만에 오성에 당도했다.
그때 월(越)나라 군사들은 막 오성 교외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손무는 합려에게
귀국 보고를 올리자마자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월군을 맞아 싸우러 나갔다.
월왕(越王) 윤상(允常)은 이미 손무에게 한 번 크게 패한 적이 있었다. 손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었다. 그는 손무가 영성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전군에 명을 내렸다.
- 오(吳)나라 치는 일은 뒤로 미루겠다. 모든 군사는 본국으로 돌아가라.
월군(越軍)이 오나라 땅에서 완전히 철수했을 때 오자서도 오성으로 돌아왔다.
지난 1년 반 사이 오왕 합려는 꿈같은 세월을 보냈다.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초(楚)나라 수도
영성을 점령하고 자신의 이름을 중원 전역에 떨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공이 병법의 귀재인 군사(軍師) 손무와 당대 최고의 풍운아 오자서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합려는 손무를 으뜸 공로자로 삼았다. 그에게 많은 상과 높은 벼슬을 내릴 작정으로
손무를 불렀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손무(孫武)가 사람을 보내 대신 아뢰었다.
- 신은 이제 그만 은퇴할까 합니다. 상과 벼슬은 필요 없습니다.오왕 합려는 놀랐다.
내관을 보내 만류했으나 손무는 여전히 사양했다.다급해진 합려는 오자서에게 명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무를 붙잡으라고 분부했다. 오자서(伍子胥) 또한 손무의 은퇴 소식에 놀라
황급히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오자서(伍子胥)가 손무의 손을 잡고 물었다.
"내 그대와 함께 큰 뜻을 이루려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려 함이오?"
손무(孫武)가 조용히 대답했다."그대는 천도(天道)를 아시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지요. 내가 보기에 지금 오왕은 사방에 걱정거리가 없어졌소.
강성하면 교만해지고, 교만해지면 쇠락해집니다. 한 개인의 일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을 이루고 물러서지 않으면 반드시 큰 불행이 닥칩니다. 나는 평생 병법을 연구해온 사람이오.
병법의 극의(極意)가 무엇인줄 아시오?
-바로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生)도 생각해보면 싸움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다만 지금 내가 물러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대 또한 나와 함께
물러남이 어떠한지요?"오히려 오자서에게 함께 은퇴하자고 권하는 것이었다.
오자서(伍子胥)는 3일 낮 3일 밤을 만류했으나 끝내 손무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손무(孫武)는 오자서에게 작별을 고하고 표연히 오성을 떠났다.
합려도 어쩔 수 없이 그의 은퇴를 승낙하고 황금과 비단을 가득 실은 수레를 뒤딸려보냈다.
그러나 손무는 길을 가는 도중 가난한 백성들에게 그 황금과 비단을 모두 나눠주었다.
그 후 손무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사서(史書) 어디에도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
오늘날 병법의 대가라고 불리는 손무(孫武)는 이렇듯 홀연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다만 그가 남긴 것은 오늘날까지도 병가의 경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손자병법> 13편과 '손무(孫武)'라는 이름 두 자다.
과연 그는 병법의 대가 답게 나가고 물러남 또한 절묘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 지존이부지망(知存而不知亡).존재함만 알고 망함이 있음은 모르는구나.
이것이 손무(孫武)가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오의(奧義 깊은 뜻)가 아니었을까.
또한 그는 단순히 병법의 달인이 아니라 인생의 철리(哲理)를 깊이 터득한 오인(悟人,깨달은 사람)
이 아니었을까.
621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