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세계 학계에서는 인류가 기원전 1만 2천 년경에 정착생활을 시작했으며, 개를 기르기 시작
한 것은 그보다 빠른 기원 전 1만 6천 년경이었다는 게 정설로 되어 있었다. 살기 좋은 곳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상굿도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을 때부터 절실한 필요에 따라 늑
대를 길들여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길들인 늑대가 개로 진화한 시기가 그보다
헐썩 빠르다는 증거가 출토되었다. 2007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벨기에의 고예(goyet) 동굴에서 한
무더기의 오래된 뼈를 발굴하여 각종 검사를 실시했는데, 뼈의 크기와 형태가 늑대와 오늘날 개의 중
간쯤 되는 동물 뼈로 밝혀졌다.
여러 검사 중 DNA 검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뼈는 야생상태의 동물의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탄소동위원소 검사 결과 그 뼈는 3만 1700년쯤 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보다 최소한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늑대를 길들여 기르는 동안 개로 진화했다는 얘기가 된
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면서 늑대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늑대가 지능이 높고 친화력이 뛰어나 길들이
기 용이한데다, 사냥도 잘하고 사람이 쉬거나 잠잘 때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잘 보호해주기 때문이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유는 인류의 주요 영양 공급원 중 하나다. 인류가 우유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약 7500년 전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유를 마셔봤겠지만, 인체가 거부하여 소화를 시키지
는 못했을 것이다. 우유의 주성분인 젖당을 분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약 70%의 사람
들은 우유를 마셔도 젖당을 분해하지 못해 그대로 배설된다. 심지어 5%의 영‧유아들은 우유를 마시
면 심한 구토나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우유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 우유에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에
대한 인체의 이상 면역반응에 의해 일어나는 증상이다.
7500년 전의 어느 날, 누군가의 몸속에 있던 MCM6 유전자가 각중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락타아제라
는 젖당 분해효소를 생산하게 되었다. 우유가 계속 들어오니까 이를 소화할 수 있도록 적응을 시작했
다는 뜻이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는 대를 이어 전승되었고, 교배를 통해 순차적으로 널리 퍼지
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류는 우유와 이를 원료로 한 각종 유제품을 먹을 수 있게 됨으로써 현저하게
건강이 증진되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짐승의 젖이 맛이 좋고 먹으면 기운이 솟는다는 사실을 알
게 되면서 아이들에게도 짐승 젖을 먹여 키우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사람들은 그 후에도 우유를 마시
지 못했지만, 콜럼버스의 침략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이 건너와 혼혈이 생기면서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유전자가 전파되어 빠르게 체질이 변해갔다.
존 하비 켈로그(1852~1943) 박사는 미국 미시간州에 있는 ‘배틀 크리크 요양원’ 진료원장으로 재직하
면서 환자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다양한 연구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도덕주의를 표방하는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독실한 신자로서, 자위는 전지전능한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별난 신념
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유능한 의사로서 스스로 성기를 자극하여 사정을 하면 39가지 질병에 걸린다
는 독특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성행위를 끊기 위해 부부가 각방을 썼으며, 자식들은 모두 입
양하여 길렀다.
그래서 개발해낸 것이 시리얼이다. 식물성 식품으로만 제조한 시리얼을 먹으면 성욕이 억제되어 자
위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全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
는 시리얼에 켈로그라는 상품명이 붙어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아무 풍미도 없
고 향신료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시리얼을 개발하여 요양원 환자들에게는 물론 직원들에게도 적극
권장했다. 환자들과 직원들은 우유에 타서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시리얼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처음 개발한 시리얼은 요구르트 300g에 말린 곡물 가루를 듬뿍 넣어 만든 것이
었는데, 그 시리얼을 먹은 사람들이 자위행위를 중단했는지는 이 책에 밝혀놓지 않았다.
그레그 제너 지음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중에서
태국에서 올빼미를 쏙 빼닮은 새로운 종의 식물이 발견되었다. 태국 식물협회는 이 신종 식물에 ‘피
싸웡 따 녹 훅’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말로 ‘기이한 올빼미의 눈’이라는 뜻이다.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각국 국민들의 자국 사법시스템 신뢰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국
42개국 가운데 39위였다. 국민들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2017년 한국행정연구원이 국민 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
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원이 공정한 재판을 한다고 믿는 사람이 29.8%에 불과했던 것이
다. 판사가 파렴치한 조국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실만 봐도 맞는 의견이다. 많은 국민들, 특히 정치
인들은 입만 벙긋하면 사법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법원이든 검찰이든 개혁은 결국 정권을 잡은 자들
의 의식이 변해야 가능하다.
망원경을 발명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한스 리퍼세이(1570~1619년)였다. 안경점을 운영하던 그는 160
8년 어느 날 우연히 렌즈를 조합하여 먼 곳을 보면 물체가 확대되어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길쭉
한 통에 렌즈 두 개를 끼워 망원경을 만들었다. 망원경을 천체 관측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이
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였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609년 직접 ‘갈릴레이式’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하여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
을 확인했다. 이후 망원경은 대항해시대의 길잡이 역할을 하여 서양 여러 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룩하
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망원경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인조 9년(1631) 7월이었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두원
이 서양의 다른 문물과 함께 망원경을 가져다 인조에게 바친 것이다. 망원경이 발명된 지 불과 23년
만이었으니, 매우 빠른 기간 안에 최첨단 서양문물을 도입한 셈이다. 1712년에는 청나라에서 구입한
망원경을 사용하여 일식과 월식을 관찰했다. 실학자 홍대용은 청나라에서 천체망원경을 직접 조립하
여 태양의 흑점을 관찰했으며, 이때 망원경의 구조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에도 망원경에
관심을 보인 학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모든 선비들이 공자왈 맹자왈에 매몰되어 있던 시대라 자체적
으로 망원경을 제작하거나 천문학 연구에 이용할 생각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